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형의 그림자
엘리베이터 거울 속 남자는, 방금 전까지 남의 회사를 산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거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28세, 미각성, 은행 잔고 210만 원. 방금 전 '내일 공개매수 들어갑니다'라는 문장을 회의실에 던지고 나온 사람의 얼굴치고는 지나치게 멀쩡했다.
마켓 아이가 조용히 깜빡였다.
엘리시움 투자 유치 확률: 68%. 이카루스 임원 동의 확률: 61%. 공개매수 성공 확률: 54%.
숫자는 정직하다. 좋을 때도, 나쁠 때도.
1층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로비 TV에서 속보 자막이 흘러갔다.
〔미래그룹 전략기획팀, 헌터 금융시장 점검 TF 신설〕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1층이었다. 문이 열렸지만 승헌은 움직이지 않았다.
3초.
형이 움직인다.
승헌은 로비로 걸어 나왔다. TV 자막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미래그룹. 전략기획팀. 헌터 금융시장. TF 신설.
단어 하나하나가 쐐기처럼 박혔다.
확률이 떨어진 건 시장 때문이 아니었다. 형 때문이었다.
*
▶ 엘리시움 자산운용. 역삼역 오피스 빌딩 14층.
원태경은 화면을 보고 있었다. 세 개의 모니터. 가운데는 이카루스 호가창, 왼쪽은 미래그룹 관련 뉴스 피드, 오른쪽은 수익률 시뮬레이션.
승헌이 들어왔을 때 태경은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TV 봤어?"
"봤습니다."
"미래그룹이 왜 헌터 금융 TF를 만들었는지 알아?"
승헌은 의자에 앉았다. 태경의 질문은 항상 확인이었다. 그가 모르는 게 아니라, 상대가 아는지를 확인하는 방식.
"이카루스입니다."
태경이 처음으로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었다.
"정확히는." 승헌이 말을 이었다. "저입니다."
침묵.
은설이 태블릿에서 시선을 들었다. 승헌의 말뜻을 이해하는 데 0.5초가 걸린 것 같았다.
"형이 동생 발목 잡으러 나온 건가." 태경이 커피를 들었다. "재밌군."
"재밌지 않습니다."
"아니야." 태경이 마셨다. "재밌어. 변수가 생긴 게임이 더 재밌거든."
승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태경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변수가 있는 거래는 리스크가 올라간다. 하지만 리스크가 올라가면 수익도 올라간다. 태경이 지금 이 자리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계산이 끝났다는 의미였다.
"타임라인 맞춰보죠." 승헌이 말했다. "오늘은 매집 루트 분산. 내일은 공시 초안 제출. D+3 매수 개시."
"빡빡하다."
"형이 시간을 주지 않을 테니까요."
태경이 모니터 왼쪽을 가리켰다. 이카루스 호가창이었다.
"은설 씨, 지금 호가 어때?"
은설이 태블릿을 들었다.
"호가 벽이 생겼습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약간 낮았다. "3,800원대에 동일 계열 계좌로 추정되는 매물이 쌓이고 있어요. 같은 호가에서 지속적으로 리필되고 있습니다."
매집 속도 저하. 계좌 분산 우회 필요. 성공 확률 72%→64%.
마켓 아이가 뱉어낸 숫자를 승헌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8퍼센트. 8퍼센트가 떨어지는 데 TV 속보 하나로 충분했다.
"SPV 한 단계 추가합니다." 승헌이 말했다.
"명의 분리?"
"자금 흐름을 한 단계 더 끊는 겁니다. 형이 추적할 수 있는 라인이 지금 셋. 하나를 더 끼워 넣으면 넷. 조사 착수까지 걸리는 시간이 늘어납니다."
태경이 잠시 생각했다. 손가락이 책상을 두드렸다. 한 번. 두 번.
"법적으로는?"
"적법 범위 안입니다. 국제 PEF 표준 구조."
"확인은?"
