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 멈춘다
104라는 숫자는 애매하다.
아직 멈출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멈추면, 모두가 나를 싫어할 것이다. 알고 있다.
이 생각을 9이닝 세 번째 아웃을 잡는 순간부터 했다. 97구에서 경기를 끝냈다. 104는 다음 경기의 숫자다. 하지만 감독이 "계속 가"라고 했다. 그 말이 다음 등판까지 살아있었다.
*
열흘 뒤. 두 번째 연습경기.
상대는 동성고. 지역 내 상위권 팀이다. 3학년 에이스가 올해 드래프트 1라운드 후보라는 팀.
우리 팀 선발은 나였다.
첫 경기에서 97구를 던졌다. 이번 경기에서도 비슷하게 던지면, 감독은 다음 경기에서 110구를 요구할 것이다. 그 다음엔 115구. 데이터로 설득했더니 데이터를 역이용하는 구조가 된다.
오늘 경기가 그 경계를 다시 긋는 자리다.
*
경기 시작 35분 전. 불펜.
팔꿈치를 체크했다. 회복은 충분했다. 통증 없음. 가동 범위 정상. 철수가 들어왔다.
워밍업 5구. 139. 140. 141. 141. 142. 속도가 붙고 있었다.
"괜찮아?"
철수가 마스크를 들고 물었다.
"팔꿈치 이상 없습니다."
"그게 아니라."
잠깐 멈췄다.
"오늘 몇 구 던질 거야."
포수가 그걸 묻는다. 투구수를 관리하겠다는 뜻이었다.
"105."
철수가 마스크를 다시 내렸다.
"알았어."
그게 전부였다.
*
경기는 예상대로 흘렀다.
1이닝부터 6이닝까지 65구. 팀 3-1 리드.
7이닝. 투구수 11. 누적 76구.
더그아웃으로 내려왔다. 감독이 이쪽을 봤다. 말이 없었다. 눈이 투구수를 알고 있는 눈이었다. 76.
철수가 옆에 왔다. 물을 건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팔꿈치를 체크했다. 피로. 피로만. 아직 통증 없음.
*
8이닝. 마운드에 올랐다.
팔꿈치를 다시 체크했다. 피로가 조금 더 쌓였다. 통증이 아니었다. 아직.
세 타자를 잡았다. 투구수 10. 누적 93구.
더그아웃으로 내려왔다.
93. 105까지 12구 남았다. 9이닝이 남아 있다. 계산이 맞으면 이닝 안에 끝난다.
*
9이닝 초. 마운드에 올랐다. 로진백을 집었다.
팔꿈치를 체크했다.
달랐다. 피로가 아니었다. 경계에 더 가까워져 있었다.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12년 전, 이 감각이 시작되고 45구를 더 던진 뒤에 팔꿈치가 끊어졌다. 그 기억이 손바닥 안에 있었다.
4번 타자부터 시작했다. 5번 타자. 6번 타자가 2루타.
주자 2루.
7번 타자. 대타. 처음 보는 타자였다.
100구.
팔꿈치를 눌렀다. 경계가 더 가까워졌다.
7번 타자를 잡았다. 플라이아웃. 주자 3루로 태그업.
투구수 102구.
8번 타자. 마지막 아웃 하나.
포심. 파울. 103구.
슬라이더. 헛스윙. 104구.
104.
멈췄다.
*
로진백을 집었다. 손바닥에 가루를 묻혔다. 털었다. 다시 묻혔다.
팔꿈치를 천천히 눌렀다. 안쪽. 내측 상과. UCL이 붙어 있는 자리.
당겼다.
통증이 아니었다. 하지만 통증 직전의 신호였다. 12년 전에 이 신호를 "아직 괜찮다"로 읽었다. 45구를 더 던졌다. 그 결과가 14개월 재활이었다.
한 구를 더 던지면 어떻게 될까. 아마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생에서 나는 그 "아마"를 믿지 않기로 했다. 12년 전의 내가 "아마 괜찮겠지"를 147번 믿었다. 148번째에서 끊어졌다.
로진백을 내려놓았다.
