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형제의 시선(兄弟의 視線)
피 냄새가 채 가시기 전이었다.
아침 연무장.
해가 완전히 뜨지 않은 시각이었다. 하지만 연무장에는 이미 검 부딪히는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큰형의 검이 나무 허수아비를 갈랐다. 왼팔에 아직 붕대가 감겨 있었다. 깊지 않다고 했지만, 검을 휘두를 때 왼팔의 각도가 좁다. 오른팔에 힘이 더 실려 있었다. 숨기려 하지만, 몸은 거짓말을 못 한다.
나는 연무장 한쪽 구석에서 달리기를 하며 그걸 봤다.
캉. 캉. 캉.
큰형의 검격은 곧았다. 직선, 직선, 또 직선. 우회가 없다. 정면으로 베고, 정면으로 막고, 정면으로 밀어붙인다.
큰형의 검이 멈추었다. 연무장 반대편에서 다른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셋째 형이 나타났다.
셋째는 검을 뽑지 않고 걸어 들어왔다. 여유롭게. 연무장을 한 바퀴 둘러본 뒤, 맏형의 붕대 위에 시선을 한 번 머물렀다. 그리고 자기 자리로 가서 검을 뽑았다.
말없이. 더 세게. 허수아비를 쳤다.
큰형이 한 번 베는 동안 셋째는 세 번을 벴다. 속도가 아니라 의도가 달랐다. 큰형의 검이 ’연습’이라면, 셋째의 검은 ’증명’이었다. 내가 더 강하다. 나는 다치지 않았다. 검 소리가 그걸 말하고 있었다.
맏형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그리고 다시 자기 검에 집중했다. 반응하지 않는 것이 반응이었다.
형제 사이의 균열은 이렇게 시작된다. 말없이. 검 소리로.
━━━
달리기를 마치고 마당에서 물을 마시는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무인의 걸음이 아니다. 가볍고 고르다. 서책을 끼고 다니는 사람의 걸음.
둘째 형.
“막내.”
돌아보니 둘째가 서 있었다. 손에 서책 두 권을 들고 있었다.
“서고로 와라. 어제 끊긴 데서 이어가자.”
사흘째다. 달리기를 마치면 서고에서 둘째와 기초편을 읽는 것이 루틴이 되어 가고 있었다. 겉은 호의다. 먼저 기초편을 뗀 형이 막내의 학습을 돕는 것. 하지만 이건 관찰이기도 하다. 막내가 심법서를 어디까지 이해하는지, ’달라짐’이 어디까지인지를 가장 가까이서 확인할 수 있는 방법.
“예, 이형.”
서고로 향하는 길이었다. 둘째가 반 보 앞서 걷고 있었다. 그때――옆에서 그림자가 끼어들었다.
셋째.
연무장에서 돌아온 모양이었다. 검을 풀었지만 아직 옷에 땀이 배어 있었다. 셋째의 시선이 둘째가 든 서책, 그리고 나를 번갈아 훑었다.
“막내가 금서각을 드나드는 세상이라……세가가 참 흥한다.”
목소리에 칼이 있었다. 웃으면서 베는 종류의 칼.
심장이 빨라졌다. 하지만 얼굴에는 아무것도 올리지 않았다.
“흥할지 망할지는 형님이 정하시지요. 저는 그저……살아남았을 뿐입니다.”
셋째의 눈이 가늘어졌다.
“살아남은 놈이 제일 무서운 법이지.”
셋째가 웃었다. 웃음 아래에 시험이 있었다.
속으로 한 줄이 지나갔다. 그래. 나도 그걸로 왕이 됐다.
겉으로는 다른 말이 나갔다.
“무서운 건, 칼이 아닙니다. 칼을 쥔 손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가 무섭지요.”
침묵이 떨어졌다. 둘째가 고개를 살짝 돌려 나를 봤다. 셋째의 웃음이 한 박자 멈추었다가――더 깊어졌다.
