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F급 낙제생
삐걱.
몸을 뒤척일 때마다 나무 프레임이 비명을 질렀다. F급 기숙사의 침대는 사람이 눕는다는 전제 자체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카이락스는 천장을 보았다. 얼룩. 어젯밤에도 보았던 그 얼룩이 아직 거기 있었다.
당연하지. 얼룩은 움직이지 않는다.
심연의 군주에게 수면은 습관이었다. 잠들지 않아도 죽지 않는 몸. 하지만 이 침대에서는 그 습관조차 지키기 어려웠다.
새벽빛이 창틈으로 스며들었다. 기숙사 3층. 이 방에는 침대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카이락스의 것. 나머지 하나는 비어 있었다.
룸메이트가 배정되었다는 서류를 받았지만, 어젯밤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0각 학생과 한 방을 쓰기 싫어서 딴 곳에서 잔 것인지. 어느 쪽이든 관심 없었다.
카이락스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창밖으로 학당 전경이 내려다보였다. 새벽 안개가 성휘 학당의 첨탑 사이로 흘렀다. 중앙 광장. 어제 수정구가 놓여 있던 받침대는 이미 철거되어 있었다.
결계의 실금.
어젯밤 발견한 그것을 생각했다. 자신이 남긴 것이 아닌 균열. 바깥에서 안쪽으로 향한 힘의 잔향.
교수진도 그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어젯밤 교수동에서 흘러나온 대화의 파편은 주워들었다. 인간이 들을 수 없는 거리였지만, 심연의 군주에게 벽은 소리를 막는 장치가 되지 못했다.
8각 이상의 출력. 그것이 그들의 결론이었다.
틀렸다. 저 결계를 깨뜨린 것은 성흔의 출력이 아니었다. 파동의 결이 달랐다. 성흔은 빛의 체계다. 그 균열을 만든 것은 빛이 아니었다.
그림자에 가까웠다.
...흥미롭군.
세면대로 향했다. 녹슨 수도꼭지를 틀자 갈색 물이 나왔다. 3초 뒤에야 투명해졌다. 칠죄 마왕군의 군주가 녹물로 세수를 하는 광경은 — 벨제르가 보았다면 심연 전체가 진동했을 것이다.
문이 열렸다.
발로 걷어찬 것이었다. 경첩이 비명을 질렀다.
"야! 여기 내 방이잖아!"
소년이 서 있었다. 갈색 머리. 다부진 체격. 눈 밑에 그늘이 짙었다 — 밤새 복도에서 잔 것이었다. 어깨에 짐 보따리를 메고 있었다. 가죽이 아니라 삼베. 바느질이 서툴렀다. 본인이 직접 만든 것이었다.
카일 로덴. 2각. F급 배정.
카이락스는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고개를 돌렸다.
"방이 두 개인 줄 알았나."
"...뭐?"
"하나다. 2인실이라는 뜻이지."
카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짐을 바닥에 던졌다. 쿵. 보따리 안에서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검이 아니었다. 소리의 질감으로 보아 농기구에 가까웠다.
"하루 종일 기숙사 사감한테 방 바꿔달라고 했거든. 아무도 안 바꿔주더라. 0각이랑 같은 방이라고 하니까 다들 웃기만 하고."
카일의 목소리에 분노가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 밑에 깔린 것은 분노가 아니었다. 수치심.
카이락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건을 걸고 창가로 걸어갔다.
"야, 무시하는 거야?"
"무시가 아니라 관심이 없는 거다."
카일의 얼굴이 붉어졌다. 주먹을 쥐었다. 한 걸음 다가왔다.
"너 같은 놈이 제일 싫어. 0각이면서 태도만 잔뜩 높은 놈. 뭘 그렇게 여유 부리는 건데? 네가 뭘 안다고!"
카이락스는 창밖을 보았다. 카일의 성흔 파동이 느껴졌다. 2각. 미약했지만 — 불안정했다. 파동의 리듬이 흔들리고 있었다. 분노 때문이 아니었다. 근본적으로 성흔 회로에 결함이 있었다.
선천적인 것은 아니다. 후천적 손상. 본래 잠재력은 이것보다 높았다. 회로의 용량이 현재 출력을 넘어서고 있었다. 물이 많은데 관이 막힌 것이었다.
카이락스는 돌아보았다.
"네 성흔은 2각이지만 본래 잠재력은 3각이다."
카일의 주먹이 멈추었다.
"누군가 잘못된 방식으로 각성을 시도했고, 회로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지. 그래서 2각에 머물러 있는 거다."
방이 조용해졌다. 복도에서 다른 학생들의 발소리가 지나갔다.
