1화. 적자 공개
데뷔 3일 만에, 우리는 2억 4천 7백만 원을 잃었다.
그 숫자가 뜻하는 건 단순한 적자가 아니었다. 실패하면 누군가는 빚을 진다는 의미였다.
이준은 모니터를 봤다. 숫자는 빨간색이었다. 마이너스 기호가 앞에 붙어 있었다. –247,000,000. 그걸 세 번 읽었다. 한 번은 확인, 한 번은 의심, 한 번은 각오.
쇼케이스장의 조명은 전부 꺼져 있었다. 두 시간 전까지 800석이 찼었다. 함성이 있었고, 떼창이 있었고, 이준이 멘트를 할 때 일제히 켜진 응원봉의 빛이 있었다. 지금은 비상등만 남아 복도를 초록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모니터 하나가 대기실 구석에서 정산서를 토해내고 있었다.
'트레이닝비 1억 2천. 앨범 제작비 6천 8백. MV 4천 5백. 쇼케이스 대관 및 무대 연출 2천 4백.'
이준은 손가락을 꼽았다. 엄지부터 새끼손가락까지. 다섯 개의 항목이 다섯 개의 손가락 위에 올라갔다. 합계는 이미 알고 있었다. 연습생 시절, 불 꺼진 기숙사에서 혼자 계산한 숫자와 거의 같았다. 오차 범위 8% 이내.
2억 4천 7백만 원. 그게 노바의 목숨값이었다.
*
뒤에서 의자 끄는 소리가 났다. 서지환이 벽에 등을 대고 천천히 미끄러져 앉았다. 무대의상이 구겨지는 걸 신경 쓰지 않았다. 코디가 보면 소리를 지를 옷이었지만, 코디는 이미 퇴근했다. 이 시간에 이 건물에 남아 있는 건 노바 다섯 명뿐이었다.
"형, 이건 말이 안 돼."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두 시간 전 무대에서 고음을 질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지환의 눈이 모니터 위 숫자를 향해 있었다. 읽고 있는 건지 노려보는 건지 구분이 안 됐다.
이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숫자가 아직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태현은 구석에 쪼그리고 있었다. 모자 챙을 눌러 눈을 가리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는 누구보다 소란스러운 래퍼가, 무대 아래에서는 이렇게 고요해질 수 있다는 걸 이준은 두 달 전에 알았다. 태현은 이해가 안 되는 일 앞에서 잠을 선택하는 유형이었다. 하지만 모자 아래로 보이는 손에 폰이 쥐어져 있었다. 화면이 켜져 있었다. 유튜브였다. 자고 있는 게 아니었다.
정우는 빈 의자에 앉아 폰을 보고 있었다. 손톱 밑에 무대 분장이 남아 있었지만, 보는 건 자기 손이 아니었다.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였다. '노바 쇼케이스'라는 키워드의 위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정우는 반응을 세는 습관이 있었다. 누가 가르쳐준 건지는 몰랐다. 아마 아무도.
한도윤은 달랐다.
창가에 서서 바깥을 보고 있었다. 아무 말이 없었다. 표정도 없었다. 무대 위에서 첫 번째 팬미팅을 열겠다고 카메라 앞에서 웃던 그 얼굴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조용했다. 유리에 비친 도윤의 옆모습은 무언가를 계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이준은 그 등을 1초 봤다. 읽히지 않았다. 보류.
다시 모니터를 향했다.
'3개월.'
아크 엔터테인먼트 투자심의팀 이사가 쇼케이스 직후에 한 말이었다. 대표는 오지 않았다. 5인조 신인 보이그룹의 데뷔 쇼케이스에 대표가 올 이유는 없었다. 이준은 그것도 계산에 넣어뒀다. 관심의 부재도 변수다.
*
"3개월 안에 손익분기 못 맞추면, 다음 투자 라운드는 없습니다."
