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웃는 거 피곤해 보인다
3월 10일 화요일, 아침 8시 35분.
2학년 7반 교실 문 앞이 평소보다 시끄러웠다.
자리 뽑기가 있는 날이었다. 선생님이 개학 첫날 예고한 그 뽑기. 일주일 동안 임시로 쓰던 자리를 오늘 공식화하는 날이었다. 벌써부터 창가 자리를 두고 은근한 눈치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창가 2열은 진짜 황금이야. 바람도 들어오고 햇볕도 적당히."
박지훈이 교실 문 앞에서 윤시하 옆에 서서 말했다.
"어디 나오고 싶어?"
"별로 없어."
"왜? 자리 중요하잖아."
"다 거기서 거기야, 결국엔."
박지훈이 잠깐 윤시하를 봤다가 다시 교실 안을 봤다. "그런 말 할 수 있는 게 부럽다." 하고 중얼거렸다.
교실 안으로 들어서자 담임 백선영 선생님이 앞에 서 있었다. 손에 제비 통 같은 걸 들고 있었다. 반 아이들이 이미 대부분 들어와 있었다.
"오늘 자리 뽑기 하고 2주 동안 유지할 거야. 번호 순서대로 앞으로."
웅성거림이 좀 더 커졌다가 잦아들었다.
줄이 만들어지면서 윤시하는 번호 순서대로 중간쯤에 섰다. 앞에 박지훈이 있었다. 뒤에는 잘 모르는 남자애. 천장 형광등 하나가 미세하게 깜빡였다. 유리창 밖으로 3월의 아침 햇살이 교실 바닥에 길게 늘어졌다.
박지훈이 제비를 뽑으면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봤다가, 쪽지를 펼치면서 입꼬리가 올라갔다. 3열 창가. 윤시하도 뽑았다.
4열 2번.
창가도 아니고 뒤도 아닌 딱 중간이었다. 큰 감흥 없이 자리를 찾아갔다.
그런데 4열 1번 자리에는 이미 누군가 앉아 있었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머리카락이었다. 단정하게 정돈된 머리. 교복 카라가 칼같이 세워져 있었다. 책상 위에 필통이 올려져 있고, 교과서가 이미 번호 순서대로 정렬되어 있었다. 앉아서 핸드폰을 보고 있던 그 애가 윤시하가 옆에 서자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미소가 먼저였다.
자연스럽고 온도가 있는 미소. 연습한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무심코 지어진 것도 아닌 것 같은, 딱 적당한 밝기의 미소.
"옆이야?"
목소리도 밝고 부드러웠다.
"응."
"잘됐다." 그 애가 핸드폰을 내리며 말했다. "전학생이면 더 어색하겠다, 주변이. 내가 먼저 친해져 줄까?"
윤시하는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고마운데."
"나 김하늘이야. 혹시 이름 알아?"
"윤시하."
"알아. 첫날 전학생 소개 들었으니까." 김하늘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냥 확인하고 싶었어."
윤시하는 가방을 책상 옆 고리에 걸면서 옆을 봤다. 김하늘은 다시 교실 앞을 보고 있었다. 담임이 자리 배정 결과를 칠판에 받아 적고 있었다. 분필 소리가 교실에 울렸다.
뭔가 처음에 파악하기 힘든 종류의 사람이었다.
불편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옆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편안해지는 것 같은 온도. 처음 만난 사람한테 생기기 어려운 온도였다. 그런데 딱 거기서 뭔가 걸리는 느낌이 있었다.
수업이 시작됐다.
오전 세 교시가 지나가는 동안, 김하늘이 두 번 쪽지를 건넸다. 처음 건 '선생님이 이 부분은 시험 문제로 잘 나와'였고, 두 번째 건 필기 색이 없냐는 것이었다. 색 형광펜이 하나 빠져나오고 들어왔다.
작은 일이었다. 별 거 아닌 일이었다.
