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 선택
120이라는 숫자는 목표가 아니다.
사고다.
그리고 누군가에겐, 교육이다.
밤 내내 그 숫자를 생각했다.
12년 전, 팔꿈치가 끊어지기 사흘 전의 감각이 있었다. 통증이 아니었다. 경고였다. 팔꿈치 안쪽이 당기는 감각. 투구 직후 손끝이 조금 더 빠르게 식는 느낌. 그때 멈췄어야 했다. 멈추지 않았다. 45구를 더 던졌다. 그 결과가 수술이었다.
105구는 그 경계 아래다. 120구는 그 위다.
감독은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모를 것이다. 둘 다 나쁘다. 알면서 시킨다면 압박이다. 모르면서 시킨다면 무지다. 어느 쪽이든 내 팔꿈치가 그 비용을 낸다.
나는 숫자를 피하지 않는다. 위험만 피한다.
*
다음 날 아침 6시 45분. 훈련 시작 15분 전.
가방에서 노트를 꺼냈다. 어제 밤에 적어둔 페이지를 폈다.
타협안.
120구를 던지지 않고도, 같은 시간 안에 더 많은 아웃을 잡는 방법. 투구 효율이 높으면 이닝당 투구수가 줄어든다. 105구로 7이닝을 완투하는 게 120구로 5이닝 던지는 것보다 팀에 이익이다. 그 계산을 감독에게 보여준다.
노트를 가방에 넣었다. 운동장으로 나갔다.
*
오전 불펜. 감독이 먼저 와 있었다.
"120구 던져."
짧았다. 어제 저녁의 연장이었다.
공을 손에 쥐었다. 한 박자 멈췄다.
"감독님."
"105에서 멈추겠습니다."
불펜이 조용해졌다.
"고교 투수 권장 투구 수 기준, 단일 세션 105구 이내입니다. 이걸 넘기면 팔꿈치 인대 부하가 임계치를 초과합니다. 오늘 15구를 더 던지면 이번 시즌 어딘가에서 그 15구가 빠집니다. 총량이 줄어드는 게 아닙니다. 위험 구간이 당겨지는 겁니다."
감독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 말이 어디서 나왔어."
"제 계산입니다."
감독이 한 발 앞으로 나왔다. 목소리는 낮아졌다.
"강시우. 너 지금 팀에서 필요 없다는 말 듣고 싶냐."
공개적인 압박. 여러 사람 앞에서 굴복시키면 권위가 세워진다. 굴복하지 않으면 탈락시킨다.
두 선택지가 있었다. 던진다. 안 던진다. 던지면 오늘은 넘어간다. 하지만 다음 번이 온다. 110구. 115구. 한 번 양보하면 선이 없어진다. 안 던지면 지금 충돌한다. 하지만 선이 생긴다.
공을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옮겼다. 그리고 옆구리 아래로 내렸다.
던지지 않겠다는 동작이었다.
*
"타협안이 있습니다."
감독이 눈을 한 번 좁혔다.
"120구를 던지지 않고도, 같은 훈련 시간 안에 더 많은 아웃을 만들 수 있습니다."
"들어봐."
짧았다. 하지만 말을 멈추지 않았다는 건 반응이었다.
"어제 불펜 대결에서 10구 동안 헛스윙 7개를 만들었습니다. 이 비율을 실전에 적용하면, 한 타자를 상대하는 데 평균 투구수가 3.1구입니다. 9이닝 27아웃 기준으로 84구면 완봉이 가능합니다."
감독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20구로 7이닝을 버티는 투수보다, 84구로 9이닝을 던지는 투수가 팀에 유리합니다. 불펜도 아낍니다."
코치가 뭔가를 적었다. 손이 멈추지 않았다.
감독이 팔짱을 끼었다가 풀었다. 그리고 오른쪽 어깨를 한 번 눌렀다. 습관적인 동작이었다. 아픈 곳을 누르는 사람의 손.
현역 시절 오른쪽 어깨 부상. 투수로서 한계를 느끼고 지도자로 전환. 그 부상이 어디서 왔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손이 내 어깨를 밀어붙이는 이유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자기 한계를 남에게서 넘게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면 그냥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내 팔꿈치는 다르다.
"좋아. 그럼 실전에서 증명해."
불펜이 조용한 채로 있었다. 코치가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2초. 다시 메모지를 봤다.
*
훈련이 끝나고, 철수가 옆에 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창고 앞에서 랩소도 케이스를 내려놓는데, 철수가 말했다.
"공 내려놓을 때 손 봤어."
"네."
"떨지 않았어."
관찰이었다. 포수는 배터리를 구성하는 사람이다. 투수의 손을 본다.
"떨면 안 되는 장면이었습니다."
철수가 장갑을 벗었다. 가방에 넣었다.
"연습경기 일정 알아?"
"모릅니다."
"다음 주 화요일. 상원고 상대."
나를 보지 않으면서 말했다. 정보 전달이었다.
다음 주 화요일.
"감사합니다."
철수가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먼저 걸어갔다.
그 걸음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았다. 말로 하지 않는 사람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