쇼케이스가 끝나고 20분 뒤, 백스테이지 복도에서 들은 말이었다. 이사는 악수를 먼저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무대 좋았습니다, 라는 인사도 했다. 그 다음에 숫자를 꺼냈다. 악수 먼저, 통보 다음. 이 업계의 순서는 항상 그랬다.
서지환은 그 자리에서 얼굴이 하얘졌다. 태현은 못 들은 척했다. 정우는 질문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눈이었다.
한도윤만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미세하게. 이준은 그걸 봤다.
'알고 있었나.'
아니면 알고 있는 척인가. 이준은 그 구분을 보류했다. 지금은 다른 계산이 먼저였다.
그런데 하나가 더 있었다. 이사가 복도를 나설 때, 도윤이 뒤따라 나갔다. 2초간. "수고하셨습니다, 이사님." 짧은 목례. 멤버 중 유일하게. 이준은 그 뒷모습을 봤다. 도윤의 인사는 연습생이 하는 인사가 아니었다. 사회인의 인사였다. 어디서 배운 건지. 이준은 질문을 접어뒀다. 지금은 아니다.
의자를 당겼다. 노트북을 열었다. 스프레드시트가 떴다. 연습생 시절부터 혼자 만들어온 파일이었다. 탭에 '노바_손익추정_v7'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버전이 7인 이유가 있었다. 여섯 번 틀렸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실제 숫자가 들어갔다. 제작비는 예상보다 11% 높았다. MV 촬영이 하루 연장된 탓이었다. 쇼케이스 대관료에서는 부가세를 빠뜨렸었다. 이준은 셀을 하나씩 수정했다. 숫자가 바뀔 때마다 합계가 움직였다. 적자가 커졌다가, 잠시 줄었다가, 다시 커졌다. 그 리듬이 심장 박동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준은 그런 비유를 하지 않았다.
서지환이 다가왔다.
"형. 지금 뭐 하는 거야."
"계산."
"뭘 계산해. 우리 망한 거 아니야?"
이준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망했는지 아닌지도 계산해봐야 알아."
서지환이 입을 다물었다. 이준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었다. 없는 게 아니라 치워둔 것이었지만, 서지환이 그 차이를 알 리 없었다. 알 필요도 없었다. 리더의 떨림은 리더만 처리하면 된다.
*
스프레드시트 위에 숫자가 쌓였다.
초동 판매량. 이건 가장 급한 변수였다. 첫 주 앨범 판매량이 이 산업에서 뜻하는 건 단순한 매출이 아니었다. 초동이 곧 팀의 시가총액이었다. 방송국 섭외, 팬사인회 규모, 다음 앨범 제작비, 컴백 일정 — 전부 초동 숫자 하나에서 갈렸다. 초동이 낮으면 다음 기회 자체가 사라진다. 이게 우리 생존선이다.
이준은 현재 예약 판매량을 입력했다. 8,412장. 쇼케이스 다음 날 기준이었다. 팬카페 회원 12,800명 중 실구매 전환율 약 65%. 나머지는 유입 팬 직접 구매분.
목표는 3만 장.
앨범 단가 16,500원. 유통 수수료 35%. 제작 원가 4,200원. 장당 순이익 6,525원. 3만 장이면 약 1억 9,575만 원. 거기에 스트리밍 정산, 팬사인회 입장 수익, 굿즈 마진을 합치면 2억 4천 근처에 닿는다.
이준은 검산했다. 틀리지 않았다.
문제는 숫자가 맞는 것과 숫자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라는 점이었다. 8,412장에서 30,000장. 현재 팬카페 회원 수 대비 약 3.6배. 불가능한 숫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감정으로 되는 숫자도 아니었다.
전략이 필요했다.
이준은 안경을 고쳐 썼다. 렌즈 너머로 스프레드시트의 행과 열이 줄지어 있었다. 이 셀들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연습 시간이었고, 누군가의 빚이었고, 누군가의 부모에게 한 약속이었다.