카일의 표정이 얼었다.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여러 감정이 얼굴 위를 지나갔다. 놀라움, 두려움, 그리고 — 오래된 상처를 건드린 자에 대한 경계.
"...뭐라고? 그걸 어떻게 —"
"관심 없다고 했잖아. 네 사정에. 그냥 눈에 보이니까 말한 것뿐이다."
카이락스는 교복 외투를 집어 들었다. 낡은 검은색. F급에게는 새 교복이 지급되지 않았다.
"수업에 늦겠군."
문을 열고 나갔다. 카일이 뒤에서 무언가를 외쳤지만 듣지 않았다.
*
학당 본관으로 향하는 회랑이었다.
아침 햇살이 돌기둥 사이로 비스듬히 쏟아졌다. 등급에 따라 견장의 색이 달랐다. S급은 금색, A급은 은색, B급은 동색. F급의 교복에는 견장 자체가 없었다.
앞쪽에서 사람들이 갈라졌다. 파도가 바위를 피하듯. 자연스럽게.
루시안 아스테리아. 6각. 황태자. 양쪽에 호위 기사가 따르고 있었지만 반보 뒤에 서 있었다. 스스로 앞에 서는 자. 권력을 갖고도 앞줄을 걷는 유형.
제법이군. 인간의 왕족치고는.
카이락스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회랑의 오른쪽으로 걸었다. 부딪힐 이유도, 피할 이유도 없었다.
루시안이 카이락스 앞에서 멈추었다.
주변이 조용해졌다. 학생들의 시선이 모였다. 황태자가 F급 학생 앞에서 멈추는 것. 수군거림이 퍼졌다.
루시안의 눈이 카이락스를 훑었다. 위에서 아래로. 견장 없는 어깨, 관심 없다는 듯한 표정, 그리고 — 눈.
"어제 광장에서 본 적 있다."
"그렇습니까."
"0각."
"네."
루시안이 한 걸음 가까이 왔다. 호위 기사가 긴장했지만 루시안의 손짓에 멈추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황태자의 눈동자에 금색 반점이 있었다. 황가의 혈통. 성흔이 눈에까지 각인된 것이었다.
"어제 측정이 끝난 뒤, 결계 받침대 쪽을 보고 있었지."
"0각인 자가 결계 문양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있나."
침묵. 회랑의 공기가 가라앉았다.
루시안의 성흔 파동이 출렁였다.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다. 무의식적 위압. 6각의 존재가 방출하는 자연스러운 압력. 공기가 무거워졌다.
주변 학생들이 한 발 물러섰다. E급 학생 한 명이 벽에 손을 짚었다. D급도 얼굴이 하얘졌다.
카이락스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심연의 끝에서 신족의 군세와 맞섰던 자에게, 인간 6각의 위압은 한겨울 창가에 스치는 외풍 정도였다. 느끼기는 하지만 옷깃을 여밀 필요조차 없는. 솔직히 말하면 느끼지도 못했다. 의식적으로 '저것이 위압이구나'라고 분석했을 뿐이었다.
루시안의 눈이 좁아졌다.
자신의 위압에 미동도 하지 않는 상대. 땀 한 방울, 동공의 수축, 호흡의 변화 — 아무것도 없다. 황태자는 그것을 읽었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넌 뭐지."
낮은 목소리였다. 질문이라기보다 관찰자의 메모에 가까웠다.
카이락스는 1초 동안 루시안을 보았다. 금색 반점이 있는 눈. 저 눈이 성장하면 7각이 될 수도 있겠군. 아니, 된다. 성흔의 리듬이 이미 그것을 예고하고 있었다.
"수업에 늦겠습니다, 전하."
걸어갔다. 등 뒤에서 루시안의 시선이 꽂혔다. 날카로운 시선이었다. 하지만 카이락스는 돌아보지 않았다.
회랑을 벗어나기 직전, 루시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낮게, 호위 기사에게.
"저 학생의 신상을 전부 조사해. 출생 기록까지."
*
F급 교실은 본관 지하에 있었다.
창문이 없었다. 마법으로 만든 조명이 천장에 매달려 있었지만 빛이 누렇고 흔들렸다. 벽에는 습기 자국이 있었다. 책상은 열두 개. 앉아 있는 학생은 일곱.
카이락스는 맨 뒤 구석에 앉았다. 카일이 교실에 들어왔을 때,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카일이 입술을 깨물며 반대편 구석에 앉았다. 아침의 대화를 소화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알테리온이 들어왔다.
"F급 전투 기초. 오늘부터 내가 맡는다."
학생들의 얼굴에 긴장이 떠올랐다. 알테리온의 시선이 교실을 훑었다. 카이락스에게서 0.5초 더 멈추었다. '손이 추웠습니다.' 그 대답을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성흔이 약한 자가 살아남는 법은 하나다. 보는 눈을 가지는 것이다."