그런데 그 두 가지가 어색하지 않게 이루어졌다는 게 이상하게 더 눈에 들어왔다. 처음 만나 옆에 앉은 사이에서 이 정도면 꽤 자연스러운 거였다.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두 번째 교시와 세 번째 교시 사이 쉬는 시간에, 교실 분위기가 잠깐 달라졌다.
강수현이 뒤 창가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갔다. 그것뿐이었다. 그런데 강수현이 일어서는 순간, 그쪽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과 어쩔 수 없이 시선이 가는 사람들이 동시에 생겼다. 소음이 살짝 줄었다가 강수현이 복도로 사라지고 나서야 다시 올라왔다.
김하늘이 그걸 보고 있다가 윤시하를 봤다.
"신기하지?"
"조용해지는 거요?"
"응. 쟤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김하늘이 볼펜 뚜껑을 닫으면서 말했다. "그게 쟤 힘이야."
점심 때 김하늘이 급식실로 같이 가자고 했다.
이수빈이라는 애도 함께였다. 쾌활하고 목소리가 큰 애였는데, 김하늘 옆에 항상 붙어 있는 타입이었다.
"전학생 처음이야?"
이수빈이 급식 줄에서 물었다.
"아니."
"그렇구나. 어디서 왔어?"
"지방에서."
"어디."
"구체적인 데는 별로 안 중요해서."
이수빈이 잠깐 멈췄다가 김하늘을 봤다. 김하늘은 표정 변화 없이 쟁반을 들었다.
세 사람이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급식이 오늘은 짜장밥이었다. 소스 냄새가 급식실 전체에 퍼져 있었다.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 의자 끌리는 소리, 여기저기서 웃음 터지는 소리.
이수빈이 먹으면서 계속 말했다. 반에서 누가 어떻고, 작년에 어떤 일이 있었고, 어느 선생님이 어떻고. 윤시하는 적당히 들으면서 밥을 먹었다. 김하늘은 이수빈 말에 적당히 맞장구를 치면서, 중간중간 윤시하 쪽을 봤다.
"재밌어?"
윤시하가 먼저 말한 게 아니었는데 김하늘이 그렇게 물었다.
"뭐가요."
"학교 얘기. 이수빈이 하는 거."
"들을 만해."
"거짓말이지." 김하늘이 부드럽게 웃었다. "반 소문이 재밌는 건 당사자들 때지. 모르는 사람 얘기는 그냥 소음이잖아."
"그걸 왜 계속 하는데요."
"내가 재밌으니까." 잠깐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네가 어떤 걸 반응하는지 보고 싶기도 했어."
윤시하는 잠깐 멈췄다가 다시 먹었다. 김하늘은 그 반응을 뭔가 재밌게 봤다. 이수빈은 둘의 대화를 눈치채지 못한 채 계속 말했다.
오후 수업이 끝나기 30분 전, 국어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잠깐 교무실에 갔다 온다고 나갔다. 교실 안이 다시 웅성거렸다. 의자 끌리는 소리, 누군가 과자 봉지를 뜯는 소리, 뒷줄에서 웃음이 터지는 소리. 금방 돌아올 선생님을 의식하면서도 이 짧은 자유를 최대한 쓰려는 교실 특유의 분위기였다.
김하늘이 윤시하 쪽으로 몸을 돌렸다.
"윤시하, 물어봐도 돼?"
"뭘요."
"강수현이랑 사이 좋아?"
윤시하가 봤다. 김하늘의 표정은 평소와 같았다. 묻는 눈이 날카롭거나 경계하는 눈은 아니었다. 그냥 궁금한 것처럼 보였다.
"첫날 복도에서 부딪혔어."
"아, 그거 반에 소문 났었어. 부딪혔는데 손 안 올라왔다고." 김하늘이 볼펜을 돌리면서 말했다. "그게 좀 신기하긴 했어. 강수현은 보통 그렇지 않거든."
"무관용 규정 때문 아닐까요."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았는데." 김하늘이 잠깐 생각하는 눈을 했다가 다시 윤시하를 봤다. "나는 뭐라고 봐?"
"모르겠는데요."
"그게 더 정직한 대답이다." 김하늘이 다시 앞을 봤다. "강수현이랑 계속 마주칠 것 같거든, 이 학교에서는. 어떻게 할 거야?"
