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괜찮아?
3월 3일 화요일, 오전 8시 22분.
연서고등학교 정문 앞에서 윤시하는 잠깐 멈췄다.
교복이 몸에 맞는지 확인하는 척했지만, 사실은 그냥 서 있고 싶었다. 전학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래도 매번 첫날은 이 짧은 정지가 필요했다. 안으로 들어가면 다시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공기, 새로운 눈치 게임이 시작되니까.
바람이 한 번 불었다. 교복 깃이 날렸다.
윤시하는 가방 끈을 고쳐 잡고 걸었다.
정문을 들어서자 등교하는 학생들이 물결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삼삼오오 무리 지어 걷는 아이들, 이어폰을 낀 채 고개 숙인 아이들, 교문 앞 편의점 쪽으로 달려가는 아이들. 개학 첫날 특유의 소음이 있었다. 설레는 것도 긴장한 것도 아닌, 그냥 다시 시작됐다는 사실을 서로 확인하는 것 같은 웅성거림.
교문 기둥 옆에 공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2026학년도 신학기 안전교육 안내, 학폭 예방 서약서 제출 기한. 그 아래 작은 글씨로 '무관용 원칙 재확인'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윤시하는 그냥 지나쳤다. 전학 서류를 처리할 때 교무실 선생님이 이미 간략하게 설명해 준 내용이었다. 작년에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윤시하는 안내 문자에 찍힌 교실 번호를 다시 확인했다. 2학년 7반. 본관 3층.
본관 입구로 들어서자 복도에 왁자지껄한 목소리들이 가득했다. 여름 방학 어떻게 보냈냐는 말들이 들릴 자리에 개학 첫날이라 온통 겨우내 못 한 말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신발장 앞에서 실내화로 갈아 신으면서, 윤시하는 자신을 힐끗거리는 시선 몇 개를 눈치챘다. 전학생 특유의 어색한 주목. 이것도 익숙한 것이었다.
계단을 올라가며 교실 번호를 확인했다. 3층 복도가 조용했다. 아직 2학년 반들의 첫 조회가 시작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모퉁이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됐다.
윤시하가 코너를 돌았다.
충돌은 그 순간이었다.
무언가 단단한 것이 어깨에 부딪혔다. 충격에 한 발짝 뒤로 밀렸다. 가방이 흔들리고, 손에 들고 있던 전입 서류 봉투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종이 몇 장이 미끄러졌다.
윤시하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굳었다.
복도가 조용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소리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있던 소리들이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것. 지나가던 학생 둘이 멈췄다. 뒤에서 오던 누군가도 발을 멈춘 것 같았다. 공기가 달라졌다.
부딪힌 상대는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교복 상의 단추 두 개가 풀려 있었다. 머리카락이 단정하게 묶이지 않은 채 얼굴 옆으로 흘러내려 있었다. 처음에 눈에 들어온 건 눈이었다. 가늘게 뜬 눈이 윤시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표정이랄 게 없었다. 화가 났다기보다 그냥 차가운 쪽이었다.
강수현이었다.
윤시하가 그 이름을 몰랐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전학생이었으니까. 그래도 눈앞의 분위기는 충분히 읽혔다. 학교마다 이런 종류의 분위기가 있었다.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을 몸이 먼저 아는 사람들.
강수현의 오른손이 천천히 올라왔다.
완전히 올라오지는 않았다. 올라오다 멈췄다. 손이 허리 높이쯤에서 잠깐 떠 있다가 다시 내려갔다. 그 짧은 순간, 강수현의 눈빛이 바뀌었다. 뭔가를 참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주변 학생들이 숨을 죽이는 게 느껴졌다.
윤시하는 그 순간 말이 먼저 나왔다.
"괜찮아?"
강수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금."
"응."
"나한테 괜찮냐고 물은 거야?"
목소리가 낮았다. 낮은데 또렷했다. 듣기 싫다거나 무섭다거나 그런 것보다, 그냥 진짜로 의아하다는 톤이었다.
