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예외
차폐벽을 넘는 순간, 공기의 색이 바뀌었다.
색이 없는 색이었다. 세이프 존의 공기가 투명하다면, 언노운 존의 공기는 회색이었다. 빛이 닿는 방식이 달랐다. 서치라이트가 지면을 훑고 있었지만 그 빛이 지면 위에 머물지 않았다. 흡수되는 것 같았다. 먹혀들어가는 것 같았다.
도하는 자신이 여기에 있어도 되는지 묻지 않았다. 이미 답이 정해져 있었으니까.
KCA 현장 차량 두 대. 강진이 앞에 탔고, 도하는 두 번째 차에 탔다. 전투복이 지급되었다. 도하의 것은 비전투원용이었다. 차폐 소재. 가이딩 장갑 위에 얇은 전도성 레이어가 추가된 것. 손끝이 열려 있었다. 에덴 졸업 때 지급된 장갑과 같은 방식이었지만 소재가 달랐다. KCA 전장용. E급용이라는 표시는 없었다.
KCA 현장 관측관이 둘이었다. 기록 장비를 들고 있었다. 뒤에서 따라왔다. 이것이 검증의 방식이었다. 사람을 전장에 세워놓고, 숫자를 기록하는 것.
강진이 앞에서 걸었다.
전투복이 맞게 만들어진 사람처럼 걸었다. 이 사람이 섹터 0 전투원이라는 것이, 걸음걸이 하나에서 보였다. 어깨가 낮았다. 주변을 보는 방식이 달랐다. 정면을 보는 것 같지만 전방 180도를 읽고 있었다. 에덴에서 교관들에게서 본 것이었다. 하지만 교관들과 달랐다. 강진의 그것은 훈련이 아니라 몸이었다.
도하는 그 걸음 뒤를 따라갔다.
이건 계약이 아니라, 내가 잡는 손이다.
어비스가 나타난 건 차폐벽에서 400미터 지점이었다.
소리가 먼저였다. 소리라고 부르기 어려운 소리. 주파수가 너무 낮아서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뼈로 느끼는 것. 지면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도하의 발바닥에 그 진동이 전해졌다.
강진이 멈추었다.
도하도 멈추었다. 뒤에 따라오던 KCA 관측관들이 멈추었다.
강진의 손이 올라갔다. 손바닥이 뒤를 향해. 정지 신호였다. 그리고 손가락이 두 개. 열두 시 방향. 전방 정중앙.
어비스가 왔다.
소규모였다. 인간형은 아니었다. 이마고가 아니었다. 더 작고 더 빠른 것들이었다. 언노운 존의 오염이 응집된 형태. 세이프 존에는 없는 것들. 빛이 닿으면 윤곽이 보였고 빛이 사라지면 공기 속으로 녹아들었다.
강진이 전방으로 나갔다.
파동이 먼저 나갔다. S급의 파동은 달랐다. 도하의 저주파와 반대 방향이었다. 높고 날카로웠다. 어비스의 응집 구조를 직접 가르는 것이었다. 두 번째가 왼쪽. 세 번째가 오른쪽. 강진이 움직이는 방식은 낭비가 없었다. 에너지를 쓸 곳에만 정확히 썼다.
그런데 두통이 왔다.
도하는 비접촉 감지로 알았다. 100미터 거리에서도 강진의 파동 수치가 도하의 손끝에 전해졌다. 멀었지만. 저주파는 거리에 덜 감쇄했다. 강진의 심박수가 올라가고 있었다. 감각 부하 지수가 올라가고 있었다. 두통이 시작됐다는 신호. 어비스의 오염 파장이 S급 감각에 간섭하고 있었다.
KCA 관측관이 도하 옆에 섰다.
"가이드, 대기 위치입니다. 전방 진입은—"
도하는 이미 걷고 있었다.
관측관의 말이 끝나지 않았다. 도하는 뒤를 보지 않았다. 전방으로 걸었다. 강진 쪽으로. 발소리가 지면에 닿았다. 진동이 발바닥을 통해 올라왔다. 어비스의 응집 파장이 가까워질수록 귀에서 이명이 울렸다. 3화의 것과 같았다. 공명 역류. 강진의 감각이 도하의 신경계에 간섭하기 시작하는 것.
도하는 멈추지 않았다.
강진의 등 뒤 20미터까지 왔다. 강진이 세 번째 어비스를 처리하고 있었다. 왼손이 올라갔다. 파동이 집중되었다. 어비스가 해체되었다. 하지만 그 순간 강진의 무릎이 한 번 흔들렸다. 미세하게. 0.1초. 도하 외에는 아무도 보지 못했을 것이었다.
