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각성 실패자, 회귀하다
확률 3%.
실패하면 대한민국이 반으로 접힌다.
마석 폭풍이 시야를 먹어치우고 있었다. 제주 블랙 존. SSS급 게이트가 찢어놓은 하늘 아래, 살아 있는 인간은 열한 명. 5분 전에는 스물셋이었다.
이혜진이 먼저 쓰러졌다. 열두 번째였다.
손끝에서 수치가 흘렀다.
게이트 붕괴 확률 97.2%. 생존 보정 불가. 철수 권고.
권고. 마켓 아이는 항상 그랬다. 권고만 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 결정은 사람의 몫이었다.
발밑의 지면이 갈라졌다. 균열 사이로 보라색 마력이 분출했다. S급 몬스터 세 마리가 게이트 경계면에서 형체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하나당 전투형 헌터 다섯은 붙어야 한다. 남은 전투 가능 인원, 넷.
부채비율 산정 불가. 자산 대비 부채가 의미를 잃는 지점.
금융 용어로 전장을 읽는 버릇은 전생에서도 고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정확했다. 이건 파산이다. 어떤 구조조정으로도 살릴 수 없는.
통신기가 지직거렸다.
잡음 사이로 익숙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낮고, 차갑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철수해."
형이었다.
강도윤. 미래그룹 장남. 한국 헌터산업 최대 투자자. 이 작전의 총지휘관.
승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승헌. 듣고 있나. 작전 종료다. 잔존 인원 즉시 후퇴."
짧았다. 언제나.
승헌이 기억하는 형의 문장은 항상 짧았다. 철수해. 포기해. 물러나. 한국어에서 가장 효율적인 문장들만 골라 쓰는 사람.
그 효율성이 지금 열한 명의 목숨과 제주도 남쪽 절반을 포기하라는 의미라는 것을, 형은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다.
알고도 말하는 거겠지.
승헌은 통신기를 끄지 않았다. 꺼버리면 그게 마지막 대화가 된다는 걸 알았으니까. 전생의 기억이 그랬다. 이 통신이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형과의 마지막 통신이 어떻게 끝났는지도 기억했다.
--- 10년 후의 기억.
미래그룹 본사. 유리창 너머로 서울이 보였다. 형은 서류를 내밀었다. 강승헌, 이카루스 길드 경영권 포기 각서. 잘 판단했어.
승헌은 그 각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대신 문을 나섰다.
그것이 두 형제가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대신 앞으로 걸었다.
마석 폭풍이 피부를 깎았다. 방어막은 3분 전에 소멸했다. 순수한 S급 육체만으로 버티는 중이었다.
성공 확률 2.8%.
마켓 아이가 뿜어내는 숫자가 시야 전체를 붉게 물들였다. 처음 보는 색이었다. 평소에는 파란색, 위험하면 노란색. 붉은색은 없었다. 계산 범위 밖이라는 뜻이다.
그래도 걸었다.
2.8%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전생에서 이카루스 길드를 인수할 때도 시장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부채비율 340%, 영업이익 마이너스. 그때 성공 확률은 12%였다. 그리고 해냈다.
하지만 12%와 2.8%는 달랐다. 근본적으로.
게이트 경계면에서 첫 번째 S급 몬스터가 형체를 완성했다.
검은 갑각. 여섯 개의 눈. 다리 하나하나가 콘크리트 기둥만 했다.
HMB 지휘관이 뒤에서 외쳤다.
"강승헌 헌터! 작전 지역에서 이탈하십시오!"
승헌은 검을 들었다.
S급 마력이 칼날을 따라 흘렀다. 푸른빛. 아직 이 정도는 쓸 수 있다.
마력 잔량 18%. 물리 스펙 41%.
18%의 마력으로 S급 셋을 상대한다.
미친 짓이었다. 알고 있었다. 전생에서도 이 계산은 틀렸다. 그때도 뛰어들었고, 그때도 실패했다.
다른 건 하나.
이번에는 뛰어들면서 후회하고 있다는 것.
검이 갑각에 부딪쳤다. 불꽃이 튀었다. 반동이 손목을 타고 어깨까지 올라왔다. 갑각에 금이 갔다. 하나. 충분하지 않다.
두 번째 베기. 몬스터의 다리가 스쳐 지나갔다. 왼쪽 갈비뼈 위로 통증이 폭발했다. 부러졌다. 최소 두 대.
세 번째 베기는 없었다.
마켓 아이가 미쳤다.
시야 전체가 숫자로 뒤덮였다. 빨간 숫자, 파란 숫자, 본 적 없는 보라색 숫자. 게이트 붕괴 수치와 마석 농도와 생존 확률이 동시에 쏟아졌다.
피해 추정 42조. GDP 대비 2.1%. 국가 신용등급 3단계 하락 예상---
쓸모없는 숫자였다. 죽어가면서 GDP를 계산하다니. 승헌은 웃음이 나왔다. 입에서 피가 섞여 나왔다.
통신기에서 형의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봤지?"
이번에는 달랐다. 짧은 건 같았지만, 톤이 달랐다.
"네가 뛰어든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그 말은 사실이었다.
전생에서도 사실이었고, 이번 생에서도 사실이었다. S급 헌터 하나가 목숨을 걸어봤자, 게이트는 닫히지 않는다.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영웅주의로 해결할 수 없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분했다.
