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나 때문에 싸울 필요까진 없잖아
3월 17일 화요일, 오전 8시 51분.
교실 뒤편 콘센트 자리가 오늘따라 사람이 많았다.
자판기 옆에 멀티탭 하나가 박혀 있었다. 교실 뒷벽 기준으로 오른쪽 구석에 있는 그 자리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충전 명당이었다. 등교해서 자리 잡기 전에 먼저 가방 전선을 뽑아서 꽂아두면 종례 때까지 풀충전 가능한 자리. 아침마다 누가 먼저 꽂느냐를 두고 은근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자리가 두 개인데 세 명이 노리는 날이면 눈치싸움이 조용하게 과열됐다. 직접 티를 내지 않아서 모르는 사람은 그냥 지나쳤다.
오늘은 윤시하가 조금 일찍 왔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냥 오늘따라 집에서 빨리 나와졌다. 덕분에 복도가 아직 한산한 시간에 교실 문을 열었다.
교실에 사람이 몇 없었다.
가방을 자리에 내려놓으면서 핸드폰을 꺼냈다. 배터리가 31퍼센트였다. 충전 케이블이 가방 안에 있었다. 뒤 콘센트 자리로 가보니 아직 비어 있었다. 운이 좋은 날이었다.
케이블을 꽂으면서 자리를 잡으려는데, 교실 문이 열렸다.
김하늘이었다.
교복이 칼같이 정돈되어 있었다. 가방은 한쪽 어깨에 모양 좋게 걸려 있었다. 들어오면서 교실을 한 번 쭉 훑다가 윤시하를 봤다. 그리고 콘센트 자리를 봤다. 윤시하 핸드폰 케이블이 꽂혀 있는 것.
"아, 오늘 일찍 왔네."
"응."
"거기 자리 좋지." 김하늘이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도 노리고 있었는데."
"필요해요?"
"아니." 웃으면서 말했다. "그냥."
김하늘이 자기 자리로 가면서 가방 안에서 보조 배터리를 꺼냈다. 미리 챙겨 온 거였다. 부드럽게 자리를 내줬다는 표정도 없이, 그냥 원래부터 대안이 있었다는 것처럼.
윤시하는 그걸 봤다.
뭔가를 준비해 두는 사람이었다. 콘센트 자리를 못 잡을 경우까지 미리 계산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보조 배터리를 들고 다니는 것인지는 몰랐다. 어느 쪽이든 자연스러웠다.
아이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8시 59분이 되자 교실이 거의 차기 시작했다. 담임이 들어오기 직전, 강수현이 들어왔다. 교복 상태는 오늘도 비슷했다. 단추 하나가 풀려 있었다. 가방을 자기 자리에 내려놓으면서 교실 뒤 콘센트 쪽을 봤다.
윤시하 핸드폰 케이블이 꽂혀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방에서 교과서를 꺼내 책상 위에 얹으면서 앉았다. 그냥 앉아서 앞을 봤다.
잠깐이지만 콘센트 자리를 봤다는 건 윤시하가 포착했다. 강수현도 원래 그 자리를 쓰는 편인 것 같았다. 그런데 꽂혀 있으니까 그냥 넘긴 거겠지.
담임이 들어왔다.
"자, 조용히."
오전 수업이 시작됐다.
두 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었다.
강수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뒤로 걸어왔다. 콘센트 자리 쪽이었다. 옆에 서더니 윤시하 핸드폰 케이블 옆에 자기 케이블을 끼웠다. 멀티탭 자리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윤시하 거, 하나는 비어 있던 자리였다.
아무 말도 없이 꽂고 다시 자기 자리로 갔다.
윤시하는 그걸 봤다.
케이블을 꽂는 순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먼저 온 사람이 임자인 것도 아니었다. 두 자리가 있으니까 같이 쓰면 됐다. 그냥 그게 다였다.
그런데 교실 오른쪽 쪽에서 이수빈이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이수빈이 바로 옆 김하늘한테 팔꿈치를 건드렸다. 김하늘이 봤다. 그리고 다시 교과서로 시선을 내렸다.
박지훈이 윤시하 자리로 슬쩍 왔다.
목소리를 낮추면서.
"야, 저거 알아?"
"뭘."
"강수현이 저 자리 항상 혼자 쓰거든."
"멀티탭 두 자리인데?"
"아니, 그게 아니라." 박지훈이 더 낮게 말했다. "원래 저기 다른 애들이 먼저 꽂고 있으면 강수현이 오면 알아서 빼. 그냥 눈치껏."
윤시하가 콘센트 쪽을 봤다.
케이블 두 개가 나란히 꽂혀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오늘은 안 그랬는데."
"그러니까." 박지훈이 잠깐 뭔가 생각하는 표정을 했다가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세 번째 교시가 끝나고 점심이었다.
오늘 급식은 카레였다. 향이 강했다. 계단을 내려가는데도 벌써 냄새가 올라왔다. 줄을 서면서 박지훈이 옆에 있었다.
"오늘 카레다."
"알아."
"카레 좋아해?"
"나쁘지 않아."
줄이 앞으로 움직이면서 급식판을 받았다. 카레를 국자로 떠주는 선생님이 조금 넉넉하게 퍼줬다. 빵도 하나 있었다. 카레 냄새가 급식실 전체에 가득했다.
자리를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박지훈 옆에 앉았다.
카레가 빵과 함께 나왔다. 식판 위에 카레 향이 올라왔다. 노란 소스 안에 감자랑 당근이 보였다. 국 대신 미역국이 함께 나왔다.