"아, 미안해. 내가 코너를 제대로 안 보고 꺾었어." 윤시하가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집으며 말했다. "먼저 부딪혔는지 네가 먼저 부딪혔는지 모르겠는데 일단 양쪽 다 좀 아프지 않았어?"
강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윤시하는 서류를 정리하면서 한 번 더 봤다. 그 눈이 아직도 자신을 보고 있었다. 어이없다는 표정이 조금, 그 아래 뭔가 다른 것도 있는 것 같았다. 분위기를 읽을 시간이 없었다. 일단 서류부터 챙기고 교실로 가야 했다.
봉투 안으로 종이를 밀어 넣으면서 윤시하가 일어섰다.
"무서운 건 알겠는데... 다친 건 없지?"
몇 초가 흘렀다.
강수현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윤시하는 그걸 대답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가방을 다시 고쳐 잡고 7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복도가 조금씩 다시 소리를 되찾았다. 숨 죽이던 학생들이 각자의 길로 흩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야."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윤시하가 돌아봤다. 강수현은 여전히 거기 서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윤시하를 보고 있었다.
"전학생이지?"
"응."
"7반?"
"그것도 맞아."
잠깐의 침묵이 있었다.
강수현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냥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돌렸다. 마치 딱히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윤시하는 7반으로 걸어갔다.
교실 문 앞에 남자애 하나가 서 있다가 눈이 마주쳤다. 키가 윤시하보다 약간 작았고, 눈이 빠르게 돌아가는 타입처럼 보였다. 그 애가 복도 끝 쪽을 한 번 봤다가 윤시하를 다시 봤다.
"야, 너 방금."
"응."
"강수현이랑 부딪혔잖아."
"부딪혔어."
남자애가 잠깐 뭔가를 기다리는 것 같은 표정을 했다. 윤시하가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자 그 애가 먼저 말했다.
"그 인간 학교에서 건드리면 안 되는 거 알아? 아니 진짜로. 2학년 중에 쟤한테 맞고 싶은 애 없어."
"알 것 같아."
"그러면서 괜찮냐고 물은 거야? 아까 다 들렸거든?"
윤시하가 교실 문을 밀었다. 안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일단 들어가자. 담임 오기 전에 자리 찾아야 하잖아."
남자애가 잠깐 멍한 표정을 하더니 따라 들어왔다.
"아, 나 박지훈. 같은 반이야."
"윤시하."
"알아, 전학생 온다고 담임이 어제 말했잖아. 근데 너 겁이 없냐, 아니면 몰랐냐."
"둘 다 아닌 것 같아."
박지훈이 뭔가 더 말하려는 것 같았지만, 교실 앞에서 누군가 발표라도 하듯 목소리를 높였고, 그 소리에 대화가 자연스럽게 끊겼다.
윤시하는 교실 안을 훑었다.
개학 첫날 특유의 배치가 있었다. 좋은 자리에는 이미 선점한 애들이 앉아 있고, 나머지 자리들은 아직 눈치싸움 중이거나, 그냥 아무 자리나 앉아 있거나. 창가 쪽 두 번째 줄에 빈 자리가 있었다. 옆 자리에 앉은 남자애가 책상 위에 엎드려 있어서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윤시하는 그리로 갔다.
앉으면서 창문 쪽을 봤다. 운동장이 보였다. 체육복 차림의 선생님이 라인을 확인하며 걷고 있었다. 하늘이 아직 3월 초 특유의 흰색이었다.
10분쯤 뒤에 담임이 들어왔다. 40대 중반쯤의 여자 선생님이었다. 피곤한 것도 아니고 기운 넘치는 것도 아닌, 딱 적당한 페이스의 눈빛이었다.
"자, 개학이야. 앉아."
웅성거림이 가라앉았다.
"새 학기 규칙 설명 전에, 먼저 소개할 친구 있어. 이번에 전학 온 윤시하."
