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벌레만도 못하군
연무장의 모래바닥이 발밑에서 갈렸다.
타원형 경기장. 중앙에 원형 결계가 설치되어 있었다. 방어 목적의 결계 — 안에서 싸우는 자들의 충격이 밖으로 새지 않게 하는 장치. F급 모의전에는 과분한 설비였지만, 규정이 그렇다고 했다.
관중석은 없었다. 하지만 연무장 위쪽 회랑에서 몇몇 학생들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구경이 아니라 조롱에 가까운 시선들.
"F급끼리 싸우면 얼마나 걸려?"
"삼 분? 체력이 먼저 떨어질 걸."
"구경할 가치도 없다니까."
웃음소리가 모래바닥 위로 흘러내렸다.
카이락스는 연무장 구석에 서서 벽에 등을 기댔다. 일곱 명의 F급 학생이 원형 결계 주위에 모여 있었다. 카일 로덴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오른팔. 아침에 카이락스가 지적한 회로의 균열. 그것을 의식하고 있는 움직임이었다.
새삼스러운 녀석이군. 알았으면 됐지, 신경을 쓰다니.
알테리온이 연무장 중앙에 섰다.
"규칙은 간단하다. 상대가 결계 밖으로 나가거나, 항복을 선언하거나, 내가 중지를 명하면 끝이다. 무기 사용은 자유. 성흔 사용도 자유."
성흔 사용도 자유. F급에게는 의미 없는 허가였다. 0각과 1각에게 성흔 전투란 존재하지 않는 옵션이었다.
"첫 번째 대전. 카일 로덴 대 게이르 브룬트."
카일이 원형 결계 안으로 들어갔다. 상대는 덩치가 큰 소년이었다. 게이르 브룬트. 1각. 키가 190에 가까웠고, 팔뚝이 카일의 허벅지만 했다. 손에 연습용 곤봉을 들고 있었다. 나무이지만 무게추가 달려 있어 제대로 맞으면 뼈가 갈라질 수도 있었다.
카일은 맨손이었다.
"시작."
카일이 먼저 움직였다.
빠르지 않았다. 정확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 멈추지 않았다. 게이르의 곤봉 첫 번째 스윙을 엉성하게 피했다. 바람이 귀를 스쳤다. 두 번째 스윙. 몸을 낮추었다. 모래가 흩날렸다.
카이락스는 벽에 기댄 채 그것을 지켜보았다.
카일의 성흔 파동이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3각의 잠재력이 2각에 갇혀 있는 상태. 움직일 때마다 회로의 균열이 부하를 일으켰다. 통증이 있을 것이다. 팔꿈치 안쪽과 등, 성흔 회로가 지나가는 경로를 따라.
그런데도 멈추지 않는다.
인간에게 근성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은 백오십 년 전에도 알고 있었다. 전장에서 팔이 잘려도 달려드는 병사를 본 적이 있었다.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생각은 같았다.
다만.
게이르의 곤봉이 카일의 옆구리를 쳤다. 둔탁한 소리. 카일이 모래바닥에 굴렀다.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회랑 위에서 웃음이 터졌다.
"역시 F급이네."
"삼 분도 안 걸렸어."
카일이 일어났다. 입가에서 피가 흘렀다. 옆구리를 짚었다. 다리가 떨렸다. 하지만 주먹을 쥐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오른팔이 떨리고 있었다. 회로의 통증.
게이르가 곤봉을 어깨에 올렸다. 여유로운 동작이었다.
"포기해. 네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닥쳐."
카일이 달려들었다. 무모했다. 정면 돌진. 체격 차이를 무시한 직선 궤도. 게이르가 곤봉을 들어 올렸다. 내려치기. 궤적이 보였다 — 카일의 머리를 향하고 있었다.
연습용이라 해도 제대로 맞으면 의식을 잃는다. 각도에 따라서는 두개골에 금이 갈 수도 있었다.
알테리온이 입을 열었다. 중지를 외치려는 순간 —
모래가 흩날렸다.
카이락스가 거기 있었다.
벽에 기대어 있던 자가 원형 결계 안에 서 있었다. 누구도 움직임을 보지 못했다. 회랑 위의 구경꾼도, 알테리온도, 결계 안의 두 사람도. 눈을 깜빡인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게이르의 곤봉을 카이락스의 손가락 두 개가 잡고 있었다.
검지와 중지. 내려치기의 궤적 한가운데, 곤봉의 무게추 바로 위. 가장 힘이 집중되는 지점을 정확히 짚었다. 그곳을 잡으면 무게추의 관성이 상쇄된다. 물리학이었다. 마력이 아니라.