알테리온이 칠판에 세 단어를 적었다. '관찰, 판단, 회피.'
"싸워서 이기는 것은 C급 이상에게나 가능한 사치다. F급은 살아남는 법부터 배운다. 오후에 연무장에서 모의전을 한다. 전원 참석."
수업이 끝났다. 삼십 분. 짧았다. 알테리온은 할 말만 하고 떠났다.
카이락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왔다.
그리고 — 멈추었다.
복도 끝. 지하에서 본관 1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 리아 벨 루미너스가 서 있었다.
성녀 후보의 흰 의복. 은빛 견장. 금발이 지하의 누런 조명 아래에서도 빛나고 있었다. 이곳에 내려올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청색 눈동자가 카이락스를 보고 있었다.
"당신."
카이락스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리아 쪽으로 걸어갔다. 계단은 그녀 뒤에 있었으니까.
리아가 길을 막았다. 의도적으로.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단호함이었다.
"어제 입학 시험에서. 당신이 수정구에 손을 올렸을 때, 무언가 느꼈어요."
"0각이라는 걸 느끼셨겠죠."
"아니요."
리아의 목소리가 단단했다. 떨리지 않았다.
"그 반대예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어요. 완전한 공백. 살아 있는 존재는 반드시 파동을 가지거든요. 0각이라 해도. 성흔이 없어도. 생명 자체가 파동이니까."
카이락스는 걸음을 멈추었다. 리아와의 거리, 세 걸음.
성녀의 감각. 역시 예민하군. '무(無)'를 감지하다니. 대부분의 감응 능력자는 '있는 것'을 감지한다. 하지만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감지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능력이었다.
이 소녀는 재능이 있다.
"그래서?"
리아의 눈이 흔들렸다. 카이락스의 '그래서?'에 담긴 완벽한 무관심. 목숨을 걸고 의심을 품은 상대에게 돌아온 것이 두 글자뿐이라는 사실.
"...거짓말을 하고 있죠, 당신."
카이락스는 리아를 보았다. 2초. 이 소녀의 눈은 직감에 의존하고 있었다. 증거는 없다. 논리도 없다. 다만 '느낌'. 그것만으로 심연의 군주 앞에 길을 막고 선 것이다.
용감한 건지 무모한 건지.
"성녀 후보께서 F급 기숙사 지하까지 내려오신 건, 그 느낌을 확인하시려고?"
리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도, 저는 확인해야 해요. 예언이 —"
말을 끊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할 뻔했는지 깨달은 듯. 얼굴이 살짝 굳었다.
카이락스는 리아를 스쳐 지나갔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충고 하나. 느낌에 의존하면 느낌에 배신당한다."
발소리가 계단 위로 멀어졌다.
리아는 빈 복도에 혼자 서 있었다. 주먹을 쥐고 있었다. 손등이 하얘질 만큼.
"...예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아무도 듣지 못한 말이었다.
*
카이락스는 본관 옥상으로 올라갔다. 출입 금지 구역이었지만 잠금장치는 2각 수준의 결계였다.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았다.
바람이 불었다. 학당 전경이 내려다보였다. 교사동, 기숙사, 연무장, 그리고 멀리 — 월식의 숲.
소매 안쪽의 문양이 빛났다. 벨제르. 카이락스는 이번에는 무시하지 않았다. 문양에 손가락을 대었다.
이상 없음. 잠입 성공. 보고 끝.
문양이 꺼졌다. 하지만 1초 뒤 다시 빛났다. 벨제르가 추가 보고를 요구하고 있었다. 군단장의 집요함.
카이락스는 문양을 눌렀다. 꺼졌다. 다시 빛났다.
...귀찮군.
한 번 더 눌렀다. 이번에는 미세한 허무의 파동을 섞었다. 벨제르가 반나절 정도 연락을 못 할 것이다.
카이락스는 월식의 숲을 보았다. 어두운 숲. 학당 부지 안에 있지만 출입이 금지된 구역. 그 안에서 — 무언가가 숨을 쉬고 있었다. 미약하지만, 익숙한 기운.
심연의 파편.
이 학당에 심연의 것이 있다. 결계를 깨뜨린 것과 연관이 있는지, 다른 무언가가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연무장 쪽에서 종이 울렸다. 오후 모의전 소집.
카이락스는 옥상 난간에서 손을 뗐다.
모의전이라. F급끼리 싸우는 것을 구경하는 일이 되겠군.
하지만 — 월식의 숲을 내려다보던 눈이 좁아졌다. 파편의 맥동이 어젯밤보다 강해져 있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깨어나고 있었다.
서두를 필요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