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멜트
강진의 숨이 한 번 끊겼다.
도하가 손을 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가이딩이 끝난 것이었다. 하지만 강진의 시야는 아직 흔들리고 있었다. 두통이 아니었다. 두통은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다른 무언가가 균열처럼 깨어나고 있었다. 기억처럼. 아니, 기억보다 더 오래된 것처럼.
강진은 의자 팔걸이를 잡았다. 버텼다. 이 정도는 버틸 수 있었다. 지금까지 버텨온 것에 비하면, 이것은 파도가 아니라 파문에 불과했다.
그런데 무릎에 힘이 빠졌다.
강진은 그 사실을 이해하는 데 1초가 걸렸다. 자신의 무릎에 힘이 빠진다는 것. S급 전투원. 섹터 0. 가장 강한 감각 역치를 가진 에스퍼. 그 몸이 지금, 자신의 거실 바닥에 무릎을 꿇으려 하고 있었다.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무릎이 먼저였다. 바닥.
도하가 반사적으로 돌아왔다.
가이딩 공간에서 방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강진의 숨 소리가 달라진 것을 알아챘다. 복도를 반쯤 걷다가 멈추었다. 돌아서서, 왔던 길을 다시 걸었다.
강진이 바닥에 있었다.
한쪽 무릎. 한쪽 손이 팔걸이를 잡은 채. 버티고 있는 자세였다. 쓰러진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이런 자세를 하고 있다는 것이, 도하의 가슴을 무언가가 쥐는 것처럼 느껴졌다.
도하는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강진과 같은 높이.
손을 내밀었다.
강진이 손을 잡지 않았다. 하지만 밀어내지도 않았다. 도하는 강진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머리카락이 조금 젖어 있었다. 땀이었다. 이마가 뜨거웠다.
파동을 열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4화 아침처럼 조심스럽게 천천히 여는 방식이 아니었다. 안정화가 아니었다. 연결이었다. 강진의 신경계 안에서 무언가가 이미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고, 도하의 파동은 그 균열 사이로 흘러들어갔다.
문이 열렸다.
빛이 소리처럼 밀려왔다. 소리가 촉감처럼 때렸다. 강진이 듣고 있는 세계가 아니었다. 강진이 기억하고 있는 세계였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온 것은 냄새였다. 소독액. 다음은 온도.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그다음은 소리. 방문 너머에서 들리는 발소리. 규칙적인 발소리.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순찰이었다. 도하는 그것을 알았다. 에덴에서도 그 소리가 있었다. 소등 이후의 복도 순찰. 하지만 에덴의 것과 달랐다. 더 딱딱하고, 더 균일하다. 이것은 훈련시설이 아니었다. 격리실이었다.
강진이 그 안에 있었다.
나이를 알 수 없었다. 아홉이거나 열이거나.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서, 무릎을 품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짧았다. 표정이 없었다. 그 나이에 이미 표정을 지우는 법을 배운 아이의 얼굴이었다.
손목에 억제 밴드가 있었다. 4화에서 도하가 파편으로 본 것이었다. 지금은 파편이 아니었다. 완전한 장면이었다.
문이 열렸다. 어른이 들어왔다. 흰 가운. KCA 마크. 태블릿을 들고 있었다.
"오늘 수치는 어때."
어린 강진이 대답하지 않았다.
"질문이야."
"…낮습니다."
"낮은 게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침묵이었다.
"대답해."
"낮은 게… 좋은 겁니다."
어른이 태블릿에 무언가를 입력했다. 기록이었다. 어린 강진은 그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릎 위의 손이 꽉 쥐어졌다. 주먹이 되었다가, 천천히 열렸다.
"폭주하면 어떻게 된다고 했지?"
"…폐기됩니다."
"맞아."
어른이 나갔다. 문이 닫혔다. 억제 밴드가 손목을 조였다. 어린 강진이 다시 무릎을 품었다.
도하는 그 방 안에 서 있었다.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차가움이 느껴졌다. 콘크리트의 차가움. 억제 밴드의 금속이 손목을 조이는 감각. 폐기됩니다. 그 말이 어린 아이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이. 암기한 것이라는 것이.
가슴이 눌렸다. 눈물이 아니었다. 눈물은 4화에서 이미 났다. 지금은 통증이었다. 무언가가 가슴 안쪽을 천천히 조이는 느낌. 도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공명 역류. 에스퍼의 감각이 가이드에게 역류하는 현상. 지금 역류하는 것은 감각이 아니었다. 기억이었다. 강진의 기억이 도하의 가슴으로 직접 내려앉고 있었다.
손을 뗄 수 있었다.
