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타워 회의
빛이 너무 많았다. 어둠보다 관리하기 어려운 종류의 공포였다.
화성 타워 로비의 대리석 바닥이 형광등과 유리벽의 빛을 반사했다. 모든 표면이 거울이었다. 도현은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자신의 얼굴이 바닥에 비치는 것을 보았다. 다크서클이 옅어진 얼굴. 맞춤 수트. 얇은 금테 안경. 겉은 복원되어 있었다.
속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발소리가 로비에 울렸다. 구두 굽이 대리석을 치는 소리가 물방울처럼 규칙을 만들었고, 도현은 그 규칙이 깨질까 봐 귀를 세웠다.
물방울이 아니다. 발소리다. 여기는 타워다.
현실을 확인하는 데 2초 걸렸다. 2초가 너무 길었다.
이준이 반 걸음 뒤에서 따랐다. 로비를 지나고,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37층 기획조정실까지. 반 걸음. 폐공장에서 돌아온 이후 고정된 거리. 세 걸음이 아니라 반 걸음.
도현은 그 거리를 교정하지 않았다. 교정해야 했다. 표준 경호 거리로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반 걸음이 없어지면 로비의 빛을 버틸 수 있을까.
그 생각을 한 자신이 싫었다.
*
회의실은 20층이었다.
유리와 가죽과 스크린으로 이루어진 방. 도현이 납치되기 전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앉던 자리. 그 자리에 다시 앉았다. 의자가 익숙했다. 익숙한 것이 불안했다. 72시간 전의 세계로 돌아온 것 같은 감각. 그런데 72시간 전의 도현은 이미 없었다.
사람들이 자리를 채웠다. 보안실장. 법무팀장. 경영기획 이사. 그리고——
블랙팀장 박성호.
50대 초반. 짧은 회색 머리. 군인보다는 관리자에 가까운 체격. 입꼬리가 약간 올라가 있었다. 미소가 아니었다. 근육의 습관이었다. 도현은 그 표정을 2년 동안 봐왔다. 매주 보고를 받으면서.
"조정실장님, 복귀를 환영합니다."
박성호의 목소리는 매끈했다. 정확한 존댓말. 정확한 톤. 불안을 주지 않는 매뉴얼.
도현은 그 매끈함을 분석했다. 너무 매끈한 것은 매끄러움을 연습한 것이다.
"보고." 도현이 말했다. "납치 건 후속 조치 현황. 감정 빼고."
보안실장이 스크린을 켰다. 경찰 공조 현황. 폐공장 현장 감식. 납치범 신원 파악. 슬라이드가 올라가는 동안 도현은 화면이 아니라 사람을 보았다.
법무팀장. 펜을 돌리고 있었다. 습관. 특이사항 없음.
경영기획 이사. 시선이 스크린에 고정. 도현을 보지 않았다. 의도인지 습관인지 판단 보류.
박성호. 도현을 보고 있었다. 스크린이 아니라 도현을. 시선이 마주쳤다. 박성호가 먼저 피했다. 0.3초.
스크린을 봐야 할 타이밍에 나를 보고 있었다.
*
보고가 중반에 접어들었다. 도현은 펜을 내려놓았다.
"GPS 관련 보안 시스템 점검 결과는."
회의실의 공기가 변했다. 에어컨 소리가 더 크게 들릴 만큼의 침묵. 0.8초. 적절한 당혹감과 의도적 회피 사이의 무게.
보안실장이 대답했다. "외부 침투 흔적은 없었습니다. 시스템 자체는 정상 작동 중이었습니다."
"외부 침투가 없었다면, 내부 접근이라는 뜻이죠."
보안실장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펜을 쥔 손이.
"현재 조사 중입니다."
도현은 보안실장을 보지 않았다. 박성호를 보았다.
"블랙팀 서버 접근 권한 목록을 오늘 안으로 제출하세요."
박성호의 입꼬리가 0.5밀리미터 움직였다. 올라간 것이 아니라 굳은 것이었다. 미소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근육이 경직되는 반응.
"조정실장님, 접근 권한 목록은 보안 등급 3 이상 자료입니다. 회장님 결재가——"
"기획조정실장 권한으로 요청합니다. 감사 절차 제7조. 내부 보안 사고 발생 시 조정실장은 전 부서 자료 열람권을 갖습니다."
