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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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는 내가 걸었다. 그러면 판이 바뀐다.
이준은 도윤의 차 뒷좌석에 앉아 그 문장을 곱씹었다. 7년 동안 기자에게 먼저 전화를 건 적이 없었다. 전화를 건 쪽이 정보를 원하는 쪽이고, 원하는 쪽이 약한 쪽이다. 그 법칙을 알면서 전화를 걸었다. '만나죠'라는 두 글자가 자신의 입에서 나왔을 때, 이미 주도권의 절반을 넘긴 것이었다.
나머지 절반은 지금부터 되찾아야 했다.
"형, 어디로 가요?"
도윤의 목소리에 떨림이 있었다. 7년 동안 들어본 적 없는 떨림이었다. 이준이 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거는 것을 옆에서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도윤에게 그것은 이준이 법칙을 깬 것과 같았다.
"논현동. 24시간 카페."
"…팩트인사이트 편집부 근처잖아요."
"맞아."
도윤이 더 묻지 않았다. 차가 청담동을 빠져나갔다. 오후 3시의 서울은 평범했다. 신호에 걸리고, 차가 밀리고,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넜다. 평범한 세계. 이준의 세계는 평범하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움직이는 법은 알고 있었다.
도윤이 라디오를 켰다가 껐다. 이준의 표정을 보고. 7년이면 그런 것은 자동이었다. 차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이준은 조용한 것이 좋았다. 조용해야 생각이 정리된다. 생각이 정리되어야 계산이 시작된다. 계산이 시작되어야 실수가 줄어든다. 실수가 줄어야 — 살아남는다.
주머니 속 봉투를 만졌다. 열두 페이지. 서은아의 것은 열네 페이지. 2페이지의 차이. 그리고 '찾아보세요'라는 두 글자. 서은아는 무엇을 알고 있는 것일까. 모르는 것일까.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일까.
이준은 창밖을 보았다. 한남대교 위의 차들이 반대편으로 흘러갔다. 오늘 아침 걸었던 다리. 아침에는 명상 같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도주 같았다. 명상과 도주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카페에 도착한 것은 3시 22분이었다. 이준은 시계를 보는 습관이 있었다.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하는 것이었다. 몇 시에 어디에 있었는지. 그것이 알리바이가 될 수도 있고, 근거가 될 수도 있으니까.
논현동 골목 안쪽. 간판이 작고 조명이 어두운 카페. 기자들이 자주 쓰는 곳이라는 것은 냄새로 알 수 있었다. 커피보다 담배 냄새가 진했다. 흡연석이 없는 카페에서 담배 냄새가 난다는 것은, 이 카페의 룰이 느슨하다는 뜻이었다. 기자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커피가 아니라 느슨한 룰이니까.
구석자리에 남자가 앉아 있었다. 아메리카노 한 잔. 노트북은 닫혀 있었다. 녹음기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준은 알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최지훈. 서른 중반. 키가 크고 마른 체형. 안경을 쓰지 않은 얼굴은 기자보다 연구원에 가까웠다. 조용한 인상. 조용한 사람이 쓰는 기사가 가장 시끄럽다는 것을 이준은 알고 있었다.
최지훈은 기사를 쓸 때 형용사를 쓰지 않는다고 했다. 업계 사이에서 도는 말이었다. 사실만으로 기사를 쓴다. 형용사 없는 기사가 가장 아프다. 독자가 형용사를 채우니까. '강이준, 열애 인정.' 네 단어. 형용사 하나 없이 포털 메인을 1시간 지배한 기사. 그것이 최지훈의 문체였다.
"빠르시네요."
최지훈이 일어서지 않았다. 악수를 권하지도 않았다. 이준도 기대하지 않았다. 이 자리는 인사의 자리가 아니었다.
맞은편에 앉았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기자 앞에서는 아무것도 마시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오늘은 원칙 바깥에 있었다. 원칙을 깨는 것도 계산이었다. '나는 당신 앞에서 편하게 마실 수 있다'는 신호. 사실은 전혀 편하지 않았지만.
"녹음기는요?"
"끄고 왔습니다. 원하시면 확인하세요."
"됐습니다. 믿을게요."
믿는 것이 아니었다. 믿든 안 믿든 최지훈이 녹음을 했다면 어차피 알 방법은 없었다. 그러니 '믿는다'는 말은 무의미했다. 하지만 무의미한 말이 협상의 시작이었다. 서로 무의미한 것을 교환하면서 진짜 카드를 탐색하는 것이 거래의 구조였다.
이준은 카페 안을 한 번 둘러보았다. 손님은 세 명이었다. 구석 좌석의 중년 남자, 창가의 노트북을 펼친 여자, 카운터 앞의 청년. 누구든 기자일 수 있었다. 아니면 아무도 아닐 수 있었다. 이 업계에서 '아닐 수 있다'는 '일 수 있다'보다 위험했다. 확인할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위협이니까.
