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황후, 회귀해서 제국을 선택한다
2화. 확률 92%
확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진실의 일부만 보여줄 뿐이다.
새벽빛이 침전의 유리창을 물들이기 전, 엘리제는 이미 깨어 있었다. 잠을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라 잠을 허락하지 않은 것이었다. 눈을 감을 때마다 화형대의 열기가 찾아왔다. 쇠사슬의 무게, 군중의 함성, 연기 너머로 흐려지는 하늘. 잠이 들면 그곳으로 돌아갈 것 같았다.
엘리제는 탁자 위의 장갑을 집어 들었다. 어젯밤의 포도주 자국이 갈색으로 굳어 있었다. 새 장갑으로 바꿔야 했지만, 아직 바꾸지 않았다. 이번 생에서 자신의 의지로 만든 첫 번째 흔적이었으니까.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다.
넓은 어깨, 엄격하지만 따뜻한 눈. 그런데 — 수염. 아버지의 수염은 무슨 색이었던가. 잿빛이었나, 갈색이었나. 어릴 적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그 수염을 잡아당기며 웃었던 기억은 남아 있는데, 수염의 색이 떠오르지 않았다.
엘리제의 손이 멈추었다.
어제까지는 기억하고 있었다. 분명히. 잿빛 — 아니, 갈색? 심장이 차갑게 조여왔다. 연대기의 눈의 대가. 어젯밤 세 번 발동한 대가가 아버지의 수염 색을 가져간 것이다.
공포가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수염 색 하나. 사소한 것이었다. 하지만 사소한 것부터 사라진다는 것이 더 무서웠다. 다음에는 눈의 색이 사라질 것이고, 그다음에는 목소리가, 그다음에는 얼굴 전체가 —
엘리제는 이를 악물었다.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에 박혔다.
복수를 완성하기 전에 복수의 이유를 잊는다면, 그것은 전생보다 더 잔인한 결말이었다.
지금은 멈출 수 없다. 멈추면 죽는다. 아버지의 수염 색은 — 나중에, 루벤 공작령의 초상화에서 다시 확인하면 된다.
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시녀장 마르타의 걸음.
「들어오세요.」
마르타가 문을 열었다. 50대 중반의 시녀장은 표정 관리에 능한 여자였지만, 오늘 아침에는 입술이 미세하게 굳어 있었다.
「황후 폐하,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시녀 한 명이 사라졌군요.」
마르타의 눈이 커졌다. 전생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사흘 뒤, 독살 누명을 쓴 뒤였다. 심문관이 '도주한 시녀'를 증거로 들이밀었을 때. 그때는 이미 늦었다.
이번에는 늦지 않았다.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좌측 세 번째에 서 있던 시녀입니다. 갈색 머리, 디저트 담당. 맞습니까?」
마르타가 고개를 숙였다. 「예. 리나라는 이름입니다. 자정 교대 시간에 사라졌고, 짐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근위대에 보고할까요?」
근위대. 황제 직속. 보고가 올라가면 카일루스의 귀에 들어간다. 전생에서 이 시녀의 도주를 '황후가 증거를 인멸했다'고 뒤집은 것이 바로 근위대였다.
「보고는 보류하세요.」
「대신.」 엘리제가 마르타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리나가 어디서 왔는지, 누가 추천했는지, 마지막으로 누구와 이야기했는지를 알아오세요. 오늘 해가 지기 전까지.」
마르타가 멈칫했다. 전생의 황후는 시녀 인사에 관여한 적이 없었다. 차와 드레스에만 관심을 가졌다. 이번 생의 황후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는 데 3초가 걸렸다.
「알겠습니다, 폐하.」
마르타가 나가자 엘리제는 창가로 다가갔다. 연대기의 눈이 미세하게 반응했다.
[시녀 '리나' 배후 추적 가능 경로: 3개]
[최고 확률 경로: 황후궁 내부 협력자 경유 — 67.3%]
내부에 협력자가 있다. 적은 밖에만 있지 않다. 이 궁 안에도 있다.
*
오전 조회는 황궁의 동쪽 회랑에서 열렸다.
대리석 기둥이 늘어선 회랑을 걸을 때, 스치는 시선들의 온도가 어젯밤과 달라져 있었다. 잔을 떨어뜨린 황후. 직접 잔을 주운 황후. 궁정에서 소문은 바람보다 빠르고, 해석은 사실보다 다양했다.
회랑 끝에서 세라핀 폰 발레리우스와 마주쳤다.
전생이라면 고개를 숙이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 처세가 가문 멸문으로 이어졌다. 엘리제는 멈추지 않았다. 황후의 보폭으로, 황후의 속도로 회랑 중앙을 걸었다.
세라핀이 길을 비키려다 멈췄다. 부채를 들어 올렸다. 어젯밤의 45도가 아닌 30도. 선전포고에서 경계로 격하. 미세한 변화. 하지만 궁정에서 미세한 변화는 지진과 같았다.
