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0각의 파동
연구실의 공기는, 사람을 믿지 않았다.
냄새가 먼저였다. 석회와 마력 잉크. 창이 없었다. 지하 2층. 조명이 마법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지만 색이 희고 고르지 않았다. 사람의 피부가 석고처럼 보이는 종류의 빛이었다.
카이락스는 입구에서 실내를 훑었다.
수정구 두 개. 측정 기기 세 대. 기록 룬판 다섯 개. 파동 증폭 결계가 벽 네 면에 각인되어 있었다. 진단과 측정을 위한 공간. 하지만 결계의 배치가 — 단순 측정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파동을 증폭시키면 동시에 대상을 고립시킬 수 있는 구조였다.
벽 안쪽에서 오래된 잉크 냄새가 올라왔다. 이 방에서 많은 것이 기록되었다는 뜻이었다.
전부 감시다.
알테리온이 기기 옆에 서 있었다. 연구파 교수 한 명이 측정 기기를 점검하고 있었다. 나이가 있었다. 회색 머리. 서류를 많이 보는 사람의 눈이었다.
"왔군."
알테리온이 말했다. 카이락스는 안으로 들어갔다.
"기기 재점검이라고 하셨습니까."
"입학 측정 이후 기기 이상 보고가 있었다. 해당 학생들을 순차적으로 재측정한다."
순차적으로. 사실이 아니었다. 재측정이 이루어진 학생은 자신이 처음일 것이었다.
연구파 교수가 측정 기기 앞에 섰다.
"손을 여기 올려주시게."
수정구가 아니었다. 감지판이었다. 더 정밀한 장치. 수정구는 각을 읽고, 감지판은 파동의 결을 읽었다. 성흔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파동 흔적을 기록했다.
카이락스는 감지판 앞에 섰다.
0.0001%. 허무의 근원을 최소화했다. 파동을 흘리면 기록된다. 완전히 지우면 그 자체가 이상 신호가 된다. 가장 안전한 것은 성흔처럼 보이는 공백이었다.
아주 미세한 허무를 성흔 파동의 결처럼 위장해 흘렸다.
감지판에 손을 얹었다.
*
기기가 반응했다.
처음 0.5초는 정상이었다. '0각' 표기. 수치 없음. 연구파 교수가 기록지에 받아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0.1초.
숫자가 흔들렸다.
0이어야 할 자리에 무언가가 깜빡였다. 표기할 수 없는 값. 기기가 처리를 못 하고 있었다. 연구파 교수의 손이 멈추었다. 기기를 들여다보았다. 두 번.
룬판에 파형이 찍혔다.
파형이 아니었다. 공백이었다. 성흔 파동이 지나간 자리에 남아야 할 잔향이 — 없었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연구파 교수의 얼굴이 굳었다.
카이락스는 감지판에서 손을 뗐다.
"이상 없습니까."
연구파 교수는 룬판과 기기를 번갈아 보았다. 입술을 열었다가 — 알테리온을 한 번 보고 다시 닫았다.
"...재측정을 한 번 더 해도 될까요."
"필요하면요."
다시 감지판에 손을 얹었다. 이번에는 더 조였다. 완전한 공백. 기기가 0.05초 흔들렸다가 돌아왔다.
룬판의 파형 위에 또 하나의 공백이 겹쳤다.
*
문이 열렸다.
루시안이었다.
황태자 권한으로 참관. 호위 기사는 문밖에 세워두었다. 알테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구파 교수는 고개를 숙였다.
루시안이 들어왔다. 방 안을 훑었다. 측정 기기. 룬판. 알테리온. 그리고 카이락스.
카이락스는 루시안을 보지 않았다. 감지판을 보고 있었다.
루시안이 벽 쪽에 섰다. 말하지 않았다. 지켜보는 위치였다.
연구파 교수가 헛기침을 했다.
"기본 파동 반응 검사를 하겠습니다. 성흔 유무와 관계없이 생체 파동을 기록합니다. 손을 펴고 힘을 빼주세요."
카이락스는 손을 폈다. 힘을 뺐다.
기기가 생체 파동을 스캔했다. 정상 반응. 살아 있는 인간의 파동. 평균치. 조금 낮았지만 허용 범위 안이었다.