*
더그아웃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한 타자만 더."
감독이었다.
주자 3루. 1아웃. 경기 종료까지 아웃 하나. 타자 하나. 투구수 104.
감독 눈에는 한 타자다. 내 팔에는 한계선이다.
철수가 포수석에서 일어났다. 마운드로 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이 나를 봤다.
질문이었다. 계속할 수 있냐는 질문이 아니었다.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이었다. 네 선택이라는 눈이었다.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철수가 다시 포수석으로 돌아갔다.
더그아웃 쪽을 봤다. 감독이 서 있었다. 팔짱을 끼고. 기다리는 눈이었다.
*
손을 들었다. 심판이 봤다. 타임.
더그아웃 쪽으로 말했다.
"교체합니다."
스탠드가 웅성거렸다.
더그아웃이 조용해졌다. 그 조용함이 크게 들렸다.
감독이 한 걸음 나왔다. 코치가 옆에 섰다.
"강시우."
"104구입니다. 제 기준은 105입니다."
감독의 미간이 좁혀졌다.
"주자 3루야. 아웃 하나야."
"알고 있습니다."
"한 구만 더 던지면 끝난다."
"이건, 제 팔입니다."
말이 나오고 나서 운동장이 조용해졌다.
감독이 나를 봤다. 1초. 2초.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정민. 올라가."
3학년 정민이 불펜에서 일어섰다. 마운드로 걸어왔다.
공을 건넸다.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
더그아웃에 들어오는데,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벤치 끝에 앉았다. 팔꿈치를 한 번 눌렀다. 당김이 줄었다. 맞는 선택이었다.
마운드에서 정민이 공을 던졌다. 스트라이크. 헛스윙. 삼진. 경기 종료.
3-1. 승리.
팀원들이 더그아웃 밖으로 나갔다. 악수라인.
건우가 지나치면서 내 쪽을 봤다. 말이 없었다. 눈이 한 번 움직이고 지나갔다.
차도윤이 지나치면서 멈췄다. 잠깐. 말이 없었다. 그냥 나를 봤다. 1초. 그리고 갔다.
이민호가 지나치면서 물병을 하나 놓고 갔다. 말 없이.
벤치에 혼자 앉아 있었다.
팔꿈치를 다시 눌렀다. 당김이 거의 없었다. 통증도 없었다.
104구. 멈췄다.
이번 생은, 내가 멈춘다. 내가 시작한다.
*
운동장을 나서는데, 감독이 입구 옆에 서 있었다.
혼자였다.
지나치려 했다.
감독이 말했다.
"다음 등판은 일주일 뒤다."
"알겠습니다."
그게 전부였다. 욕도 없었다. 훈계도 없었다. 일정을 통보했다.
그 통보 방식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인정이라고 부르기엔 이르다. 하지만 거부도 아니었다.
경계가 생긴 것이다. 한 번 선이 그어지면, 다음 번엔 그 선이 시작점이 된다.
걸음을 옮겼다.
*
스탠드 오른쪽 끝에서, 점퍼를 입은 사람이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지난 경기에도 같은 자리에 있었다.
오늘도 메모지를 들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쳤다. 잠깐.
그 사람이 먼저 시선을 끊었다. 메모지를 접었다. 일어섰다.
어느 쪽인지는 아직 몰랐다. 경기 결과를 적는 사람인지. 구속을 적는 사람인지. 투구수를 적는 사람인지. 아니면 세 가지를 다 적는 사람인지.
*
점퍼를 입은 사람은 주차장으로 걸어가면서 메모지를 다시 폈다.
104구. 자발적 교체 요청.
그 한 줄을 다시 읽었다.
선수가 자기 투구수를 세고, 자기 팔 상태를 체크하고, 스스로 교체를 요청했다.
고교 1학년이.
차 문을 열었다. 앉았다. 시동을 걸지 않았다.
메모지 맨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Spin Efficiency 측정 요청. 가능 여부 확인.
볼펜을 주머니에 넣었다. 창밖에 운동장이 보였다. 선수들이 정리하고 있었다. 강시우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시동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