5화의 것이었다. 무릎에 힘이 빠지는 것.
도하는 달렸다.
뒤에서 관측관이 소리쳤다. 멀어졌다. 도하는 강진의 등 뒤에 섰다. 손을 올렸다.
등이었다. 어깨 사이. 접촉식이 아니었다. 손바닥이 전투복에 닿았다. 그 위로. 전도성 레이어가 있었다. KCA 전장용 가이딩 장갑의 기능이었다. 옷 위에서도 파동이 전달될 수 있도록.
파동을 열었다.
저주파. 120Hz 이하. 아래로. 더 아래로. 이번에는 직선이 아니었다. 도하의 손바닥에서 파동이 퍼져나갔다. 방사형으로. 등을 중심으로 강진의 신경계 전체를 감싸는 방식이었다. 교본에 없는 방식. 어비스의 오염 파장이 높은 대역에서 간섭하고 있었다. 도하의 파동은 그 아래를 지났다. 오염이 닿지 않는 깊이로. 암반 아래의 지하수처럼.
강진의 무릎이 다시 고정되었다.
어깨가 내려갔다. 심박수가 내려갔다. 감각 부하 지수가 한 단계 내려갔다. 두통 수치가 떨어졌다.
강진이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볼 수 없었다. 전방에 마지막 어비스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손끝이 떨리지 않았다. 이제. 파동이 고요했다.
마지막 어비스가 해체되었다.
정적이 왔다. 언노운 존의 정적은 세이프 존과 달랐다. 소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소리가 죽어 있는 것 같았다. 지면의 진동이 멈추었다.
KCA 관측관이 뛰어왔다.
"파동 수치 확인합니다. 에스퍼 상태—"
관측관이 단말기를 들었다. 화면을 보았다. 실시간 파동 수치가 떠 있었다. 도하의 가이딩 장갑에서 수집된 데이터. 파동 출력이 화면 위로 그래프로 표시되었다. 저주파 대역. 100% 근처의 출력값. 그리고 에스퍼 안정화 수치가 녹색 범위 안에 있었다.
관측관의 손이 멈추었다.
"이게…"
그때 관측관의 단말기 오른쪽 상단에서 오라클 연동 수치가 업데이트되었다.
MATCHING RATE: 0.00%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
현장 파동 수치는 100% 근처였다. 오라클 매칭률은 0%였다. 두 숫자가 같은 화면에서 동시에 보였다.
관측관이 재측정 버튼을 눌렀다. 돌아갔다. 다시 떴다.
0.00%.
"…재측정해도 동일합니다."
관측관의 목소리가 낮았다.
강진이 도하를 돌아보았다. 처음으로. 이 현장에서.
도하는 손을 내렸다. 전투복 위에서. 전도성 장갑이 손끝에서 파동의 잔열을 식히고 있었다.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왼쪽 귀에서 이명이 가시지 않았다. 언노운 존의 오염 파장이 도하의 신경계에 남긴 것이었다.
하지만 강진은 서 있었다.
무릎이 꺾이지 않은 채로. 두통이 멈춘 채로.
그것이면 됐다.
강진이 도하를 보는 시선이 8화의 것과 달랐다. 테스트실에서 MANUAL을 확인받던 시선이 아니었다. 지금 강진의 눈에는 무언가가 더 있었다.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 도하는 몰랐다. 재는 시선이 아니었다. 계산하는 시선이 아니었다.
강진이 말하지 않았다. 도하도 말하지 않았다.
KCA 관측관이 단말기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기록을 입력하고 있었다. 0%와 100%를 어떻게 기록해야 하는지 모르는 얼굴로.
아크로 돌아오는 차 안이었다.
강진이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이번에는 같은 차였다. 도하가 뒤에 탔다. KCA 현장 요원이 운전했다. 말이 없었다.
창밖으로 차폐벽이 멀어졌다. 세이프 존의 불빛이 가까워졌다.
강진이 말했다. 앞을 보면서.
"방사형으로 썼어?"
도하는 잠깐 멈추었다.
"…네."
"교본에 없는 거야."
"압니다."
"그런데 썼어."
"필요했으니까요."
강진이 더 말하지 않았다. 창밖을 보았다. 도하도 창밖을 보았다. 차폐벽이 이제 보이지 않았다. 세이프 존의 불빛들이 창을 채웠다.
강진이 낮게 말했다.
"뒤로, 라고 했는데."