곤봉이 멈춰 있었다. 완전히.
게이르의 팔이 떨렸다. 본능적으로 곤봉을 빼내려 했다.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산에 박힌 것처럼. 손가락 두 개에 잡힌 나무 곤봉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게이르의 얼굴에 땀이 번졌다. 이를 악물었다. 양손으로 잡아당겼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연무장이 조용해졌다.
회랑 위의 웃음도 사라졌다. 누군가의 찻잔이 난간에 부딪히는 소리만 울렸다. 그 뒤로는 — 숨소리조차 멈춘 듯한 정적.
카이락스는 게이르를 보지 않았다. 곤봉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무심한 눈. 마치 길가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운 것처럼.
손가락을 비틀었다. 가볍게. 숨을 쉬는 것보다 적은 힘으로.
곤봉이 게이르의 손에서 빠져나갔다. 게이르의 손은 곤봉을 놓거나 손목이 부서지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0.3초 만의 일이었다.
카이락스가 곤봉을 모래바닥에 꽂았다. 나무가 모래를 가르며 반쯤 묻혔다. 곤봉이 수직으로 서 있었다. 마치 묘비처럼.
알테리온의 눈이 좁아졌다. 그가 본 것은 곤봉이 아니었다. 모래바닥이었다. 카이락스의 발자국. 벽에서 이곳까지 직선으로 하나뿐이었다. 중간에 밟거나 미끄러진 흔적이 없다는 뜻이었다.
한 걸음. 벽에서 결계 중앙까지. 최소 열다섯 걸음의 거리를 한 걸음으로 좁혔다.
불가능이라는 단어가 알테리온의 머릿속을 스쳤다. 그리고 즉시 지워졌다. 전장에서 살아남은 자는 불가능을 믿지 않는다. 불가능이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것일 뿐이다.
"머리를 노리는 건 연습이 아니라 가해지."
카이락스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꾸짖는 것도 화를 내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게이르가 한 발 물러섰다. 두 발. 얼굴이 하얘져 있었다.
"너, 뭐야... F급 아니었어?"
카이락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카일을 돌아보았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카일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일어나."
"...너한테 도움 같은 거 안 부탁했어."
"도움이 아니다."
카이락스가 카일 앞에 섰다. 모래 위에 쓰러진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눈에 동정은 없었다. 경멸도 없었다. 다만 — 관찰.
"방금 네 전투를 봤다. 세 가지가 틀렸다."
카일이 눈을 깜빡였다. 연무장의 다른 학생들도 움직임을 멈추었다. 알테리온이 팔짱을 낀 채 지켜보고 있었다. 중지를 선언하지 않았다.
"첫째. 정면 돌진은 자살이다. 체격 차이가 있는 상대에게 정면으로 갈 이유는 없다. 대각선으로 파고들어야 사각이 생긴다. 네 체중이면 왼쪽 45도에서 진입했을 때 상대의 곤봉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간 뒤에도 회피 공간이 남는다."
카일의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둘째. 주먹을 너무 세게 쥐고 있다. 타격 직전까지 힘을 빼야 속도가 나온다. 네 주먹은 빠른 게 아니라 힘이 미리 들어가서 느린 거다. 일상에서도 의식적으로 손을 펴라. 습관부터 바꿔야 한다."
연무장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회랑 위의 학생들도 웃지 않았다.
"셋째."
카이락스가 카일의 오른팔을 가리켰다. 정확히 팔꿈치 안쪽.
"성흔 회로에 균열이 있다. 오른팔의 반응 속도가 왼팔보다 0.3초 느리다. 그걸 모르면 평생 느리다. 그걸 알면 — 왼손잡이로 바꾸거나, 0.3초를 계산에 넣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카일의 얼굴이 하얘졌다.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는 것이었다. 고향에서 제대로 된 측정을 받지 못해 아무도 진단하지 못했던 것. 본인조차 '원래 이런가 보다' 하고 넘겼던 것.
"...그걸 어떻게 알아?"
"눈에 보인다."
카이락스는 벽 쪽으로 걸어갔다. 원래 있던 자리. 등을 기대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걸 방어라고 부르나. 벌레만도 못하군."
카일의 어깨가 떨렸다. 모욕이었다. 하지만 — 거짓은 아니었다.
"네가 지금 진 건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다. 읽을 수 있는 것을 읽지 못해서다. 관찰하고, 판단하고, 회피해라."
