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몰락 귀족의 품격
문틈으로, 편지 하나가 기어 들어왔다.
카이락스는 방으로 돌아와 코트를 벗고 있었다. 새벽 3시. 창밖으로 월식의 숲이 멀리 조용히 서 있었다. 맥동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지만 아까보다 느렸다. 자신이 누른 것이 효과가 있었다.
발밑에서 무언가가 스쳤다.
봉인된 편지였다. 문틈 아래로 밀려 들어온 것. 봉인 문양이 낯설었다. 성휘 학당의 인장이 아니었다. 벨제르가 쓰는 심연의 인장을 인간 문자로 위장한 것이었다.
가난한 척하기엔, 부하가 너무 성실했다.
봉인을 뜯었다. 두 부분이었다. 첫 번째는 보고서. 파편 관련 추가 정보와 연구실 접근 기록 분석. 핵심만 정리되어 있었다 — 해당 시각에 지하 2층에 머문 인원 셋. 알테리온 교수, 연구파 소속 교수, 조교 자격의 고학년 학생.
두 번째는 작은 상자였다. 결계 압축 포장. 심연 제조 방식. 뚜껑을 열자 냄새가 먼저였다. 짙고 강렬했다. 숙성. 검은 육포, 붉은 소금, 잎이 말려 단단해진 차.
벨제르가 어디서 이것을 구했는지는 묻지 않기로 했다.
*
창틀이 조금 열렸다. 그림자 하나가 창문 아래 걸렸다. 낮은 목소리가 들어왔다.
"식사와 추가 정보를 올립니다."
벨제르였다. 3층 창문 밑에 매달려 있었다.
"문이 있다."
"야간 감시를 피하기 위해 이 방법을 택했습니다."
카이락스는 보고서를 보면서 육포를 손으로 나눴다. 칼이 없었다. F급 기숙사에 식도는 지급되지 않았다. 싸구려 빵 위에 올렸다. 붉은 소금을 아주 조금. 차는 찬물에 담갔다.
창밖에서 미세한 소리가 들렸다. 벨제르였다. 칠죄 마왕군의 군주가 찬물로 우린 차와 빵 위의 육포를. 벨제르의 눈에는 '검소한 위장'이 아니라 '고귀한 절제'로 보일 것이었다.
착각이었지만 굳이 고칠 필요는 없었다.
"들어가라. 밝아지기 전에."
벨제르의 기척이 사라졌다.
*
"...뭔 냄새야."
카일이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코를 찌푸리고 있었다. 잠이 덜 깬 눈이었다.
카이락스는 보고서를 뒤집어 상자 위에 덮었다.
"고기인가? 이 시간에?"
"빵이다."
"그 검은 게 빵이야?"
"...빵이다."
카일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의심이 들어있는 눈이었다. 냄새가 너무 강했다.
"빚쟁이한테 받은 거 아니야? 금지된 물건 거래하는 사람이 학당에 있다고 들었는데."
"몰락 귀족가의 비상 식량이다."
카일이 잠시 말이 없었다. 몰락 귀족이라면 이상한 물건을 집안 창고에 쌓아두고 있을 수 있었다. 반박하기 어려운 설명이었다.
"...그래서 그걸 지금 먹는 거야. 새벽 세 시에."
"그래."
카일이 다시 침대로 돌아갔다. 담요를 뒤집어쓰며 투덜거렸다. '고약한 냄새', '0각이 무슨 귀족이야', '빚쟁이가 준 게 분명해' — 그러다가 몸을 반쯤 일으켜 카이락스를 보았다.
"근데 너, 밤에 어디 갔다 온 거야? 코트 젖었잖아."
카이락스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산책이다."
"새벽에? 금지구역 쪽에서 결계가 한 번 떨렸다고 했는데. 아까 복도에서 경비한테 들었거든."
카이락스의 손이 멈추지 않았다. 차를 홀짝이는 동작이 자연스러웠다.