"은설 씨가 법률 검토 담당입니다."
은설이 태블릿에 이미 메모를 시작하고 있었다. 승헌이 말하는 속도보다 한 박자 빠르게.
태경이 모니터를 껐다. 세 개 동시에.
"한 가지 물어봐도 돼?"
"말씀하시죠."
"형이 법으로 묶으면, 어떻게 할 거야?"
그것이 진짜 질문이었다. 승헌은 태경이 묻고 싶었던 것이 처음부터 이것이었다는 걸 알았다. 자금도, 구조도, SPV도 아닌 — 형이 세무조사를 들이밀었을 때.
"더 빨리 공시하죠."
침묵.
태경이 안경을 벗었다. 그리고 다시 썼다.
"좋아."
*
─── 미래그룹 본사 42층 / 같은 시각
강도윤은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A4 용지 세 장. 표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받는 보고서는 항상 그랬다. 내용만 있고 표지는 없는.
보고서 첫 줄.
〔강승헌, 미각성 각성자. 이카루스 C급 길드 LBO 시도 중. 자금원 — 엘리시움 자산운용(원태경).〕
도윤은 보고서를 덮었다. 창 밖으로 서울이 보였다. 야경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그는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차단은 너무 노골적이다. 막으면 싸움처럼 보인다. 싸움처럼 보이면 관심이 간다. 관심이 가면 언론이 온다.
법으로 묶는다.
"팀장."
뒤에서 기다리던 남자가 답했다.
"네."
"세무 라인 올려. HMB 감사 채널도."
"이카루스 건입니까?"
"강승헌 건이야."
팀장이 나갔다. 도윤은 다시 창 밖을 봤다.
승헌, 네가 뭘 사든.
내 것은 내 것이다.
*
▶ 이카루스 길드 주차장. 밤.
박성우는 차 안에 앉아 있었다.
엔진을 켜지 않은 채로. 핸들만 두 손으로 잡고.
조수석에 가져온 서류 봉투가 있었다. '공개매수 동의 각서'. 아직 서명하지 않은.
그는 어제까지만 해도 길드가 망하는 줄 알았다. 3분기 연속 적자. 대출 연장 실패. 헌터 이탈. 그리고 오늘 오후, 28세짜리 미각성 청년이 들어와서 EBITDA를 말했다.
박성우는 30년 가까이 던전에서 살았다. 몬스터의 눈을 보면 무서운지 안 무서운지 안다. 그 28세의 눈은 무섭지 않았다. 더 나빴다. 무서움이 없는 눈이었다.
스마트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받았다.
"성우 씨."
목소리가 낯설었다. 젊었다. 그러나 익숙한 종류의 차가움이 있었다.
"누구십니까?"
"미래그룹 전략기획팀입니다. 잠깐 뵐 수 있을까요?"
박성우의 손이 핸들 위에서 굳었다.
*
▶ 엘리시움. 소회의실.
승헌은 리스크 체크리스트를 은설 앞에 놓았다. 손으로 쓴 것이었다. 세 항목.
1. 내부자거래 의혹 가능성 — 자금출처 소명 준비.
2. 공시 타이밍 — 4.9% 이전 공시 검토 (도윤이 역이용 가능).
3. 이카루스 임원 이탈 시나리오 — 박성우가 흔들릴 경우 플랜 B.
은설이 체크리스트를 읽었다. 한 줄씩. 승헌은 그 시간 동안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이걸 언제 만든 거예요?" 은설이 물었다.
"이카루스 회의실에서 나오면서요."
은설이 잠시 승헌을 봤다. 뭔가를 판단하려는 것 같은 눈이었다. 승헌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전생에서도 이랬어요?" 은설이 물었다.
승헌은 멈췄다.
"전생?"
"아, 죄송합니다. 비유입니다. 이렇게까지 준비된 이라는 의미로."
그녀는 모른다. 아직.