도현은 자신이 설계한 조항을 인용했다. 이사회에서 "과잉 대응"이라고 비웃을 때 통과시킨 조항. 지금, 그 조항이 칼이 되었다.
박성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느리게. "확인 후 제출하겠습니다."
확인 후. 도현은 그 단어에 밑줄을 그었다. 머릿속에. 확인은 시간을 벌겠다는 뜻이고, 시간을 번다는 것은 정리할 것이 있다는 뜻이다.
정리할 것이 없다면 즉시 제출하면 된다.
*
회의가 40분을 넘기고 있었다.
도현은 괜찮았다. 머리가 돌아가고 있었다. 계산이 공포를 밀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법무팀장이 말했다.
"납치범 중 한 명이 사망했습니다. 현장에서 부상 후 이송 중 과다출혈."
4초.
도현의 머릿속에서 그 숫자가 떠올랐다. 이준이 두 명을 제압한 시간. 4초. 뼈와 힘줄이 꺾이는 소리. 짧고, 건조하고, 결정적인.
도현은 손목의 맥박을 짚으려는 손을 멈췄다. 회의실이었다. 사람들이 보고 있었다. 맥박을 짚는 것은 약해 보이는 행동이었다.
그 순간, 이준의 시선이 도현의 손목에 고정되었다.
이준은 회의실 뒤편, 벽 옆에 서 있었다. 배경처럼. 존재감을 지운 채. 그런데 시선만은 도현의 손목을 따라가고 있었다. 도현이 맥박을 짚으려다 멈춘 그 손목을.
도현은 그 시선을 느꼈다. 보지 않아도 알았다. 7초 주기를 벗어난 시선이라는 것을.
이 남자는 내 위기 타이밍을 가장 먼저 읽는다.
보호인가. 감시인가. 아니면——
세 번째 해석은 떠올리지 않았다.
도현은 손을 테이블 아래로 내렸다.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통증이 맥박을 잡았다. 회의실의 빛이 다시 선명해졌다.
*
회의 말미.
보안실장이 한 가지를 더 보고했다.
"회장님 지시로, 조정실장님께 심리 케어 라인이 연결될 예정입니다. 전문 상담사가 내일부터 방문합니다."
도현은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내면에서는 바뀌었다. 심리 케어. 상담사. 방문. 그 단어들이 의미하는 것을 도현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보호가 아니다.
관리다.
화성그룹의 시스템 안에서 도현은 더 이상 '임원'이 아니라 '변수'로 분류되기 시작한 것이다. 거부하면 불안정한 임원이 된다. 수용하면 관리 대상이 된다. 어느 쪽이든 카드는 아버지에게 있었다.
수용하는 쪽이 의심을 덜 산다. 지금은 의심을 사면 안 된다.
"상담사 이름은." 도현이 물었다. 감정 없이.
"한서윤 선생님입니다. 화성 의료재단 소속."
한서윤. 화성 의료재단. 아버지의 산하 조직.
상담사가 아니라 감시자일 수 있다.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회의가 끝났다. 악수와 인사가 오갔다. 도현은 그 형식을 수행했다. 완벽하게. 미소까지. 기획조정실장의 가면을 쓰고.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박성호가 마지막이었다. 문 앞에서 멈추더니, 도현을 보았다.
"조정실장님, 무리하지 마십시오. 블랙팀이 지키고 있습니다."
웃고 있었다. 입꼬리의 습관으로. 도현은 그 문장의 구조를 분석했다. '지키고 있습니다'는 두 가지로 읽힌다. 보호하겠다. 혹은 감시하겠다.
문이 닫혔다.
*
회의실에 도현 혼자 남았다. 아니. 이준이 있었다. 벽 옆에.
도현은 의자에 앉은 채 천장을 보았다. 형광등이 눈을 찔렀다. 눈을 감았다.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을 보았다. 사내 보안 시스템의 알림이었다.
[보안 알림] 기획조정실장 계정 — 블랙팀 서버 접근 등급이 '열람'에서 '제한적 열람'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변경 승인자: BK-01.
BK-01. 박성호.
도현은 화면을 3초간 보았다. 회의가 끝나고 5분. 박성호가 회의실 문을 나선 뒤 5분 만에. 도현의 서버 접근 권한이 축소되었다.
확인 후 제출하겠습니다.
확인은 시간을 버는 것이 아니었다. 차단이었다.
도현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분노가 떨림보다 빨랐다.
납치는 끝났는데, 격리는 이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