"다음은 집중 상태에서의 파동입니다. 무언가를 떠올리거나 집중하는 상태에서 측정합니다."
집중.
무엇을 떠올릴까.
전장이 떠올랐다. 북부 전선. 알테리온이 소대장으로 있던 그 전선. 자신이 병력을 보낸 그 전선. 병사 삼십 명 중 스물여섯이 돌아오지 못한 그 들판.
의도하지 않은 기억이었다.
0.1초. 기기가 흔들렸다.
룬판의 공백이 달라졌다. 파형이 찍혔다. 성흔 파형이 아니었다. 기기가 분류하지 못하는 종류의 파형. 연구파 교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카이락스는 즉시 공백으로 돌아왔다. 0.1초. 파형은 사라졌다.
하지만 기록은 남았다.
저 기록이 문제다.
루시안이 벽에서 한 발 앞으로 나왔다. 기기를 보고 있었다. 파형을 읽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연구파 교수의 표정이 변했다는 것은 읽었다.
"무엇이 나왔나."
연구파 교수가 루시안을 보았다가 알테리온을 보았다.
알테리온이 말했다.
"기록은 봉인해두지. 분석이 필요하다."
"분석 결과를 보고해야 합니까."
"내가 직접 확인할 것이다."
루시안이 알테리온을 보았다. 알테리온은 그 시선을 받았다. 말하지 않았다.
루시안은 카이락스를 보았다.
카이락스는 감지판에서 손을 뗐다. 평온한 표정이었다. 0각의 학생. 아무것도 모르는 F급.
그 표정을 유지하면서 생각했다.
저 기록이 남는다. 알테리온이 직접 보관한다. 타인이 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인지, 자신이 확실히 보관하려는 것인지.
알테리온이 두 겹의 파동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생겨났다.
*
복도.
연구실 문 앞. 리아가 서 있었다.
들어가지 않았다. 참관 권한이 없었다. 하지만 파동이 느껴졌다. 연구실 안에서. 성녀의 감각이 가리키는 것.
공백이었다.
그 공백이 잠깐 — 다른 것이 되었다가 돌아왔다. 0.1초. 성흔도 아니었다. 생체 파동도 아니었다. 예언서에서 읽은 것과 같은 종류의 파동이었다.
심연.
리아는 문 앞에서 숨을 참았다.
문이 열렸다.
카이락스가 나왔다. 리아와 눈이 마주쳤다. 1초. 카이락스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리아도 바꾸지 않았다.
카이락스가 지나갔다. 리아는 그 등을 보았다.
뒤이어 루시안이 나왔다. 리아를 보고 잠시 멈추었다가 지나갔다. 마지막으로 알테리온이 나왔다. 손에 봉인된 룬판을 들고 있었다.
알테리온이 리아 앞을 지나가며 낮게 말했다.
"성녀 후보. 이곳은 허가 구역이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알테리온이 복도를 내려갔다. 봉인된 룬판을 들고. 보관실 방향으로.
리아는 그 등을 보았다. 직감이 가리키고 있었다. 저 룬판 안에 무언가가 있다. 카이락스가 연구실에서 남긴 것이.
*
밤. 보관실이었다.
봉인이 풀린 흔적이 있었다. 안에서 풀린 것이었다.
룬판 보관함. 알테리온이 오늘 오후에 직접 넣은 것. 봉인 위에 알테리온의 파동이 각인되어 있었다. 타인이 열면 흔적이 남는 방식의 봉인이었다.
봉인은 풀려 있었다. 그러나 흔적은 — 남지 않았다.
봉인에 각인된 파동을 먼저 복사하거나 덮어씌워야 가능한 일이었다. 학당 내에서 그런 기술을 가진 자가 얼마나 있겠는가.
룬판 보관함 안.
오늘 오후 측정된 기록. 마지막 줄이 바뀌어 있었다.
원래 표기는 '레온 아르케인 — 0각. 파동 이상 기록 있음. 분류 불가.'
지금 표기는.
'레온 아르케인 — 심연 파동 반응.'
여섯 글자가 추가되어 있었다.
쓴 사람이 있었다. 알테리온의 파동을 복사해 봉인을 열고 기록을 수정한 뒤 다시 봉인한 사람이.
그리고 그 사람은 — 카이락스가 심연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