감상은 거기까지였다. 감상으로는 셀이 채워지지 않는다.
*
문이 열렸다.
구두 소리가 먼저 들렸다. 운동화밖에 없는 이 층에서 구두 소리는 외부인의 신호였다. 이준은 고개를 들었다.
걸어 들어온 건 서류에서만 본 얼굴이었다. 아크 엔터테인먼트 경영관리팀. 윤세아. 이준보다 세 살 위. 전 직장은 비공개. 이 회사에 온 지 8개월.
키가 작았다. 서류 사진에서 예상한 것보다 작았다. 하지만 걸음은 넓었고, 방에 들어서자마자 시선이 사람이 아닌 모니터로 먼저 갔다. 숫자를 읽는 속도가 이준보다 빨랐다.
"2억 4천이면 예상 범위 안이에요."
첫마디가 그것이었다.
서지환이 고개를 돌렸다. '예상 범위'라는 단어가 2억 4천만 원의 적자에 붙을 수 있다는 게 납득이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윤세아는 서지환을 보지 않았다. 이준을 봤다.
"신인 보이그룹 데뷔 평균 적자가 3억에서 5억 사이예요. 2억 4천이면 오히려 양호한 편이죠."
"알고 있습니다."
이준이 대답했다. 알고 있었다. 연습생 시절에 직접 조사한 데이터였다. 4대 기획사 제외, 중소 레이블 신인 그룹 19팀의 평균 데뷔 비용 3억 2천만 원. 거기서 마케팅비를 줄이고 MV를 자체 콘셉트로 돌린 게 이 숫자의 배경이었다.
"그러면 아시겠네요."
윤세아가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허락을 구하지 않았다. 이준은 그 점을 기억해뒀다. 이 사람은 경계가 아니라 효율로 움직이는 유형이었다.
"3개월이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6주예요."
이준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다음 달 초에 이사회 중간 리뷰가 있어요. 분기 투자 성과 점검이요. 거기서 상승 지표가 하나도 안 보이면, 3개월을 채울 기회 자체가 없어요."
6주.
이준의 머릿속에서 스프레드시트가 재배열됐다. 3개월 기준으로 짠 판이 절반으로 줄었다. 주당 목표 초동 판매량이 두 배가 됐다. 마케팅 투입 시점을 2주 앞당겨야 했다. 팬덤 전환율 목표치가 올라갔다.
방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서지환의 숨이 짧아졌다. 태현이 모자 아래에서 눈을 떴다. 정우의 손이 무릎 위에서 주먹이 됐다. 한도윤만 창가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유리에 비친 그의 눈이 이준을 보고 있었다. 아니, 이준의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이준은 그 시선을 느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급한 숫자가 있었다.
"근거는요."
"작년에 같은 구조로 잘린 팀이 있어요. 이름은 말 안 할게요. 다만 초동이 우리보다 높았어요."
'우리보다 높았는데 잘렸다.'
이준은 윤세아를 봤다. 윤세아도 이준을 봤다. 2초. 서로의 눈에서 같은 것을 읽었다. 감정이 아니었다. 구조였다. 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숫자가 어디서 잘리는지, 칼이 언제 떨어지는지.
"초동 목표 얼마로 잡으셨어요?"
"3만 장."
"현재?"
"8,412."
윤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족분 21,588장. 팬카페 DAU 기준 전환율 12%면 도달 가능한 숫자예요. 근데 현재 전환율이 4%도 안 되죠."
이준의 시선이 달라졌다. 이 사람은 회계만 하는 게 아니었다. 팬덤 지표까지 보고 있었다.
"경영관리팀에서 전환율까지 봅니까."
"숫자면 다 봐요."
이준은 그 한 문장을 들었다. 이 대화에서 처음으로 계산 밖의 무언가가 스쳤다. 분류하지 않았다. 분류할 시간이 아니었다.