S급이 되어도, 자본이 없으면 전장의 판을 바꿀 수 없다는 걸. 힘만으로는 이 세상을 지킬 수 없다는 걸. 전생 내내, 같은 결론 앞에 서 있었다.
등에 충격이 왔다.
두 번째 몬스터의 다리가 척추를 관통했다.
통증은 3초. 그 뒤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켓 아이의 숫자들이 하나씩 꺼져갔다. 마지막으로 남은 숫자.
생존 확률 0.0%.
역시 정직한 스킬이었다.
승헌은 쓰러지면서 하늘을 봤다. 찢어진 하늘. 게이트 너머로 보라색 세계가 보였다.
이혜진의 얼굴이 마지막으로 스쳤다.
의식이 끊어졌다.
*
형광등.
소독약 냄새. 손목에 꽂힌 수액 튜브. 어딘가에서 심전도 모니터가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고 있었다.
승헌은 천장을 올려다봤다.
하얀 천장. 균열 하나 없는. 제주 블랙 존의 찢어진 하늘이 아닌.
반사적으로 오른손을 폈다. 다섯 손가락이 멀쩡했다. 마른 28세의 손. S급의 근육 기억은 없었다.
수액 팩에 적힌 날짜를 읽었다.
2026년 3월 14일.
10년 전.
제주 대균열이 일어나기 10년 전. 이카루스 길드가 파산하기 9년 전. 블랙 먼데이가 한국 경제를 삼키기 8년 전. 형이 미래그룹의 모든 것을 장악하기 7년 전.
모든 것이 시작되기 전.
승헌은 천장을 바라본 채 숨을 들이쉬었다. 소독약 냄새가 폐를 채웠다. 살아 있다는 냄새.
감정 통제.
스스로에게 말했다. 3초. 3초만 허용한다.
1초. 전생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찢어진 하늘. 형의 목소리. 철수해.
2초. 이혜진의 얼굴이 스쳤다. 그리고 나머지 열 명.
3초.
끝.
승헌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시야가 선명해졌다. 그리고 익숙한 감각이 손끝에서 올라왔다.
마켓 아이.
살아 있었다. 회귀 이전과 동일한 고유 스킬. 단, 지금은 조용했다. 전장의 붉은 폭주가 아니라, 차분한 파란색 숫자가 시야 구석에 떠 있었다.
현재 신체 능력: E급 하위. 마력 총량: 측정 불가(미각성). 보유 자산: 은행 잔고 210만 원.
210만 원.
전생에서 수조 원의 길드 자산을 운용하던 사람의 현재 순자산.
부채비율 산정 불가. 부채 이전에 자산이 없으니까.
웃음이 나왔다. 이번에는 피가 섞이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았다.
병실 옆 사물함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구형. 2026년형. 화면이 작고 반응이 느렸다.
뉴스를 열었다.
'이카루스 길드, 3분기 연속 적자... 헌터 이탈 가속'
'C급 길드 구조조정 바람... 소규모 길드 폐업 잇따라'
'HMB, 길드 인수합병 가이드라인 연내 발표 예정'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멈쳤다.
이카루스 길드.
전생에서 가장 먼저 망한 길드. 헌터 14명, 연간 던전 공략 23회, 영업이익 마이너스. 누가 봐도 쓰레기 자산.
하지만 승헌은 알고 있었다.
3년 뒤 이카루스가 보유한 던전 좌표 세 개 중 하나에서 B급 마석 광맥이 터진다는 것을. 5년 뒤 그 광맥의 가치가 4,000억을 넘긴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실을 지금 이 시점에서 아는 사람은, 이 세계에서 자신뿐이라는 것을.
저평가 자산. 현재 시가는 적정 인수가의 12%. 레버리지 활용 시 자기자본 투입 최소화 가능.
마켓 아이가 파란 숫자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조용하지만 정확한 숫자들.
승헌은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수액 줄이 연결된 왼팔을 올려다봤다. 가늘고 창백한 팔. E급 하위의 몸. 지금 이 몸으로는 C급 몬스터 하나도 못 잡는다.
상관없다.
전생에서 배운 것이 있다. S급의 검으로도 못 막는 게이트가 있다. 하지만 자본으로 막을 수 있는 전쟁은 있다.
마켓 아이에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이카루스 길드 차입매수 성공 확률?
파란 숫자가 떠올랐다.
72%.
전생의 2.8%와는 다른 숫자. 붉은색이 아닌 파란색. 통제 가능한 리스크.
충분해.
승헌은 수액 줄을 뽑았다. 등록증도, 라이선스도, 자본도 없는 28세의 각성 실패자가 병상에서 일어섰다.
이번 생의 첫 번째 인수가 시작된다.
병실 문을 열기 전, 한 번 더 뉴스를 확인했다.
'이카루스 길드, 이달 내 추가 자금 확보 실패 시 폐업 수순'
입꼬리가 올라갔다.
타이밍까지 완벽하군.
문을 열었다. 병원 복도는 조용했다. 소독약 냄새가 여전했다. 평범한 3월의 오후.
하지만 강승헌에게 평범한 것은 없었다. 머릿속에는 10년치 미래가 들어 있고, 눈에는 세상의 모든 것을 숫자로 환산하는 스킬이 떠 있었다.
이카루스 길드.
아직, 망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