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4.9%
4.72… 4.81… 4.89…
숫자는 배신하지 않는다. 다만, 공시는 배신처럼 느껴질 뿐이다.
오전 9시 17분. 엘리시움 사무실.
이카루스 주식 지분율이 실시간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태경이 커피를 마시며 모니터를 봤다.
"4.9%에서 멈춰."
권유가 아니었다. 조언이었다.
"이유를요."
"5%는 공시 의무가 생겨. 공시가 나오면 도윤이 그걸 역이용해. 이미 세무조사로 압박 중인데 공시 타이밍까지 도윤이 잡으면 프레이밍을 내어주는 거야."
승헌은 호가창을 봤다. 4.85%. 숫자가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형이 화이트 나이트를 붙이는 데 걸리는 시간. 빠르면 사흘. 4.9%에서 기다리면 그 사흘이 형 손에 들어간다.
화이트 나이트: 우호 세력에게 유상증자 또는 블록딜로 방어 지분을 세우는 것. 도윤의 현재 투입 가능성 38%. 지연 72시간 시 58%.
"5%로 갑니다."
태경이 커피를 내려놓았다.
"내 조언 무시하는 거야?"
"태경 씨 조언이 틀렸다는 게 아닙니다. 형이 지금 느린 쪽이 아닙니다. 기다리면 우리가 느려집니다."
"손 뗄 수도 있어."
가볍지 않은 말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알면서도?"
"기다리는 건 전략이 아니라 사양입니다."
태경이 안경을 올렸다. 그리고 모니터를 봤다.
4.89%.
"은설 씨. 공시 문구 준비됐어?"
"자금출처, 투자목적, 적법성 — 세 챕터. 법률 검토 첨부. 81.2% 실측치 각주 처리했습니다."
태경이 은설을 봤다. 그리고 승헌을 봤다.
"일주일에 몇 시간 잡니까, 이 팀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
─── 미래그룹 본사 42층 / 같은 시각
강도윤은 호가창을 보고 있었다.
4.89%.
그는 예상하고 있었다. 승헌이 4.9%에서 멈출 거라고. 원태경이 권유했을 거라고.
숫자가 멈추지 않았다.
4.93%. 4.97%.
네가 먼저 얼굴을 내밀어. 그래야 내가 잡는다.
도윤이 팀장을 불렀다.
"화이트 나이트 속도 올려."
팀장이 나갔다. 도윤은 화면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
▶ 엘리시움. 오전 11시 52분.
5.01%.
자동 공시 알림이 떴다.
〔주요주주 지분 변동 공시 — 강승헌 외 2인, 이카루스 길드 지분 5.01% 취득〕
이카루스 주가가 공시 후 7분 만에 6.3% 상승했다.
공개매수 성공 확률: 62%→67%.
태경이 모니터를 껐다.
"이제 공시는 기록이야. 도윤이 뭘 해도."
"그게 목적이었습니다."
"당신 수도 틀리지 않았어."
전생에서는 이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
▶ 강남 프라이빗 다이닝. 오후 8시 30분.
테이블이 하나였다. 두 개의 자리.
강도윤이 먼저 와 있었다.
형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35세. 검은 머리. 정장. 표정이 없었다.
와인이 두 잔 놓여 있었다. 아무도 따르지 않은.
"이카루스 접어."
전채 요리가 나오기도 전에. 형의 방식이었다.
"왜요."
"네가 이길 수 없어."
"무슨 근거로요."
"내가 막을 거니까."
도윤이 와인 잔을 들었다. 마시지 않고.
"세무조사. HMB 조사. 화이트 나이트. 순서대로 넣을 거야. 네가 57%를 확보하기 전에 내가 33%를 방어 지분으로 만들면 게임 끝이야."
승헌은 형을 봤다.
전생에서 이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났다. 각서였다. 형이 각서를 내밀었고, 승헌은 서명하지 않았다. 그날 옆에 서 있던 사람의 얼굴도 떠올랐다. 이혜진이었다. 그녀는 끝까지 승헌 쪽을 보고 있었다.
3초. 1초. 2초. 3초. 끝.
"형."
"왜."
"이카루스가 형 것입니까?"
"미래그룹 헌터 자산 관리 계획에 포함되어 있어."
"계획에 포함된 건 아직 형 것이 아닙니다."
도윤의 눈이 처음으로 달라졌다.
"각서 한 장이면 끝나."
"형이 각서를 들고 나왔으면 이미 끝났다고 생각한 겁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침묵.
도윤이 와인 잔을 내려놓았다.
"한 가지 물어볼게."
"말씀하시죠."
"이혜진. 기억해?"
승헌의 손이 테이블 위에서 멈췄다.
"그 애가 왜 죽었는지, 너는 알고 있어?"
도윤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다. 공격이 아니었다. 더 나쁜 종류였다. 사실처럼 들리는 목소리.
"네 판단 하나 때문이잖아."
승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도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공시합니까?"
승헌은 0.5초를 썼다.
"공시합니다."
도윤이 처음으로 웃었다. 입꼬리만.
"좋아."
레스토랑을 나서면서 마켓 아이가 업데이트됐다.
공개매수 성공 확률: 67%→61%. 도윤 전면전 전환.
화이트 나이트 투입 가능성: 57%.
승헌은 은설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일 오전 공개매수 선언 준비합니다.〕
답장은 30초 만에 왔다.
〔준비하겠습니다.〕
바깥 공기가 차가웠다.
이혜진.
형이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오늘 밤 가장 아픈 수였다.
61%. 아직 파란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