엘리제는 지나치는 순간 입을 열었다.
「공녀, 부채가 어제보다 아름답군요.」
'어제보다'라는 한마디. 나는 어제의 각도를 기억하고 있고, 오늘의 변화를 읽고 있다는 선언. 세라핀의 발이 멈추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조회실에 들어서자 카일루스가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황좌가 아닌 조회용 의자. 그래도 이 방에서 가장 높았다. 황후의 의자는 한 뼘 낮았고, 귀족들의 의자는 다시 한 뼘 낮았다. 의자 높이가 곧 권력이었다.
「어젯밤은 잘 주무셨소?」
연대기의 눈이 반응했다.
[질문 의도 — 탐색: 78% / 관심: 12% / 함정: 10%]
탐색. 어젯밤 테라스 이후, 황제는 황후를 다시 보고 있었다.
「폐하 덕분에 편안했습니다.」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았다. 카일루스의 검지가 팔걸이를 한 번 두드렸다.
「봉토 이야기를 한다 했소.」
빨랐다. 어젯밤의 한마디를 직접 꺼내올 줄은 예상보다 일렀다.
「에델슈타인 봉토의 세수 보고서를 요청하고자 합니다.」
조회실의 공기가 미세하게 변했다. 황후가 봉토의 재정을 요청하는 것은 전례가 없었다. 지참금 봉토의 수익권은 황후에게 있었지만, 전생의 엘리제는 그 권리를 한 번도 행사하지 않았다.
「세수 보고서?」 카일루스가 되물었다. 되묻는 것 자체가 의외라는 뜻이었다.
「예. 지참금 봉토의 수익권은 황후에게 귀속됩니다. 제국법 제7장 42조를 참조해 주십시오.」
배석한 관료 셋의 시선이 동시에 황후를 향했다. 법조항까지 인용하는 황후를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카일루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미소인지 경고인지 구분할 수 없는 각도.
「허락하지요. 다만.」
그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짐은 궁금한 것이 있소, 황후.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소.」
엘리제의 연대기의 눈 문양이 홍채 위에서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 남자는 둔하지 않았다. 전생에서 엘리제가 착각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폐하. 제 자리를 찾아가는 중일 뿐입니다.」
오후. 황후궁 서재.
탁자 위에 에델슈타인 봉토 5년치 세수 기록이 놓여 있었다.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가져온 것이었다. 호의가 아니라 감시. 황후가 무엇을 보려 하는지 기록하겠다는 뜻이었다.
기록을 훑었다. 숫자들이 정렬되었다. 5년간 일정한 세수. 농업, 소규모 철광, 통행료.
손가락이 숫자 위에서 멈추었다. 눈앞에 에델슈타인의 봉토 관리인이 떠올랐다. 헤르만 슈타인. 전생에서 엘리제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남자. 하지만 연대기의 눈이 보여주는 미래에서, 이 남자는 2년 뒤 광산을 발견하고 선제후 연합에 밀보고한다.
[에델슈타인 마정석 광산 — 최초 발견자: 봉토 관리인 헤르만 → 선제후 연합에 밀보고]
마정석. 제국의 모든 마법 장치와 군사력의 연료. 그것이 세수 기록 어디에도 없었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직 보고되지 않은 것이다.
관리인을 교체해야 한다. 광산을 먼저 찾아야 한다. 시간은 2년. 그 전에 에델슈타인을 장악해야 했다.
기록을 덮으며 다른 것을 생각했다. 정보. 블랙 챔버. 우편물 검열과 암호 해독을 담당하는 기구. 전생에서 처형 직전 심문관이 흘린 말 — '블랙 챔버의 기록에 의하면.' 위조된 증거였지만, 그 기구의 존재 자체가 중요했다.
마르타가 문을 두드렸다.
「리나는 두 달 전 배치되었습니다. 추천서는 타우렌 백작 부인이 작성했습니다.」
타우렌 백작가. 선제후 연합의 외곽 세력. 퍼즐의 조각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시녀를 심고, 디저트에 독을 넣게 하고, 실패하면 회수한다.
「타우렌 백작 부인에게 다회 초대장을 보내세요.」
적을 처리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베거나, 끌어오거나. 전생에서 엘리제는 어느 쪽도 하지 못했다. 사랑에 눈이 멀어, 적이 누구인지조차 몰랐으니까.
엘리제는 세수 기록 위에 손을 올렸다. 차가운 종이의 감촉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오늘 하루 동안 보고서를 얻었고, 배신자의 이름을 알았으며, 시녀의 배후를 특정했다. 전생에서 3년 동안 하지 못한 일이었다.
*
해가 지고, 황궁에 등불이 켜졌다.