윤시하가 일어섰다.
짧게 봤다. 서른 명이 조금 안 되는 눈들이 자신에게 꽂혀 있었다. 몇 개는 관심, 몇 개는 무심, 몇 개는 이미 딴 데 가 있었다. 오른쪽 창가 끝 자리에서 눈 하나가 아직 자신을 보고 있었다. 강수현이었다. 보는 건지 그냥 시선이 그쪽에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윤시하예요. 잘 부탁해요."
짧게 끝냈다.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였다.
담임이 반응 없이 다음으로 넘어갔다. "자리는 지금 앉은 데로 일단 가고. 다음 주에 뽑기 한다." 몇 개의 탄식 소리가 났다가 사그라들었다.
오전 수업이 시작됐다.
첫날은 대부분 행정 처리와 교과서 배부, 반 규칙 공지로 채워졌다. 윤시하는 그것들을 처리하면서 교실 안의 지형도를 서서히 읽어 나갔다. 어디가 중심이고 어디가 주변인지, 누가 자연스럽게 시선을 모으는지, 누가 조용하게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지.
강수현은 교실 오른쪽 끝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아 있었다.
창가 자리였다. 수업이 시작된 뒤 거의 앞만 봤는데, 그 앞을 보는 방식이 집중하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그냥 두는 것 같은 눈이었다.
점심이 되면서 교실 분위기가 풀렸다.
급식실로 내려가는 길에 박지훈이 옆에 붙었다.
"어때, 첫날?"
"아직 모르겠어."
"솔직하다." 박지훈이 계단을 내려가면서 말했다. "아까 강수현 건은 진짜로 운이 좋은 거야. 걔 예전에 한 애 복도에서 부딪혔다가, 뭐 3초도 안 됐나, 바로 교무실 끌려갔거든."
"그게 이번엔 왜 아니었을 것 같아?"
박지훈이 잠깐 생각하는 표정을 했다.
"그러니까 나도 그게 좀 이상했거든. 걔 손 올라오다가 멈췄잖아. 분명히."
"무관용 규정?"
"그것도 있겠지. 근데." 박지훈이 목소리를 낮췄다. "그 전에 네가 괜찮냐고 먼저 물었잖아."
"그러니까."
"아무도 그렇게 안 해, 보통. 걔한테 맞을까 봐 다 피하거든. 근데 네가 거꾸로 걱정을 했으니까..."
"의표가 찔렸겠지."
박지훈이 웃었다. 조금 의외라는 듯한 웃음이었다.
"그런 말을 태연하게 하네."
급식실이 가까워졌다. 선생님이 줄을 지어 세우기 시작했고, 바깥이 왁자지껄해졌다. 배고픔과 자유가 뒤섞인 점심 특유의 소음이었다. 복도 어딘가에서 떡볶이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아직 급식이 나오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누군가 빵을 먹고 있거나 아침에 사 온 걸 꺼냈거나 하는 것 같았다.
줄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작은 일이 있었다.
강수현이 급식실 입구 쪽으로 걸어왔다.
소리가 없었다. 강수현이 지나가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비켜났다. 의식하는 것도 아니고 신경 쓰는 것도 아닌, 그냥 물이 비켜나듯 공간이 생겼다. 강수현은 그 사이를 걸어서 줄 앞 어딘가에 섰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윤시하는 그걸 봤다. 그리고 자신이 들고 있는 급식 쟁반을 내려다봤다.
오후 수업까지 끝났다. 하교 시간이었다.
교실에서 짐을 챙기는데 박지훈이 물었다.
"어디 살아?"
"청명 쪽."
"아, 학원가 있는 데? 그럼 언덕길로 내려가겠네."
윤시하는 가방을 챙기면서 교실을 한 번 돌아봤다. 학생들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강수현은 이미 없었다. 언제 나간 건지도 몰랐다.
"나 먼저 간다."
박지훈한테 말하고 교실을 나왔다.
