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문 앞의 남자
문이 닫히자, 소리가 사라진 게 아니라 통제가 사라졌다.
도현은 이준을 내보내고 나서야, 병실이 이렇게 넓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의자가 비어 있었다. 침대 가장자리에 이준의 체온이 남아 있었다. 시트가 아직 따뜻했다. 도현은 그 쪽을 보지 않기로 했다.
"어젯밤은 예외야."
문 너머로 던진 말이었다. 대답은 없었다. 이준이 대답하지 않는 것은 수락의 형태라는 것을 도현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앎이 불쾌했다. 이 남자의 침묵을 읽을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의존의 증거니까.
도현은 세면대로 갔다. 찬물로 얼굴을 씻었다. 거울 속의 남자는 어제보다 나아 보였다. 6시간의 수면이 다크서클의 농도를 1톤쯤 옅게 만들었다. 입술의 갈라진 곳도 아물기 시작했다. 몸은 회복하고 있었다.
몸은 회복하고 있다. 문제는 머리다.
거울 속에서 자신의 눈을 보았다. 날카롭지만 초점이 흔들리는 눈. 기획조정실장의 눈이 아니었다. 도현은 수건을 내려놓았다.
"표준대로 하죠. 문 밖."
문 너머로 다시 말했다. 표준 경호 배치. 경호원은 문 밖에 서고, 대상자는 안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한다. 그것이 규범이었다. 돌아가야 했다.
*
이준은 문 밖에 섰다.
정확히 문 경첩 반대쪽. 병원에서도 폐공장에서도 항상 같은 위치. 도현은 문 안쪽에서 그 위치를 계산할 수 있었다. 발소리가 멈추는 지점, 체중이 실리는 미세한 바닥 진동으로.
도현은 업무 복귀를 준비하기로 했다. 노트를 펼쳤다. 통화를 시도했다. 기획조정실 직통.
신호가 가지 않았다.
한 번 더. 비서실.
신호 없음.
도현은 핸드폰 화면을 보았다. 신호는 잡혀 있었다. 통화 자체가 차단된 것이 아니었다. 발신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도현은 문을 열었다.
"통화가 안 돼."
이준이 문 옆에서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다. 평소의 자세.
"외부 접촉은 현재 제한 중입니다. 보안 프로토콜 2단계."
보안 프로토콜 2단계. 도현은 그 용어를 알고 있었다. 자신이 설계한 것이니까. 임원급 위기 발생 후 48시간 이내에 외부 접촉을 제한하고, 보안팀 관할 하에 통신을 단계적으로 복원하는 절차.
내가 설계한 절차가 나를 가두고 있다.
두 번째였다. GPS에 이어 프로토콜까지. 자신이 만든 시스템이 자신을 옥죄는 아이러니.
"2단계 해제 권한은 기획조정실장에게 있어. 나한테."
"블랙팀장의 공동 서명이 필요합니다."
박성호. 블랙팀장. 네 명의 용의자 중 첫 번째 이름.
도현은 입을 다물었다. 해제를 요청하면 박성호에게 연락해야 한다. 연락한다는 것은 도현의 현재 상태를 보고한다는 뜻이고, 보고한다는 것은——
배신자에게 내 위치를 알린다는 뜻일 수도 있다.
도현은 문을 닫으려 했다.
이준의 손이 문틀을 잡았다.
"도련님."
낮은 목소리. 도현의 손이 문 손잡이 위에서 멈췄다. 이준의 눈이 올라왔다. 내리깔고 있던 시선이. 0.3초. 그 안에 경고가 있었다.
"혼자 나가시면 안 됩니다."
명령이 아니었다. 하지만 건의도 아니었다. 도현이 문을 닫는 것을 허용하되, 문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차단하는 문장. 이 남자가 도현의 행동에 선을 그은 것은 처음이었다. 병원으로 가겠다고 결정했을 때조차 이런 톤은 아니었다.
도현은 이준의 손을 보았다. 문틀을 잡은 손. 넓고, 마디가 굵고, 4초 만에 두 사람을 제압한 손. 그 손이 지금 도현의 문을 잡고 있었다.
보호의 형태를 한 차단이었다.
"손 치워."
이준의 손이 내려갔다. 즉시. 도현은 문을 닫았다. 잠금까지 돌렸다.
닫고 나서야 심장이 빨라졌다. 이준의 문장 때문이 아니었다. 그 문장에 안도한 자신 때문이었다.
혼자 나가시면 안 됩니다.
그 말이, 위협이 아니라 울타리처럼 들렸다는 것이 문제였다.