"시간이 없으니까 단도직입적으로 가죠."
최지훈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동작이 느렸다. 기자의 '느린 동작'은 자신이 서두르지 않는다는 시위였다. 시간이 없는 쪽은 이준이었다. 24시간 중 6시간이 지나 있었다. 최지훈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조수석 여성. 신원 확인 완료라고 하셨죠."
"네."
"이름을 알려줄 수 있습니까."
"아직은요."
'아직은.' 이준은 그 단어의 무게를 재었다. 아직은이라는 것은 나중에는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조건이 있다는 뜻이었다.
"조건이 뭡니까."
최지훈이 노트북 옆에 놓아둔 휴대폰을 한 번 보았다. 그리고 이준을 보았다.
"기사 하나 막고 싶으면, 강이준 씨가 '언제' 공식 입장을 낼지부터 정하세요."
이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 요구의 구조를 분석했다. 돈이 아니었다. 기자가 돈을 요구했다면 오히려 쉬웠다. 금전 거래는 추적이 가능하고, 추적이 가능하면 통제가 가능하다. 최지훈이 요구한 것은 '발화권'이었다. 열애 인정의 타이밍을 자신의 기사와 맞추겠다는 것. 그것은 돈보다 비쌌다.
"왜 타이밍이 중요합니까. 기사는 이미 나왔잖아요."
최지훈이 처음으로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 입꼬리의 미세한 이동이었다. 기자의 웃음은 정보를 숨기는 포장지다.
"첫 기사는 제 거예요. 그런데 '공식 인정' 기사는 따로 가치가 있죠. 독점으로요."
독점. 이준은 이해했다. 최지훈은 열애 폭로 기사와 열애 인정 기사를 양쪽 다 쓰겠다는 것이었다. 폭로와 인정. 화살을 쏘고, 착지점도 자기가 쓴다. 기자로서는 완벽한 설계였다.
이준은 계산했다. 최지훈에게 독점 인정 기사를 주면 팩트인사이트가 첫 번째 '공식' 미디어가 된다. 폭로도 인정도 한 매체에서 나온다. 독자들은 그것을 '신뢰'라고 읽는다. 기자에게 신뢰는 권력이다. 최지훈은 권력을 요구하고 있었다. 돈보다 무거운 것을.
"흥미롭네요. 그러면 하나 더 주셔야죠."
"뭘요?"
"조수석 여성에 대해 아시는 걸 하나만. 기사에 안 쓸 것으로."
3초의 침묵. 카페 안에서 에스프레소 머신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최지훈이 생각하고 있었다. 이준은 그 3초를 세었다. 3초는 이준의 세계에서 충분한 시간이었다. 누군가를 읽는 시간이고, 결정을 내리는 시간이고, 가격을 매기는 시간이었다.
"하나만요."
최지훈이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조수석 여성은 '서은아가 아니다' 정도가 아니에요. 서은아 쪽과 연결된 인물입니다. 그룹 대역이거나 스태프 라인이거나. 어쨌든 서은아의 궤도 안에 있는 사람이에요."
이준의 손가락이 테이블 위에서 멈췄다. 서은아 쪽. 서은아의 궤도. 서은아가 아닌 것까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서은아와 연결된 인물이라는 것은 새로운 정보였다.
서은아가 '찾아보세요'라고 말한 이유가 달라졌다. 그녀가 사진 속 여자를 모르는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알고 있으면서 이준에게 찾아보라고 한 것일 수도 있었다. 알고 있으면서 왜 직접 말하지 않았을까.
세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첫째, 말하면 불리해진다. 둘째, 말하는 것보다 이준이 스스로 찾는 것이 효과적이다. 셋째, 말할 수 없는 조건이 계약서에 있다. 세 가지 모두 같은 결론이었다. 이 판에는 이준이 모르는 층위가 하나 더 있었다.
이준은 서은아의 계약서를 떠올렸다. 열네 페이지. 자신의 것은 열두 페이지. 2페이지의 차이. 그 2페이지에 조수석 여성에 대한 조항이 있는 것은 아닐까. '병은 갑이 지정하는 제3자의 존재에 대해 비밀을 유지한다.' 그런 문장이 있다면. 서은아가 직접 말하지 않은 이유가 설명된다.
"감사합니다."
이준이 일어섰다. 커피는 반도 마시지 않았다. 최지훈이 말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이준이 멈췄다. 서 있는 채로.
"차서린 인터뷰, 알고 계시죠?"
"…네."
"그거 누가 먼저 터뜨렸는지는 확인하셨어요?"
이준은 최지훈을 보았다. 기자의 눈이 달라져 있었다. 아까까지는 거래하는 눈이었다. 지금은 다른 눈이었다. 무엇인가를 확인하려는 눈.