“재밌는 막내로군.”
돌아섰다. 셋째의 등이 멀어지는 동안, 나는 그의 발소리를 세고 있었다. 오른발에 미세한 힘이 더 실린다. 연무장의 무리가 아니다. 밤 수련의 피로다.
셋째의 야심은 검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문제는 야심의 ’방향’이다. 위로 향하면 기둥이 되고, 옆으로 향하면 칼이 된다.
셋째가 어디를 향하는지는――아직 모른다.
━━━
서고에서 둘째와 마주 앉았다.
둘째가 기초편의 세 번째 장을 펼쳐 놓았다. 심마(心魔) 대목이다. 어제 코피를 흘린 바로 그 페이지.
“여기서 막혔지.”
“……예.”
“어디가 막혔는지는 묻지 않겠다.”
둘째가 책장을 넘겼다. 네 번째 장.
“대신 이쪽부터 읽어라. 심마를 넘는 법이 아니라, 심마를 ’인식’하는 법이 먼저다. 순서가 있다.”
그 말이 기묘하게 정확했다. 전생에서 내가 가장 못한 것이 순서다. 정몽주를 죽인 것도, 왕자의 난도. 결과는 맞았지만 과정이 뒤집혔다.
둘째의 해설은 간결했다. 군더더기가 없었다. 읽은 것을 체계화할 줄 아는 사람이다.
둘째가 서책을 넘기는 사이, 허리춤에 끼운 다른 서책이 눈에 들어왔다. 책등에 감긴 붉은 실. 닷새 전 서고 계단에서 봤던 것과 같은 색이다.
둘째가 그 서책을 꺼내며 실을 풀었다. 한 바퀴, 두 바퀴. 실이 풀리자 책이 열린 것이 아니라――실 아래에 감춰져 있던 얇은 쪽지 한 장이 미끄러져 나왔다. 둘째가 자연스럽게 손바닥으로 덮었다.
저건 장정(裝幀)이 아니다. 봉인이다.
기억한다. 지금은 묻지 않는다.
기초편 해설이 끝나갈 무렵, 둘째가 불쑥 물었다.
“어젯밤 일. 찻잔은 네가 던진 거지.”
멈추었다.
둘째의 눈에 적의는 없다. 하지만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압력이다.
“……예.”
둘째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 파고들지 않았다. 대신 서책을 정리하며 마지막 말을 던졌다.
“그리고, 막내야.”
“예.”
“그 꿈에서……전쟁 말고 다른 건 없었느냐.”
이 질문은 찻잔보다 무겁다. 금서각에서 심마 대목을 읽다 코피를 흘린 것, 아버지 앞에서 호흡할 때 보인 반응――이 형은 그 조각들을 이미 연결하고 있다.
“……생생했습니다. 그래서 무서웠습니다.”
거짓이 아니다. 전생의 기억은 꿈보다 생생하고, 꿈보다 무섭다.
둘째가 잠시 나를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심마 대목에서 막힌 이유가 그거겠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서고 2층으로 올라갔다.
서고를 나왔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고 있었다. 마당을 지나는데 발밑에 뭔가 밟혔다.
멈추었다.
흙 위에 찍힌 젖은 발자국. 닷새째 되던 밤에 처음 발견했던 것과 같은 네 발가락. 하지만 이번엔 다른 것이 보였다.
발자국 위에, 발자국이 없었다.
돌아간 흔적. 그것이 없다. 온 방향은 있는데, 간 방향이 없다. 흙을 밟고 왔지만, 돌아갈 때는 흙을 밟지 않았다는 뜻이다. 지워진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밟지 않은 것이다.
경신술. 그것도 흙 위에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준의.
고개를 들었다. 담장 너머로 석양빛이 번지고 있었다. 아이의 기억을 뒤졌다.
작은 문. 평소에는 쓰지 않는, 거의 잊힌 통로.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