"잠이 안 와서."
카일이 3초 동안 카이락스를 보았다. 그리고 담요를 다시 뒤집어썼다.
"...이상한 놈."
카일의 숨소리가 다시 규칙적이 되기까지 2분이 걸렸다.
그 2분 동안 카이락스는 보고서를 다시 꺼내 읽었다. 벨제르의 보고. 연구실 출입 기록 대조. 심연 파동과 유사한 잔향. 도구를 사용한 흔적. 심연제 물건일 가능성.
이 학당 안에 심연과 연결된 도구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진 자가 파편을 깨우고 있다.
한 명이 아닐 수도 있었다.
*
아침이었다.
카이락스는 식당으로 향하는 복도를 걷고 있었다. 카일이 옆에서 걸었다. 아침잠이 덜 깬 얼굴이었다.
"오늘 마력학 기초 시험이라는데. 0각이 시험을 어떻게 보는 거야?"
"앉아서 보면 된다."
"...아니 그게 아니라, 실기가 있다는 거잖아."
카일이 뭔가를 더 말하려다가 멈추었다. 복도 끝에서 누군가 오고 있었다. 학생회 견장을 단 학생이었다. 걸음이 빨랐다. 방향이 — 카이락스를 향하고 있었다.
학생회 학생이 카이락스 앞에서 멈추었다. 봉투를 내밀었다.
"레온 아르케인. 학생회 청문 소환입니다."
봉투를 받았다. 학생이 돌아갔다.
카이락스는 봉투를 열기 전에 — 봉인을 읽었다. 잉크와 다른 무언가. 파동이 스며 있었다. 이 봉투를 작성한 사람의 파동. 공문서에 개인 파동이 섞여 있다는 것은 — 서명이 아니라 감시가 목적이었다.
이 봉투를 열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봉인. 감시가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
카이락스는 봉투를 열었다.
'성휘 학당 학생회 — 청문 소환'
연무장 소란 건. 내일 오후 2시. 학생회관.
'심문관: 세르한 드 발크.'
카일이 옆에서 봉투를 흘끔 보았다.
"...학생회? 연무장 그 건으로? 야, 세르한 드 발크가 직접 심문한다고?"
카이락스는 봉투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런 것 같군."
"야, 그 사람 5각이야. 발크 공작가 장남이라고. 학당에서 황태자 다음이잖아. 그게 직접 0각을 심문한다는 건—"
"밥 먹으러 가자."
카일이 말을 멈추었다. 카이락스의 표정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런 긴장도 없는 표정. 학생회장의 심문을 통보받고도 밥 먹으러 가자고 하는 표정.
카일은 이상했다. 이 룸메이트는 항상 이상했다. 새벽에 산책을 하고, 정체불명의 식량을 먹고, 학생회장의 소환에 눈도 깜빡이지 않는다.
"...진짜 이상한 놈이야."
그 말을 듣고도 카이락스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
복도 끝.
리아는 F급 기숙사 복도 창문 밖에서 그 장면을 보았다. 학생회 소환장을 받는 레온 아르케인. 그리고 그 봉투에서 — 리아의 감각이 파동을 읽었다.
봉인 안에 감시 파동이 섞여 있었다. 학생회장의 것이었다. 세르한 드 발크. 5각의 파동이 잉크 밑에 깔려 있었다.
리아는 창에서 물러섰다.
레온 아르케인에게 학당의 권력이 향하고 있었다. 학생회. 그리고 아마 — 더 위에서도.
리아는 주머니 안의 예언서를 만졌다. 오늘 아침, 새로운 문장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젯밤 숲에서 본 것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무릎 꿇은 남자. 속은 경계석. 나뭇가지를 들고 아무렇지 않게 걸어 나오는 뒷모습.
저 사람의 주변에서 무언가가 좁혀오고 있었다.
그리고 리아 자신도 — 그 좁혀오는 것들 중 하나라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