"무슨 뜻입니까."
"인터뷰를 '제안한' 쪽이 차서린 본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에요. 확인해 보세요."
이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차서린이 인터뷰를 제안한 것이 아니라면. 누군가 차서린에게 인터뷰를 '시킨' 것이라면. 그 누군가는 — 박대건일 수 있었다. 위장 열애의 필요성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열애 사진을 터뜨리고, 차서린의 인터뷰까지 설계한 것이라면. 모든 것이 한 사람의 판 위에 있는 것이었다.
이준은 3초 동안 숨을 참았다. 3초. 그 안에 분노가 올라왔다가 가라앉았다. 분노는 쓸모가 없었다. 분노는 감정이고, 감정은 판단을 흐린다. 판단이 흐리면 구멍이 생긴다. 구멍이 생기면 — 15년이 무너진다. 이준은 분노를 삼켰다. 삼키는 것은 15년 동안 연습한 기술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최지훈이 이 정보를 준 이유가 있었다. 거저 주는 정보는 없다. 기자의 정보에는 항상 의도가 붙어 있다. 최지훈은 이준이 박대건을 의심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의심하면 균열이 생기고, 균열이 생기면 더 좋은 기사가 나온다. 기자에게 갈등은 재료였다.
기자는 악역이 아니다. 악역은 설계자다.
카페 문을 열었다. 바깥은 어두워지기 시작한 오후였다. 논현동 골목의 좁은 길. 이준이 한 발짝 내딛는 순간 — 플래시가 터졌다.
골목 맞은편에 누군가 서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야구모자, 검은 패딩, 운동화. 프로 파파라치의 복장이었다. 아마추어는 서서 찍지만 프로는 걸으며 찍는다. 그 남자는 걸으며 찍고 있었다. 셔터 소리가 골목에 울렸다. 찰칵찰칵찰칵. 기계적인 리듬. 한 장도 놓치지 않겠다는 리듬.
이준은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당황한 사진이 찍힌다. 당황은 기사가 된다. 걸음을 유지한 채 도윤의 차 쪽으로 향했다. 도윤이 이미 문을 열고 있었다.
차에 탔다. 문이 닫혔다. 도윤이 시동을 걸었다.
"형, 찍혔어요. 분명히 찍혔어요."
이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뒷좌석에 앉아 플래시가 터진 방향을 보았다. 골목에서 야구모자의 남자가 사라지고 있었다.
"형, 이 사람 믿어도 돼요? 최지훈이라는 사람."
"믿는 게 아니야."
이준은 창밖을 보았다. 논현동의 골목이 멀어지고 있었다.
"이용하는 거야. 서로."
이준은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오늘 하루 동안 세 명과 거래를 했다. 박대건과는 계약으로. 서은아와는 서명으로. 최지훈과는 타이밍으로. 그리고 네 번째 사람 — 골목에서 플래시를 터뜨린 파파라치 — 은 거래가 아니라 변수였다. 이준은 거래는 할 수 있었지만 변수는 싫어했다.
골목에서 플래시를 터뜨린 사람. 김형우. 이준은 아직 그 이름을 모르지만 곧 알게 될 것이었다. 이 업계에서 파파라치는 세 종류다. 돈에 움직이는 사람, 이름에 움직이는 사람, 그리고 한 방에 모든 것을 걸 사람. 세 번째가 가장 위험했다.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니까.
도윤이 입을 다물었다. 차가 강남대로로 합류했다.
이준은 휴대폰을 꺼냈다. 박대건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밤 11시까지 공식 입장 내야 합니다. 준비해주세요.]
3초 후에 답이 왔다.
[알겠다.]
도윤이 입을 다물었다. 차가 강남대로로 합류했다.
이준은 휴대폰을 꺼냈다. 박대건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밤 11시까지 공식 입장 내야 합니다. 준비해주세요.]
3초 후에 답이 왔다.
[알겠다.]
두 글자. 박대건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이준은 그 여유가 자신이 판 위에 올라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판 밖에서 보는 사람만이 여유로울 수 있다.
차가 한남동으로 접어들었을 때 도윤이 말했다.
"형, 아까 그 파파라치… 사진 올라왔어요."
도윤이 휴대폰을 뒤로 넘겼다. 이준은 화면을 보았다. SNS 비공개 계정. 사진 한 장. 논현동 카페 앞, 이준과 최지훈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 캡션이 달려 있었다.
[강이준 × 팩트인사이트 기자. 24시간 카페 밀담. 무슨 거래?]
업로드 시각: 4시 12분. 7분 전.
이준은 화면을 껐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골목에서 플래시를 터뜨린 파파라치. 그 사진이 기사가 되면 — '열애설 당사자가 기자와 밀담.' 조작 프레임이 확정된다.
타이머가 달라졌다. 오늘 밤 11시가 아니었다. 이 사진이 퍼지기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