도하는 그것을 알았다. 파동을 끊으면 연결이 사라진다. 기억이 닫힌다. 공명 역류가 멈춘다. 교본대로라면 즉시 끊어야 했다. 가이드의 신경계는 이 정도를 감당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특히 E급은.
떼지 않았다.
대신, 호흡을 낮추었다.
4화 아침에 했던 것처럼. 강진의 맥박에 박자를 맞추는 것처럼. 도하는 자신의 호흡 속도를 내렸다. 느리게. 더 느리게. 파동의 진폭을 낮추었다. 120Hz 이하. 더 아래로. 기억의 폭풍이 몰아치는 공간에서, 도하는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처럼.
잡음이 줄었다.
격리실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억제 밴드의 차가움이 옅어졌다. 폐기됩니다, 라는 말이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 자리에 도하의 저주파가 흘렀다. 낮고 따뜻한 것. 물이 고인 것 같은 것. 어린 강진의 주변을 천천히 채워나갔다.
어린 강진이 고개를 들었다.
방 안에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따뜻한 것이 있었다. 형광등의 흰빛이 아니었다. 금빛이었다.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빛. 어린 강진의 손이 무릎에서 내려졌다. 손바닥을 위로 향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이번에는 다른 무언가가 내려앉았다.
도하의 파동이 그 손바닥에 닿았다.
어린 강진의 눈이 조금 커졌다. 표정을 지운 얼굴에서, 무언가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눈물이 아니었다. 그저 표정이. 오랫동안 지워두었던 것이 얇게 되살아나는 것처럼.
현실이 돌아왔다.
도하는 숨을 몰아쉬었다. 강진의 이마에 얹었던 손이 조금 미끄러졌다. 도하는 손을 잡았다. 떼지 않았다. 그대로.
강진이 한참 뒤에야 눈을 떴다.
눈에 초점이 잡히는 데 시간이 걸렸다. 강진의 시선이 천천히 도하에게 왔다. 도하는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피할 이유가 없었다. 이미 다 보았다. 강진도 알고 있었다. 이미 다 보였다는 것을.
강진의 눈에 두려움이 있었다.
화가 아니었다. 당혹도 아니었다. 두려움이었다. 처음으로 통제 실패를 겪은 것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그 실패를 누군가가 들어와서 같이 있어주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강진이 입을 열었다.
"왜… 네가 아파."
숨이 찢기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낮고 짧았다. 질문이 아니었다. 확인에 가까웠다.
도하는 대답을 생각했다.
가슴이 아직 조이고 있었다. 공명 역류의 후유증이었다.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손끝이 저렸다. 교본에 따르면 즉시 안정화 처치가 필요한 상태였다. 에덴의 교관이라면 지금 도하를 데리고 나가 응급 처치를 했을 것이다.
"괜찮아요."
도하가 말했다. 4화보다 더 낮게. 더 확신 있게.
"제가… 감당할게요."
강진이 도하를 보았다. 오래 보았다. 도하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당신이 버틴 것의 무게가, 내 손끝으로 내려앉는다. 그것을 도하는 말하지 않았다.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었다. 어린 강진이 격리실 바닥에서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로 버텨온 것이. 도하의 손끝에 남아 있었다. 금빛처럼.
강진의 손이 움직였다.
도하의 손목을 잡았다.
세게 잡은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확실하게. 손바닥 전체가 도하의 손목을 감쌌다. 손가락이 맥박이 뛰는 곳을 덮었다. 그 힘에는 절박함이 있었다. 하지만 도하가 빼려고 하면 놓아줄 것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쥔 손에 여백이 있었다.
"가지 마."
두 글자였다. 그러나 그 두 글자 안에 강진이 이 사람에게 처음으로 하는 요청 전부가 들어 있었다.
도하는 고개를 들었다. 강진의 눈을 보았다. 공명 잔류의 파란빛이 아니었다. 두려움이 먼저 있었다. 그리고 그 두려움 뒤에, 더 오래된 것이 있었다. 어린 격리실에서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로 아무것도 내려앉지 않기를 기다리던 사람이.
도하는 손목을 빼지 않았다.
"…네."
한 글자였다. 그것뿐이었다.
강진의 손에서 힘이 천천히 빠졌다. 조이는 것이 아니라, 그냥 거기 있는 것이 되었다. 손목 위에 올려진 손처럼. 도하는 잡힌 채로 있었다.
창밖으로 아침이 왔다. 세이프 존의 불빛들이 하나씩 꺼지기 시작했다. 밤이 끝나는 방식이었다. 소등이 아니라, 빛이 더 많아져서 하나씩 덜 필요해지는 것.
강진이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도하도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둘의 호흡이, 한 박자 뒤에, 같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