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저주파
소리에 깨었다.
새벽 3시. 도하의 눈이 어둠 속에서 떠졌다. 처음에는 냉장고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진동에 리듬이 있었다. 불규칙한 리듬. 빨라졌다가 느려졌다가, 다시 거칠게 빨라지는. 아크의 벽을 타고 오는 낮은 진동이었다. 바닥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침대 머리맡의 물컵 안에서 수면이 흔들렸다.
에스퍼의 감각 과부하.
도하는 이불을 걷고 일어섰다. 맨발로 복도를 걸었다. 바닥이 차가웠다. 하지만 발바닥에 전해지는 진동이 체온보다 먼저 느껴졌다. 소리가 커졌다. 강진의 방 쪽으로 갈수록 진동의 폭이 넓어졌다. 복도의 형광등이 깜빡거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불규칙하게.
강진의 방 앞이었다.
문틈으로 빛이 새어 나오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진동만이 벽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공기가 떨리고 있었다. 도하의 피부 위로 소름이 돋았다. 이것은 가이딩으로 다스릴 수 있는 수준의 과부하가 아니었다. 에덴 교본 제9장, 에스퍼 폭주 전조 증상. 주변 환경에 대한 무의식적 능력 방출. 공기 진동. 전자기기 오작동. 물체의 비자발적 이동. 교본에는 붉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전조 단계 진입 시 즉시 대피하시오.'
도하는 문에 손을 얹었다.
떨림이 전해졌다. 강진의 신경계가 통제를 잃어가고 있었다. 벽과 바닥과 공기를 통해 에너지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S급의 폭주 전조. 에덴에서 본 B급 에스퍼의 폭주와는 차원이 달랐다. B급은 방 안의 물건이 떨리는 수준이었다. S급은 건물이었다.
문을 열었다.
강진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마를 두 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의 실루엣만 보였다. 하지만 도하는 볼 수 있었다. 가이드의 눈은 어둠에 익숙했다.
강진의 양팔이 떨리고 있었다. 이마를 누른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이를 악물고 있었다. 턱의 근육이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침대 옆 탁자 위의 물컵이 달그락거리다 탁자 끝으로 밀려가고 있었다. 커튼이 바람 없이 흔들렸다. 방 안의 공기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하고 있었다.
"나가."
강진이 말했다. 도하를 보지 않았다.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이마를 누르고 있었으므로.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통증을 이로 씹어 삼키는 사람의 목소리.
"나가라고 했어."
경고였다. 도하는 그것을 알았다. 에스퍼의 폭주 전조 단계에서 가까이 가는 것은 위험했다. 교본에 붉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폭주 전조 단계의 에스퍼에게 접근하지 마시오. 적합도 B급 이상 필수.'
적합도 0%.
교본대로라면 도하는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한 걸음 들어갔다.
물컵이 탁자에서 떨어졌다. 바닥에 물이 쏟아졌다. 유리가 깨지지는 않았다. 카펫이 충격을 흡수했다. 하지만 물이 도하의 맨발을 적셨다. 차가웠다. 커튼이 세게 흔들렸다. 강진의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 에너지가 강해지고 있었다.
도하의 귀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이명. 에스퍼의 감각 방출이 가이드의 신경계에 간섭하는 현상. 에덴의 교본에서는 '공명 역류'라고 불렀다. 도하의 뇌가 강진의 고통을 수신하기 시작했다. 귀 안쪽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시야가 흔들렸다.
한 걸음 더 들어갔다.
"멈춰요."
도하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 떨어졌다. 조용했다. 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강진의 감각 과부하 상태에서 큰 소리는 기폭제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낮게. 자신의 파동과 같은 음역으로.
강진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탁자가 바닥을 긁으며 밀려났다.
도하는 마지막 걸음을 내디뎠다. 강진의 앞에 섰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바닥이 젖어 있었다. 쏟아진 물. 차가웠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마를 누르고 있는 강진의 두 손 위에 자신의 양손을 얹었다.
쏟아졌다.
강진의 감각이 도하의 손끝을 통해 밀려들어왔다. 폭포처럼. 벽이 무너지듯. 방어기제가 닫혀 있을 때는 스며드는 수준이었지만, 폭주 전조 상태에서는 방어기제 자체가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균열 사이로 S급의 감각이 여과 없이 쏟아졌다.
소리가 들렸다. 강진이 듣고 있는 세상의 소리. 형광등의 주파수. 냉장고의 진동. 바닥 아래 배관의 물소리. 52층 아래 도로의 차량 소음. 먼 곳에서 울리는 차폐벽의 서치라이트 모터음. 세상의 모든 소리가 볼륨 최대로 동시에 재생되고 있었다.
이것이 S급의 세계였다.
도하의 손이 떨렸다. 뺄 수 있었다. 빼야 했다. E급의 신경계가 견딜 수 있는 범위를 이미 넘어서고 있었다. 교본의 붉은 글씨가 깜빡였다. 접근 금지. 접근 금지.
빼지 않았다.
대신, 가라앉았다.
의식을 내려놓았다. 교본을 버렸다. 에덴에서 배운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만 남겼다. 120Hz 이하. 인지 불가 영역. 아무에게도 닿지 않는다고 판정받은 주파수. 도하의 것. 도하만의 것.
파동을 보냈다.