"아니요." 승헌이 말했다. "전생에서는 이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은설이 다시 체크리스트로 시선을 돌렸다.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3번 플랜 B, 제가 임원 개별 면담 설계하겠습니다. 박성우 씨 성향상 대화 창구가 열려 있어야 해요."
"부탁드립니다."
--- 10년 후의 기억.
형이 서류를 내밀었다. 각서였다. 승헌은 그 각서를 보면서 옆에 서 있던 사람의 얼굴을 봤다. 차은설이었다. 그녀는 승헌 쪽을 보고 있었다. 배신자로 오해받던 그날, 그녀는 끝까지 승헌 쪽을 보고 있었다.
승헌은 눈을 깜빡였다. 소회의실 형광등. 은설이 태블릿에 메모를 치고 있었다.
감정 통제. 3초.
1초. 2초. 3초.
끝.
"마켓 아이 현재 수치." 승헌이 말했다. 스스로에게 하는 말처럼.
공개매수 성공 확률: 54%. 리스크 변수 추가 — 규제 압박. 도윤 개입 강도: 중.
54%.
전생의 2.8%에 비하면 여전히 파란색이었다.
승헌은 체크리스트를 다시 가져갔다. 한 줄을 더 썼다.
4. 형이 움직인다 — 우리가 더 빨리 움직인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 이상의 감정은, 지금은 사치다.
*
다음 날 아침 7시 20분. 승헌은 이카루스 로비에 서 있었다.
임원 여섯 명 전원이 호출되어 있었다. 표정들은 어제와 달랐다. 어젯밤 무언가 일이 있었다는 게 얼굴에 적혀 있었다.
박성우는 제일 늦게 들어왔다. 눈 밑이 어두웠다. 잠을 못 잔 얼굴.
박성우. 변심 확률 39% → 51%. 외부 접촉 있었음.
승헌은 박성우의 눈을 2초 동안 봤다. 박성우가 먼저 시선을 피했다.
"어젯밤에 연락받으셨죠?"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박성우의 어깨가 굳었다.
"미래그룹에서 오지 않았나요?"
박성우가 입을 열었다 닫았다.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것은 수치입니다." 승헌이 테이블 위에 서류를 놓았다. "미래그룹이 이카루스를 가져가면, 이 길드의 모든 던전 좌표는 미래그룹 계열 길드로 넘어갑니다. 무영-7 포함해서."
무영-7.
그 단어에 박성우의 눈이 달라졌다.
"반면." 승헌이 말을 이었다. "저와 거래가 성립되면, 이카루스 법인은 유지됩니다. 헌터 고용 계약 전원 승계. 무영-7 수익의 15%는 이카루스 원래 구성원들에게."
침묵이 회의실에 가라앉았다.
"오늘부터 시장을 상대합니다." 승헌이 말했다. "동의서가 필요한 분은 지금 서명해주시면 됩니다. 동의하지 않으실 분들은, 오늘 이후로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정해린이 먼저 손을 들었다.
"저요."
하나씩. 둘씩.
박성우가 마지막이었다. 그는 승헌을 한 번 더 봤다. 그리고 펜을 들었다.
그는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싸움의 룰을 바꾸는 사람이었다.
*
오후 7시. 승헌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가 아니었다. 형의 번호였다.
승헌은 세 걸음을 더 걷고 멈췄다. 전화를 받았다.
"형."
전화기 너머로 낮은 숨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웃음 소리. 낮고, 차갑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승헌."
형의 목소리는 항상 이랬다. 1음절. 2음절. 그 이상은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
"네가 뭘 하든."
잠깐의 침묵이 있었다.
"막을 거다."
전화가 끊겼다. 일방적으로. 형의 방식이었다.
승헌은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마켓 아이가 새로운 수치를 띄웠다.
리스크: 규제 조사 착수 가능성 81%.
81%.
높다. 하지만 100이 아니다.
19%. 그 안에 전부 집어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