복도가 하교 인파로 가득했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서 자연스럽게 흐름을 따라 걸었다. 오전보다 공기가 조금 풀린 것 같았다. 남쪽 창문으로 햇볕이 들어왔다. 따뜻하지는 않았다. 3월 초의 햇볕이었다. 밝지만 덥지 않은.
정문 밖으로 나오자 학원가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였다. 언덕이었다. 경사가 꽤 있었다.
윤시하가 내려가기 시작할 때, 언덕 중간 즈음에 편의점 간판이 보였다. 달빛 편의점. 3월의 오후 햇살 속에서 낡은 간판이 빛을 받고 있었다.
뭔가 사고 싶었다. 첫날이 꽤 길게 느껴진 것치고는 배가 고픈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잠깐 어딘가 들어가 있고 싶은 기분이었다.
편의점 문을 밀었다.
냉장고 소리가 들렸다. 기계 특유의 윙윙거림. 천장 조명이 낮에도 켜져 있었다. 카운터 안에 3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책을 읽고 있었는데, 윤시하가 들어오자 한 번 봤다가 다시 내려다봤다.
음료 코너를 둘러보다가 생수를 하나 집었다. 계산대로 가는 길에 삼각김밥 코너를 지나쳤다. 참치마요가 하나 남아 있었다. 집었다.
계산을 하면서 점원이 물었다.
"전학생이야?"
"네."
"연서고?"
"어떻게 아세요?"
"교복." 점원이 영수증을 내밀었다. "이 시간에 이 교복 입고 내려오는 애들은 다 연서고야."
윤시하는 영수증을 받아 가방에 넣었다. 편의점 앞 작은 테이블에 자리가 하나 있었다. 봉지를 열면서 앉았다.
오늘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에서 정리되는 것 같았다. 복도 충돌. 강수현. 박지훈. 첫 수업들. 급식실의 공기. 하교 인파.
새로운 학교마다 첫날은 늘 이 정도였다. 전달되는 정보량이 많아서 피곤한 것인지, 낯선 환경 자체가 피로한 것인지 잘 몰랐다. 아마 둘 다겠지.
생수 뚜껑을 열었다.
편의점 문이 열렸다.
들어온 사람을 힐끗 봤다.
강수현이었다.
윤시하는 시선을 다시 테이블로 내렸다. 생수를 마셨다.
발소리가 음료 코너 쪽으로 갔다가, 잠깐 멈췄다가, 다시 카운터 쪽으로 왔다. 카운터에서 짧은 소리가 들렸다. 동전 소리. 캔 음료가 카운터 위에 놓이는 소리.
강수현이 나가려는 것 같았다.
문 바로 앞에서 발이 멈췄다.
"야."
윤시하가 봤다.
강수현이 서 있었다. 캔 음료를 들고 문 손잡이 옆에. 윤시하를 보고 있었다. 아까 복도에서와 같은 눈이었다. 표정 없이 가늘게 뜬 눈.
"아까 서류 다 챙겼어?"
"응."
"빠진 거 없어?"
"없어."
강수현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는 것 같더니 문을 밀고 나갔다.
편의점이 다시 조용해졌다. 냉장고 소리가 돌아왔다. 카운터 안 점원이 책을 덮으면서 중얼거렸다.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였다.
"오늘부터 바빠지겠네."
윤시하는 삼각김밥 포장지를 뜯으면서 창밖을 봤다.
강수현은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올라가다가, 딱 한 번.
멈췄다.
이쪽을 보는지 다른 데를 보는지 거리가 있어서 확실하지 않았다. 1초도 안 됐다. 그리고 다시 걸었다.
윤시하는 참치마요 한 입을 먹었다.
내일도 이 언덕을 오르내리게 될 것이었다. 이 편의점 앞을 지나치겠지. 저 학교로 다시 들어가게 될 것이었다.
첫날치고는 꽤 많은 일이 있었다.
충분히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