높은 곳으로 보내지 않았다. 잡음의 벽을 뚫으려 하지 않았다. 대신 아래로. 더 아래로. 잿빛 폭풍의 바닥으로. 소리가 닿지 않는 깊은 곳으로. 마치 깊은 바다의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처럼.
도하의 저주파가 소란의 아래를 지나 강진의 가장 깊은 곳에 닿았다.
색이 바뀌었다.
잿빛이었던 세계에 금빛이 번졌다. 도하의 손끝에서 시작된 빛이었다. 물리적인 빛이 아니었다. 가이드의 파동이 에스퍼의 감각 세계에서 보이는 방식이었다. 도하의 교본에는 없는 현상. 도하는 그것을 볼 수 있었다. 공명 역류를 통해 강진의 감각을 공유하고 있었으므로.
따뜻한 빛이었다. 새벽에 수면 위로 처음 퍼지는 햇살 같은 빛. 그것이 강진의 잿빛 폭풍 아래를 흘러, 한 줄기, 두 줄기. 바닥에서부터 천천히 위로 올라왔다.
잡음이 줄었다. 형광등 소리가 멀어졌다. 찢어지던 빛이 부드러워졌다. 잿빛 위로 금빛이 퍼졌다. 폭풍이 잔물결이 되었다. 잔물결이 고요가 되었다.
강진의 손이 떨어졌다. 이마를 누르고 있던 두 손이 천천히 무릎 위로 내려왔다. 힘이 빠져 있었다. 턱의 근육이 풀렸다. 호흡이 깊어졌다.
커튼이 멈추었다. 방 안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아크가 조용해졌다.
도하가 해낸 것이었다.
도하의 무릎이 바닥에 닿아 있었다. 젖어 있었다. 손끝이 저렸다. 쥐어지지 않았다. 신경계가 과부하를 견딘 후유증이었다.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시야가 살짝 흔들렸다.
하지만 강진은 괜찮았다.
그것이면 됐다.
"괜찮아요."
도하가 말했다. 강진에게가 아니라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손끝의 저림을 무시했다. 에덴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이었다. 자신의 고통은 무시하는 법.
"제가 감당할게요."
그 말이 나왔을 때 도하는 스스로 놀랐다. 계약서의 어느 조항에도 없는 문장이었다. '감당'이라는 단어는 의무 이상의 것을 포함하고 있었다. 누가 시키지 않은 것. 언제부터 이 사람의 고통이 자신의 의무를 넘어선 것이 되었는가. 이틀. 겨우 이틀이었다.
도하는 그 생각을 접었다. 지금은 아니었다.
일어서려 했다.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주저앉을 뻔했다.
팔이 잡혔다.
강진의 손이었다. 도하의 팔꿈치 바로 위를 쥐고 있었다. 세게 잡은 것이 아니었다. 그냥 거기 있었다. 놓지 않고.
도하는 돌아보지 않았다. 잡힌 팔에서 눈을 내렸다.
강진의 손가락이 도하의 소매를 쥐고 있었다. 작은 동작이었다. 하지만 이 사람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는 것이, 말보다 손이 먼저인 사람이라는 것이 도하의 가슴 어딘가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새벽이 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창백한 빛. 강진의 손등 위로 파란 정맥이 희미하게 보였다.
강진은 도하를 보고 있었다.
창백한 피부 위에 파란빛이 돌았다. 검은 머리카락 아래 옅은 푸른빛. 강진은 처음으로 그것을 알아차렸다. 홍채의 공명 잔류. 가이드의 파동이 강하게 사용된 후에 나타나는 현상.
그런데 이 잔류가 E급에게 나타날 리가 없었다.
오라클이 세 번 걸러냈다고 어제 복도에서 들렸다. 세 번째였다면 그것은 단순한 오류가 아니었다. 누군가 의도한 것이었다.
0%가 아니다.
강진은 확신했다. 이유는 아직 몰랐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도 몰랐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 사람은, 시스템이 말하는 그 사람이 아니다.
도하가 천천히 팔을 빼며 일어섰다. 한 손으로 벽을 짚는 것이 보였다.
"좀 쉬겠습니다."
도하가 말했다. 목소리가 여전히 낮았다. 방을 나가려 했다.
"도하."
강진이 불렀다. 이름이었다. 성이 아닌. 처음이었다.
도하가 멈추었다. 돌아보지는 않았다.
"내일도 해."
"…네."
"그 뒤에도."
도하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고개만 살짝 돌렸다. 새벽 빛 속의 옆모습. 창백한 피부 위의 금빛. 파란빛이 도는 눈.
"계약이니까요."
도하가 말했다.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도하도 알고 있었고, 강진도 알고 있었다. 계약서 42쪽 어디에도 '새벽 3시에 폭주 전조 단계의 에스퍼를 위해 무릎을 꿇으시오'라는 조항은 없었다.
도하가 나갔다. 문이 닫혔다.
강진은 빈 방에 앉아 있었다. 바닥의 물이 마르고 있었다. 두통이 없었다. 세상이 고요했다.
그리고 손끝에, 도하의 파동이 아직 남아 있었다. 낮고, 느리고, 따뜻한 것. 물이 빠진 자리에 남은 온기처럼.
—0%가 아니다.
강진은 확신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오라클이 이 사람을 0%로 판정한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그 이유가 두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