*
서지환이 일어났다.
"형."
이준이 고개를 돌렸다.
"나 하나만 물어볼게."
서지환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무대 위의 그 목소리가 아니었다. 연습실 새벽 3시, 녹음 부스 안에서 혼자 부르던 그 목소리였다. 이준은 그 차이를 알았다. 서지환은 진짜 말을 할 때 목소리가 낮아진다.
"우리 진짜 되는 거야? 솔직하게 말해줘."
연습실이 조용해졌다. 태현이 모자를 벗었다. 한도윤이 창가에서 천천히 돌아봤다. 정우가 고개를 들었다. 윤세아만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었다.
이준은 서지환을 봤다. 붉어진 눈. 갈라진 목. 무대 위에서 4옥타브를 찍던 그 성대가 지금은 질문 하나를 겨우 밀어내고 있었다.
이준은 그 떨림을 읽었다. 공명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아니다. 리더가 같이 흔들리면 흔들림은 두 배가 된다.
"확률로 말할게."
이준이 노트북을 돌렸다. 스프레드시트가 다섯 명 앞에 놓였다.
"현재 상태로 가면 BEP 도달 확률 11%. 거의 망하는 거야."
서지환의 눈이 흔들렸다. 태현의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근데."
이준이 셀 하나를 가리켰다. '팬덤 전환율'이라고 적힌 칸이었다. 4를 지우고 12를 입력했다. 엔터를 눌렀다. 합계가 움직였다. 적자가 줄었다. 그래프의 곡선이 바닥에서 올라갔다.
"이 숫자 하나를 바꾸면 63%."
서지환이 화면을 봤다. 숫자를 이해한 건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빨간색이 줄어드는 건 봤을 것이다.
"63%면 되는 거야?"
"도박장에서 63%면 올인이야."
이준이 노트북을 닫았다. 의자에서 일어섰다.
네 개의 시선이 이준에게 모였다. 이준은 그 무게를 재지 않았다. 처음이었다. 숫자가 아닌 것에 반응하기로 한 건 처음이었다.
"박수는 공짜야. 앨범은 아니지."
한 발 앞으로 나갔다.
"우리가 살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야."
*
그 밤, 이준은 숙소로 돌아가지 않았다.
연습실 구석 접이식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펼쳤다. 뮤직탑 실시간 차트의 집계 구조를 분해하기 시작했다. 스트리밍 1회 인정 기준. 시간대별 가중치 차이. 알고리즘이 밀어주는 구간과 묻어버리는 구간.
숫자 사이로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실선은 아니었다. 점선이었다. 하지만 점이 있다는 건 선을 그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새벽 4시. 스프레드시트에 탭이 세 개 늘었다. '노바_팬덤전략_v1'이라는 새 파일이 만들어졌다.
이번엔 v1이었다. 처음부터 시작하는 계산.
이준은 안경을 벗었다. 눈을 감았다. 3초. 손끝이 떨렸다. 커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커피를 세 캔 마셨으니까. 하지만 세 캔째는 두 시간 전에 비웠고, 카페인의 반감기는 5시간이다. 떨림의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이준은 그걸 인정하지 않았다.
다시 안경을 썼다.
정산서 맨 아래로 스크롤을 내렸다. 계약서 첨부 조항이 작은 글씨로 이어져 있었다. 제7조 3항. '수익 미달 시 트레이닝비 상환 의무.' 이준은 그 조항을 두 번 읽었다. 세 번째는 읽지 않았다. 외울 필요가 없었다. 연습생 첫날부터 알고 있었다. 그 숫자가 뜻하는 것도. 실패했을 때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도.
'이건 나중에.'
하나의 문장을 정리했다. 스프레드시트에는 쓰지 않았다. 숫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장이 맞으면, 모든 숫자가 움직인다.
팬을 움직이면 된다.
― 1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