알테리온의 눈이 미세하게 떨렸다. 자신이 아침 수업에서 칠판에 적은 세 단어. 관찰, 판단, 회피. 카이락스가 그것을 인용한 것인지, 아니면 같은 결론에 도달한 것인지.
카일이 일어났다. 다리가 떨렸다. 옆구리를 짚었다. 하지만 카이락스의 등을 보는 눈이 — 아까와 달랐다.
분노가 아니었다.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감정이었다.
*
소문은 빨랐다.
오후가 지나기 전에 연무장의 일은 학당 전체에 퍼졌다. 대부분은 믿지 않았다. 0각이 1각의 곤봉을 빼앗는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했다.
"아마 게이르가 방심한 거겠지."
"F급끼리 수준이 다 거기서 거기잖아."
대부분은 그렇게 결론지었다. 대부분은.
학생회관 3층. 학생회장실.
세르한 드 발크가 보고를 받고 있었다. 은회색 머리카락. 차가운 눈. 성흔 5각. 발크 공작가의 장남이자 성휘 학당 학생회장. 학당 내 실질적 행정권은 학생회가 쥐고 있었다.
"0각 학생이 연무장에서 소란을 일으켰다?"
"정확히는, F급 모의전에 개입하여 상대 학생의 무기를 탈취했습니다."
세르한의 눈이 좁아졌다.
"이름은."
"레온 아르케인. 몰락 귀족. 0각. 어제 입학."
세르한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었다. 입꼬리가 비틀렸다. 상냥한 웃음이 아니었다. 사냥감을 발견한 자의 것에 가까웠다.
"F급이 감히 연무장에서 소란을. 재미있군."
"어떻게 처리할까요?"
세르한이 일어섰다.
"직접 보겠다. 내일 연무장을 잡아둬."
*
밤.
F급 기숙사 3층. 카일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었다. 반대편 침대의 카이락스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침묵이 길었다.
"...저기."
"뭐."
"오늘 낮에 한 거. 왜 그런 거야. 나 구한 거잖아."
"구한 게 아니다. 머리에 곤봉 맞으면 교실에 빈자리가 생기고, 자리 배치가 바뀌면 귀찮으니까."
카일이 3초간 침묵했다.
"...그건 이유가 안 되잖아."
카이락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카일이 이불을 끌어올렸다. 잠시 뒤,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일 연무장에 학생회장이 온다는 소문 들었어. 네 때문이래."
"그래."
"5각이야. 학생회장이."
"그렇다고 들었다."
"...무섭지 않아?"
카이락스는 창밖을 보았다. 달이 떠 있었다. 월식의 숲의 나무 꼭대기가 달빛에 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숲 안에서 무언가가 맥동하고 있었다.
어젯밤보다 강했다. 아까 옥상에서 느꼈던 것보다도 강했다. 심연의 파편. 깨어나고 있었다. 느리지 않았다. 예상보다 빠르게.
5각이 무섭냐는 질문.
"그래. 무섭군."
거짓말이었다. 카일도 아마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카일은 더 묻지 않았다. 이불 속에서 몸을 뒤척이는 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잠시 뒤 — 잠든 숨소리. 규칙적이고 깊었다.
카이락스는 창에서 시선을 뗐다.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오전에 곤봉을 잡았던 손가락 두 개. 검지와 중지. 아무 감각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 왜 뻗었는가.
백오십 년 전에도 달려드는 병사를 보았다.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어리석다고 생각했는데 — 오늘 자신이 한 것은 무엇이었나. 카일이 머리를 맞으면 죽을 수도 있었다. 죽으면 어떤가. 인간은 죽는 존재다.
그러나 손이 먼저 움직였다.
카이락스는 손을 쥐었다 폈다. 반응이 없었다. 통증도, 감각도, 이유도 없었다.
이 감정은 불필요하다.
눈을 감았다.
내일. 5각 학생회장. 그리고 자신을 주시하는 세 개의 시선 — 성녀의 직감, 황태자의 의심, 교수의 관찰.
거기에 하나 더.
월식의 숲. 심연의 파편. 누군가 그것을 깨우고 있었다. 자연적으로 깨어나는 속도가 아니었다. 의도가 있었다. 이 학당 안에 — 심연의 파편을 건드리는 자가 있다.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카이락스는 눈을 떴다.
죽을 곳을 찾으러 온 것인데, 죽기 전에 처리해야 할 일이 하나 생겼다.
창밖의 월식의 숲이 달빛 아래 침묵하고 있었다. 그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 이쪽을 향해 맥동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