"피할 이유가 없으면 안 피하죠."
김하늘이 잠깐 윤시하를 봤다.
이번엔 그 눈이 조금 달랐다. 웃고 있는 눈이었는데, 아까와 온도가 달랐다. 뭔가를 확인한 것 같은 눈.
"나는 이런 사람 좋아하더라."
툭 던진 말이었다. 자연스럽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수업이 다시 시작됐다.
하교 시간이 됐다.
복도에서 이수빈이 먼저 학원에 간다고 갔고, 김하늘이 윤시하랑 같은 방향이라며 함께 걸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김하늘이 학원가 주변 맛집 얘기를 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내용인데 목소리 리듬이 좋아서 그냥 들리는 종류의 말들이었다.
정문 앞에서 각자 방향을 잡으면서 김하늘이 손을 한 번 흔들었다.
"내일 봐."
자연스럽게 웃으면서.
윤시하는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늘도 하늘이 흰색이었다. 3월 둘째 주의 오후는 첫째 주보다 조금 더 따뜻했다.
걸으면서 오늘 있었던 일들을 되짚어 봤다.
김하늘은 분명히 좋은 사람이었다. 불편한 구석이 없었다. 말도 잘했고 배려도 자연스러웠다. 이수빈 같은 친구가 있다는 것도 납득이 됐다.
그런데 오후에 잠깐, 급식실에서 봤던 눈.
"네가 어떤 걸 반응하는지 보고 싶기도 했어."
그 말이 특별히 이상하거나 나쁜 말은 아니었다.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 중에 저런 말 하는 사람들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김하늘이 웃는 방식이.
피곤해 보였다.
윤시하는 거기서 생각을 멈췄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한테 하기에는 이른 판단이었다.
달빛 편의점이 보였다. 어제 들른 데였다. 오늘도 간판에 불이 켜져 있었다.
들어갔다.
냉장고가 윙윙거렸다. 계산대 안에 어제와 같은 점원이 있었다. 오늘은 책이 아니라 영수증을 정리하고 있었다.
음료 코너를 지나가다 멈췄다.
카운터 뒤 선반 아래 선반에 컵라면이 있었다. 신라면. 오늘 급식이 짜장밥이었는데, 짜장밥을 먹고 난 뒤엔 이상하게 라면 국물이 당길 때가 있었다.
컵라면 하나와 음료수를 들고 계산했다.
"앉아서 먹어도 돼?"
점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는데, 편의점 문이 열렸다.
김하늘이었다.
잠깐 눈이 마주쳤다. 김하늘이 잠깐 멈췄다가 웃었다.
"여기 자주 와?"
"두 번째야."
"나는 세 번째." 김하늘이 냉장고 쪽으로 가면서 말했다. "언덕 중간이라 딱 쉬어가기 좋거든."
냉장고 문이 열렸다가 닫혔다. 음료 하나를 들고 계산하고, 김하늘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묻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자연스럽게.
"라면?"
"응."
"부었어?"
"3분 됐어."
"2분 더 있어야 한다."
윤시하가 컵라면 뚜껑을 다시 눌렀다.
잠깐 조용해졌다. 냉장고 소리. 자판기에서 무언가 내려오는 소리. 김하늘이 음료 빨대를 꽂으면서 창밖을 봤다. 언덕 위로 교복 입은 학생들이 띄엄띄엄 내려오고 있었다.
"강수현이 저기 있네."
윤시하가 창밖을 봤다.
언덕 위쪽이었다. 강수현은 교복 차림 그대로, 혼자 언덕을 내려오고 있었다. 가방을 한쪽으로 걸치고, 이어폰도 없이, 그냥 걷고 있었다. 이쪽은 보지 않았다.
편의점 앞을 지나쳤다.
한 박자 지나서, 강수현이 멈췄다.
편의점 안쪽을 한 번 봤다. 유리창 너머로. 윤시하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김하늘을 봤다. 0.5초도 안 됐다. 그냥 지나쳤다.
