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 숫자와 땀
불펜 대결은 경기보다 잔인하다.
경기에는 심판이 있다. 불펜 대결에는 팀원들이 있다. 팀원들은 숫자만 보는 게 아니라 태도를 본다.
오늘 상대는 타자가 아니다. 내부의 평가다.
*
오후 1시. 불펜에 라인이 생겼다.
왼쪽에 차도윤. 옆에 다른 2학년 두 명. 뒤에 신입생 네 명. 알아서 모였다. 건우 쪽 라인이었다.
오른쪽에 이민호가 혼자 섰다. 물병을 들고. 눈이 정면을 봤다.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은 위치였다.
철수가 포수 장비를 착용했다. 건우 쪽 포수는 정우진 선배가 들어왔다. 3학년. 포수 포지션 최고참.
감독이 가운데 섰다.
"규칙은 없어. 10구씩. 내가 지정한 타자 상대로. 결과로 말해라."
건우가 먼저였다.
*
박건우가 마운드에 올랐다.
워밍업 없이 바로 공을 잡았다. 큰 와인드업. 하체가 크게 열렸다. 감독이 가르친 전형적인 메카닉이었다.
공이 나갔다. 스피드건이 찍혔다.
145.
건우 쪽 라인에서 소리가 났다. 감탄인지 확인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소리.
나는 랩소도 화면을 봤다. 건우 투구의 Spin Efficiency가 자동으로 찍히고 있었다.
83%.
감독은 이 숫자를 보지 않는다. 145라는 숫자만 본다. 83%의 147과 98%의 142는 타자 체감이 다르다. 83%는 공이 예측 궤적대로 떨어진다. 타이밍만 맞추면 친다. 98%는 공이 덜 떨어진다. 타자 눈에 뜨는 것처럼 보인다. 타이밍을 맞춰도 배트 위로 지나간다.
그 차이를 3년 뒤 프로 스카우트는 알아본다. 지금 이 불펜에서 아는 사람은 나뿐이다.
건우의 10구가 끝났다. 평균 구속 145.7. 헛스윙 7개. 파울 2개. 안타성 타구 1개.
건우 쪽 라인에서 박수가 나왔다. 짧고 확신에 찬 소리였다.
차도윤은 박수를 치지 않았다. 랩소도 화면을 봤다. 83이라는 숫자를 봤을 것이다.
*
내 차례였다.
걸어가면서 팔꿈치를 한 번 눌렀다. 통증이 없었다. 어깨를 한 번 돌렸다. 가동 범위 정상이었다.
마운드 위에서 발을 정렬했다. 러버에 발끝이 닿는 감각. 16살의 발. 28살의 기억. 이 감각의 괴리는 이제 1초면 좁힌다.
건우 쪽 라인이 보였다. 팔짱 낀 사람들. 기다리는 눈들. 그 눈들이 원하는 게 뭔지 안다. 실패. 145에 비해 초라한 142.
주겠다. 데이터가 현실을 이기는 장면을.
철수가 사인을 냈다. 1. 포심.
첫 공. 세트 포지션. 하체 먼저. 릴리스.
142.
Spin Efficiency: 98%.
타자가 배트를 들었다. 공이 미트 안으로 들어갔다. 헛스윙.
142인데 헛스윙이 나왔다. 건우 쪽 라인이 조용해졌다.
2구째. 슬라이더. 포심과 같은 팔 각도. 7미터 지점에서 바깥쪽으로 3cm 흘렀다. 타자의 배트가 포심 코스를 향했다. 공이 없었다. 헛스윙.
4구째. 체인지업. 전날 밤에 만들었다. 이 타자에게 처음 쓴다.
130.
타자의 배트가 공보다 먼저 내려갔다. 공이 뒤에서 들어왔다. 헛스윙.
불펜이 조용해졌다.
건우가 팔짱을 끼던 손을 풀었다.
*
10구가 끝났다.
평균 구속 140.7. Spin Efficiency 평균 97.4%. 헛스윙 7개. 파울 2개. 땅볼 1개.
헛스윙 수는 건우와 같다. 구속은 5km 낮다.
감독이 나와 건우를 번갈아 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건우가 먼저 말했다.
"땀 좀 봐. 10구 던지는데 땀도 안 났잖아."
맞다. 땀이 없었다. 강도를 올리지 않았으니까. 설계한 구간 안에서만 움직였다.
"땀은 증거가 아닙니다."
"야구는 근성이야. 몸을 다 써야 공이 산다."
"야구는 근성이 아닙니다. 야구는 숫자입니다."
불펜이 조용했다.
"제 평균 구속은 140.7입니다. 타자 체감 구속은 144.8에 가깝습니다. 건우 선배 체감 구속은 145.7 그대로입니다. 헛스윙 수는 같습니다. 구속은 5km 차이납니다."
건우가 나를 봤다.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142로 프로 가봐."
"가겠습니다. 팔꿈치가 멀쩡한 채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
불펜에서 아무도 먼저 말하지 않았다.
이민호가 오른쪽 끝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시선이 랩소도 화면에 있었다. 83과 97.4. 두 숫자. 그 숫자들을 오래 보고 있었다.
차도윤도 랩소도 화면을 봤다. 아까보다 더 오래. 손가락 하나로 화면 테두리를 두드렸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앞을 봤다.
코치가 메모지에 뭔가를 적었다.
감독이 입을 열었다.
"결과는 봤다."
짧았다. 어느 쪽이 이겼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건우. 오늘 Spin Efficiency가 83이었다."
건우가 눈을 한 번 좁혔다.
"시우."
"네."
"좋아. 그럼 120개 던져봐."
불펜이 다시 조용해졌다.
120구. UCL 안전 투구 수 기준은 105구. 130구를 넘기면 부상 확률이 3배. 그 사이 어딘가인 120이라는 숫자가, 테스트인지 압박인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내려왔다.
감독이 웃었다. 눈은 웃지 않았다.
*
이민호는 자기 자리에서 그 말을 들었다.
120.
물병을 든 손이 잠깐 굳었다.
강시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표정도 없었다. 그게 오히려 더 불편했다.
민호는 물병을 가방에 넣었다. 시선을 내렸다.
건우가 장난감이라고 했던 공이 헛스윙 일곱 개를 만들었다.
그 사실이 아직도 손에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