황제가 개인 서재에서 황후를 기다린다는 전갈이 왔다. 전생에서 이 초대는 두 가지 의미였다. 잠자리이거나, 심문이거나. 전생의 엘리제는 늘 전자이길 기대했고, 대부분 후자였다.
이번 생에서는 기대도, 두려움도 없었다.
서재 문을 열자 잉크와 양피지와 밀랍 봉인의 냄새가 밀려왔다. 카일루스는 창가에 서 있었다. 간소한 셔츠 차림이었지만, 이 남자는 무엇을 입어도 무장한 것처럼 보였다.
「앉으시오.」
엘리제는 3초 뒤에 앉았다. 바로 앉지 않는 것. 그 3초가 '당신의 명령에 즉각 복종하지 않는다'는 메시지였다.
「에델슈타인의 세수 기록을 보았소?」
「보았습니다.」
「무엇을 찾았소?」
함정이었다. 무엇을 찾고 있는지를 말하게 하려는 것.
「부족한 것을 찾았습니다, 폐하. 5년간 같은 세수. 성장도, 투자도, 변화도 없습니다. 봉토가 방치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실이었다. 전부가 아니었다. 광산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봉토를 직접 관리하겠다는 뜻이오?」
「황후의 지참금 봉토입니다. 관리는 제 의무입니다.」
같은 단어. 의무. 권리를 주장하면 의심받는다. 의무를 이행한다고 하면, 막을 명분이 없다.
카일루스가 한 발짝 다가왔다. 가까웠다.
「황후.」
목소리가 낮아졌다. 전생에서 이 톤이 나올 때, 엘리제의 심장은 녹았다. 사랑이라고 착각했다. 이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이름을 부를 때, 세상의 모든 것이 괜찮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전생에서는.
「왜 갑자기 변한 것이오?」
카일루스의 손이 엘리제의 턱 아래에 닿았다. 검을 잡되 흔적을 남기지 않는 손. 그 손가락이 턱을 들어 올렸다. 금빛과 청금색이 부딪혔다.
심장이 뛰었다.
뛰어서는 안 되는데, 뛰었다. 몸이 기억하는 것은 살갗의 공포만이 아니었다. 살갗의 사랑도 기억하고 있었다. 체내에 남은 미량의 독.
엘리제는 카일루스의 손을 쳐내지 않았다. 대신, 그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부드럽게. 마치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턱에서 내려놓았다.
「변한 것이 아닙니다, 폐하. 깨어난 것입니다.」
카일루스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다.
엘리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황제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전생에서 이 남자를 정면으로 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항상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내리깔고, 그의 기분을 살폈다.
「폐하.」
「말하시오.」
「저는 더 이상 폐하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서재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카일루스의 눈동자 안에서 무언가가 불붙었다. 분노인지 집착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엘리제는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돌아서서 서재를 나왔다.
문이 닫히는 순간, 등 뒤에서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잉크병이거나 찻잔. 엘리제는 멈추지 않았다.
두 발짝을 걸은 뒤, 발을 멈추었다. 문 너머에서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깨진 것을 치우는 소리가 아니었다. 침묵이었다. 길고 무거운 침묵. 그리고 — 문에 무언가가 닿는 소리. 이마인지, 손바닥인지. 카일루스가 닫힌 문에 기대어 서 있다는 것을, 엘리제는 알았다.
전생에서 이 남자가 한 번이라도 이런 반응을 보인 적이 있었던가. 없었다. 전생의 카일루스에게 엘리제는 처분할 수 있는 존재였지, 잃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문 너머의 침묵은 — 처분이 아니라 상실의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걸었다. 사랑은 무기가 아니라 족쇄였다. 족쇄를 찬 채로 제국을 손에 넣을 생각이 없었다.
복도 끝에서 세라핀이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부채를 접고, 팔짱을 낀 채.
「재미있는 소리가 들려서요.」
「도청은 궁정 예법 위반입니다, 공녀.」
「우연입니다. 다만,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었군요.」
세라핀이 속삭였다. 「사랑하지 않는다, 라. 용감하시군요. 아니면 무모하시거나.」
엘리제는 멈추지 않았다.
「용감한 것과 무모한 것의 차이는 결과가 결정합니다. 결과를 지켜보세요.」
침전으로 돌아온 엘리제는 문을 닫고 등을 기댔다.
장갑을 벗었다. 포도주 자국 아래, 손등이 보였다. 흰 피부 위에 아무것도 없었다. 전생의 화형대 흉터는 이번 생의 몸에는 없었다. 그런데도 거기가 아팠다. 있어야 할 상처가 없다는 것이, 이상하게도 더 아팠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용기가 아니라 잔상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오늘, 세 가지를 얻었다. 시녀 배후의 실마리. 봉토 재정의 접근권. 그리고 — 황제의 경계심.
전생에서는 0개였다.
엘리제는 탁자를 세 번 두드렸다.
내일은 더 많이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