김하늘이 빨대를 입에서 떼면서 말했다.
"재밌는 조합이네, 오늘."
"뭐가요."
"나랑 강수현이 같은 날 눈에 들어왔잖아, 너한테."
윤시하가 라면 뚜껑을 열었다. 국물 냄새가 올라왔다. 면을 젓가락으로 저으면서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걸 봤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좀 그런 조합이야."
"어떻게요."
"걔는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이고, 나는." 잠깐 멈췄다. "나한테 잘 보이려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 두 사람 사이에 있으면, 좀 피곤해질 수도 있어."
"경고예요?"
"그냥 정보." 김하늘이 빨대를 다시 빨면서 창밖을 봤다. "알고 다니는 게 나으니까."
라면 국물 한 술을 먹었다. 뜨거웠다. 적당히 맵고 짜고, 편의점 라면의 국물이었다. 창밖으로 언덕에는 이제 강수현이 보이지 않았다.
"근데요."
"응?"
윤시하가 김하늘을 봤다.
"아까 급식실에서 웃을 때, 좀 피곤해 보였어요."
편의점이 잠깐 조용해졌다.
냉장고만 윙윙거렸다.
김하늘의 얼굴에서 미소가 딱 1초 사라졌다. 굳은 것도 아니고 굳어지는 것도 아닌, 그냥 무표정이 한 박자 들어왔다가 나갔다.
그리고 다시 웃었다.
이번엔 아까보다 조금 작은 웃음이었다.
"그런 말 하는 사람 처음이야."
"미안해요, 굳이 말할 필요 없었는데."
"아니, 좋아." 김하늘이 음료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나쁜 뜻으로 한 말 아니지?"
"아니요."
"그럼 됐어."
잠깐 침묵이 있었다.
그 침묵이 아까랑 달랐다. 아까 것은 그냥 잠깐의 멈춤이었다면, 이건 뭔가를 소화하는 쪽이었다. 김하늘이 빨대를 손가락으로 돌리면서 테이블을 봤다가, 윤시하를 봤다가, 다시 테이블을 봤다.
계산대 안 점원이 영수증 정리를 끝냈다. 잠깐 이쪽을 봤다. 딱히 아무 표정도 없었다.
김하늘이 일어서면서 말했다.
"나 먼저 가볼게. 학원 있어서."
"응."
"내일 봐."
"응."
문이 열렸다가 닫혔다. 편의점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윤시하는 라면을 먹으면서 창밖을 봤다. 김하늘이 언덕을 올라가고 있었다. 걸음이 빨랐다. 학원에 늦을 것 같아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는 몰랐다.
멀어지면서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국물이 식기 전에 다 먹었다.
점원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카운터 안에서 뭔가를 정리하고 있었다. 말 없이 공간을 나눠 쓰는 방식이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빈 컵라면 용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일어섰다.
"잘 먹었습니다."
점원이 고개를 한 번 까딱했다.
윤시하는 편의점을 나왔다.
언덕을 내려가면서 생각했다. 첫째 주와 달리 오늘은 두 명의 이름을 확실히 얼굴과 함께 알게 됐다. 한 명은 자리 뽑기로 옆에 앉게 됐고, 한 명은 편의점 유리창 너머로 봤다. 한 명은 말이 많았고, 한 명은 말이 거의 없었다.
박지훈이 말했던 게 생각났다. 강수현 쪽은 건드리면 안 된다고 했다. 김하늘 쪽은 잘 보이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김하늘 본인이 말했다.
언덕 아래 학원가 골목에서 치즈 냄새가 올라왔다. 분식집에서 나는 것 같았다. 저녁 시간대가 되면서 문을 여는 가게들이 하나씩 불을 켰다. 연서동의 저녁은 이런 냄새와 불빛으로 시작됐다.
윤시하는 멈추지 않고 걸었다.
피곤해진다고 했는데.
벌써 조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나쁘진 않은 종류의 피곤함이었다.
다만, 아까 강수현이 유리창 너머로 본 그 0.5초가 누구를 향한 건지는 아직 모르는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