*
오후 2시.
도현은 테스트를 설계했다.
컵에 물을 반쯤 채웠다. 테이블 가장자리에 놓았다. 일부러 불안정한 위치. 그리고 노트를 펼쳐 분석을 계속하는 척했다.
3분 후, 팔꿈치가 컵을 밀었다.
물이 쏟아졌다. 바닥에. 도현은 동시에 의자를 밀며 일어섰다. 급하게. 의도적으로 급하게.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문이 열렸다.
0.5초.
물이 바닥에 닿고 도현이 의자를 미는 소리가 난 시점에서, 이준이 문을 여는 시점까지. 0.5초. 도현은 그 시간을 세었다. 습관이었다.
이준은 문을 열고 한 걸음 안으로 들어온 상태였다. 오른손이 허벅지 옆에 밀착. 왼손은 문틀을 잡고 있었다. 시선은 도현에게 먼저, 그다음 바닥의 물에, 그다음 테이블에.
0.5초 만에 상황을 판독하고, 위협이 아님을 확인한 것이다.
도현은 이준의 눈을 보았다.
"빨라."
이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시선을 내리깔았다. 다시 문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혔다.
도현은 바닥의 물을 보았다. 반사된 형광등 빛이 물 위에서 흔들렸다.
0.5초.
반응이 아니라 예측이다.
이 남자는 물 쏟아지는 소리에 반응한 것이 아니었다. 도현이 의자를 미는 소리에, 아니——도현이 의자를 밀기 직전의 근육 움직임에 반응한 것이다. 문 너머에서. 소리만으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했다.
하나. 특수전 출신의 훈련된 반사.
둘. 도현의 행동 패턴을 예측할 수 있을 만큼, 이 남자가 도현을 알고 있다는 것.
두 번째 해석이 더 불안했다.
*
해가 기울었다.
도현은 노트에 적힌 것들을 다시 읽었다. 네 명의 이름. GPS 차단. 내부 IP. 프로토콜 2단계. 외부 접촉 차단. 블랙팀장 공동 서명. 모든 길이 박성호에게 연결되어 있었다. 혹은 모든 길이 박성호를 우회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누가 설계했는지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도현은 노트를 닫고 침대에 누웠다. 천장의 비상등이 아직 꺼지지 않았다. 형광등과 비상등 사이의 중간 밝기. 완전한 어둠도, 완전한 빛도 아닌.
문 너머에서 이준의 호흡이 들렸다.
도현은 의식하지 않으려 했다. 의식하지 않으려 할수록 더 선명하게 들렸다. 규칙적이고, 깊고, 통제된.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도현의 청각이 이준의 호흡을 추적하고 있었다.
문 앞의 남자가 안정제라니.
모순이다.
그런데 모순은 사실이었다. 이준이 문 밖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 도현의 심박이 안정 범위 안에 있었다. 맥박을 짚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몸이 말하고 있었다.
도현은 눈을 감았다. 잠이 올지는 알 수 없었다. 어젯밤의 30센티미터가 없으니까. 체온이 없으니까.
대신 호흡이 있었다. 문 너머의.
도현은 그 호흡을 세지 않았다. 세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20분 후, 자신이 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174. 175. 176.
*
새벽 4시.
잠이 오지 않았다. 어젯밤과 달랐다. 어젯밤은 30센티미터와 체온이 있었다. 오늘은 문 하나가 있었다. 문 하나의 차이가 이렇게 크다는 것을, 도현은 인정하기 싫었다.
도현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문 앞에 섰다. 손잡이를 잡았다. 차가운 금속. 돌리면 열린다. 열면 이준이 있다. 이준이 있으면 숨을 쉴 수 있다.
문을 열면 나가는 게 아니다.
문을 열면 들어오게 하는 거다.
손잡이를 쥔 채 멈춰 있었다. 3초. 5초.
문 바깥에서 이준의 발이 아주 작게 움직였다.
도현은 그 소리를 들었다. 문손잡이가 돌아가는 미세한 진동을 이준이 감지했다는 뜻이었다. 도현이 문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이 남자는 알고 있었다.
도현은 문을 열었다.
이준이 서 있었다. 문 경첩 반대쪽. 항상 그 자리. 시선을 내리깔고, 양손은 자연스럽게 내린 채.
도현은 이준을 보았다. 이준은 시선을 올리지 않았다.
도현은 문 앞에 서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나갈 수 없었다.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을 다시 안으로 들이는 것이 될까 봐.
도현은 문을 열었는데, 나간 느낌이 들지 않았다.
문 밖에 선 남자가, 출구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