도하는 그것을 기억했다. 현장에서 강진이 한 말. 전방으로 달려가는 도하를 보고 한 말. 뒤로. 짧은 두 글자.
"들었습니다."
"그런데 왔어."
"네."
침묵이었다. 강진이 창밖을 보았다. 도하는 강진의 뒷머리를 보았다. 전투복 목선 위로 짧은 머리카락이 있었다. 언노운 존의 공기가 아직 거기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다음에도 그럴 거야?"
도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모르겠습니다."
강진이 앞을 보았다. 그것이 대답이었다. 도하의 대답이. 모르겠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진은 알고 있었다.
펜트하우스였다. 밤이었다.
도하는 욕실에서 손을 씻었다. 전도성 장갑을 벗었다. 손끝을 보았다. 언노운 존의 오염 파장에 노출된 후유증이 손끝에 남아 있었다. 저림.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쥐어지기는 했다.
관자놀이가 아직 욱신거렸다. 이명이 거의 사라졌다.
욕실에서 나왔다.
도어벨이 울렸다.
도하는 멈추었다. 현관 인터폰 화면이 켜지는 소리가 거실에서 들렸다. 강진이 확인하는 것이었다.
잠시 침묵이 있었다.
강진이 도하 방 문 앞에서 멈추는 발소리가 들렸다.
"도하."
낮고 짧은 목소리였다.
도하가 문을 열었다. 강진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손에 종이가 있었다. A4 한 장. KCA 로고가 위에 찍혀 있었다.
강진이 종이를 도하에게 내밀었다. 도하가 받았다.
읽었다.
'KCA 재검증 통보서. 대상: 이도하 / 차강진 (이하 당사자). 본 통보는 언노운 존 현장 검증 결과 비인가 공명 반응 감지에 따른 공식 재검증 요청입니다. 재검증 일시: 익일 09:00. 장소: KCA 중앙 매칭실. 당사자 불참 시 계약 위반으로 간주됩니다.'
도하는 그 마지막 줄을 두 번 읽었다.
비인가 공명 반응 감지.
오라클 내부 경고였다. 도하가 방사형으로 저주파를 쓴 것. 그것이 오라클 시스템에 경고를 울렸다는 뜻이었다. 인가되지 않은 공명 방식. E급의 파동이 S급의 전장에서 작동했다는 것.
시스템이 두 사람을 위험으로 인식했다.
"읽었어?"
강진이 물었다.
"네."
"내일 09시."
"알겠습니다."
강진이 돌아서려 했다. 도하가 말했다.
"강진 씨."
강진이 멈추었다. 돌아보지는 않았다.
도하는 잠깐 생각했다. 말할 것이 있었다. 말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었다. 계약서의 어느 조항도 아니었다. 에덴에서 배운 대답도 아니었다. 그냥 나오는 것이었다.
"오늘… 괜찮으셨습니까."
강진이 멈춰 있었다.
"두통."
강진이 천천히 돌아보았다. 도하를 보았다. 짧게.
"없어."
"다행입니다."
강진이 도하를 보았다. 오래. 재는 시선이 아니었다. 인식하고 있는데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것을 보는 시선이었다.
"너는."
"네."
"관자놀이."
도하의 손이 반사적으로 관자놀이로 갔다. 눌렀다. 아직 욱신거렸다. 강진이 그것을 보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거짓말."
두 글자였다. 틀렸다는 말이 아니었다.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강진이 돌아섰다. 복도를 걸어갔다. 자신의 방으로. 문이 닫혔다.
도하는 종이를 손에 든 채 서 있었다.
재검증 통보서. 익일 09:00. 비인가 공명 반응 감지.
도하는 그 종이를 책상 위에 놓았다. 관자놀이를 다시 눌렀다. 욱신거렸다.
창밖으로 세이프 존의 밤이 보였다. 차폐벽이 먼 곳에 서 있었다. 서치라이트가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오늘 그 너머에 있었다. 오늘 그 너머에서 손을 올렸다. 전장 한복판에서. 전도성 장갑이 전투복 위에 닿던 것.
이건 계약이 아니라, 내가 잡는 손이다.
도하는 창에서 눈을 거두었다. 교본을 덮었다. 불을 껐다.
오라클 내부 경고등이 점등했다는 것을 도하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느끼고 있었다. 무언가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재검증이라는 이름으로. 내일 09시에.
그것이 두 사람을 어디로 데려갈지, 아직 아무도 몰랐다.
어둠 속에서, 도하는 손끝을 쥐었다 폈다.
저주파가 흘렀다. 여전히. 낮고, 느리고, 거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