점심을 먹는 동안, 뒤에서 대화 소리가 들렸다.
"어제 걔네 달빛 편의점에 같이 있었다며?"
"나도 들었어. 전학생이랑 강수현이랑 하늘이랑."
"세 명이 다 같이?"
"같이라기보다 우연히 겹쳤다고 하던데. 근데 강수현이 뭐 줬다고도 하고."
"진짜로?"
박지훈이 윤시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썹을 올리면서.
"들려?"
"들려."
"빠르다, 소문."
윤시하는 카레를 한 숟가락 먹었다. 조금 달콤하고 조금 매콤한 학교 급식 카레의 맛이었다.
뒤에서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하늘이가 걔 챙기는 거야, 아니면 그냥 아는 척하는 거야?"
"모르지. 근데 강수현이 뭘 주는 건 진짜 처음 들어봐."
"전학생이 뭔 재주가 있는 거 아니야?"
박지훈이 빵을 뜯으면서 낮게 말했다.
"야, 너 지금 유명해지는 중이야."
"알아."
"좋은 건 아닐 수 있어."
"왜."
"강수현이랑 엮이는 건 반에서 눈에 띄는 거거든. 그쪽으로. 그리고 하늘이랑 엮이는 건 또 다른 쪽으로 눈에 띄는 거고. 동시에 둘 다면." 박지훈이 카레를 먹으면서 말했다. "뭔가 생기기 시작하는 타이밍이 지금이야."
윤시하가 박지훈을 봤다.
"경험해봤어?"
"아니. 관찰은 많이 했지." 박지훈이 카레 빵을 한 입 뜯으면서 말했다. "우리 반만 봐도 1학기에 한 번씩은 있거든. 누군가를 두고 은근하게 신경전이 생기는 게. 보통은 누군가 한 명한테 여러 명이 붙는 구조인데, 이번엔 거꾸로야. 한 명이 여럿한테 동시에 눈에 들어온 거잖아."
"그게 뭐가 문제야."
"문제는 아닌데." 박지훈이 생각하는 표정을 하면서 국을 떴다. "피곤해진다는 거지. 조용히 있고 싶으면 이미 늦었고."
윤시하는 카레를 다 먹고 빵을 집었다.
"내가 뭘 한 건 없어."
"알아. 그게 더 신기한 거야."
네 번째 교시가 수학이었는데, 자습이 됐다. 선생님이 프린트를 돌리고 풀어오라고 했다.
교실이 일제히 연필 소리로 채워졌다. 문제를 푸는 사람, 보는 척하면서 딴짓하는 사람, 옆 사람이랑 속닥거리는 사람. 자습 시간이 됐을 때만 나는 조용한 웅성거림이었다. 완전히 조용한 것도 아니고 완전히 시끄러운 것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 누군가 지우개를 떨어뜨리는 소리가 바닥에 울렸다가 사라졌다.
윤시하는 프린트를 펴고 첫 문제부터 봤다.
이차방정식 응용이었다. 어렵지는 않았다.
풀다가 옆에서 소리가 났다.
김하늘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콘센트 쪽으로 걸어갔다. 보조 배터리가 다 된 것 같았다. 멀티탭을 봤다. 아직 케이블 두 개가 꽂혀 있었다. 윤시하 거, 강수현 거. 자리가 없었다.
김하늘이 잠깐 멈췄다.
그냥 돌아오려는 것 같았다.
그때 강수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콘센트 쪽으로 걸어와서 자기 케이블을 뽑았다.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배터리가 충분했던 것 같았다. 케이블을 뽑아서 가방 안에 넣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하늘이 그 자리에 자기 케이블을 꽂으면서 윤시하 쪽을 한 번 봤다.
뭔가 말하려는 것 같은 눈이었다가, 그냥 자리로 돌아갔다.
교실 구석에서 그 장면을 본 이수빈이 핸드폰을 꺼내서 뭔가를 빠르게 눌렀다.
다섯 번째 교시가 끝나고 종례였다.
담임이 이번 주 공지를 빠르게 읽었다. 다음 주 화요일 보건 교육, 수요일 급식 메뉴 변경, 목요일 청소 구역 재배정. 그게 전부였다.
"이상. 해산."
교실이 한꺼번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방을 싸면서 이수빈이 김하늘 옆에 붙어서 뭔가 말했다. 목소리가 작아서 들리지 않았다. 김하늘이 들으면서 프린트를 가방 안에 넣었다. 딱히 표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로.
이수빈이 윤시하를 한 번 봤다가 고개를 돌렸다.
박지훈이 가방을 메면서 윤시하 옆에 섰다.
"같이 나가자."
복도로 나왔다. 하교 인파가 계단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의자 끌리는 소리, 자물쇠 잠그는 소리, 복도에서 이름 부르는 소리들이 한꺼번에 섞였다. 창밖으로 오늘 하늘이 회색빛이었다. 아침보다 구름이 더 짙어진 것 같았다.
계단 앞에서 강수현과 마주쳤다. 좁은 계단 입구였다. 자연스럽게 흐름이 겹쳤다.
강수현이 먼저였다. 윤시하가 뒤따라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박지훈이 옆에 있었다.
계단 중간쯤에서, 앞에 있던 1학년 두 명이 멈췄다. 강수현을 보고 비키려는 것 같았다. 그런데 계단이 좁아서 비키다가 오히려 흐름이 막혔다.
강수현이 잠깐 멈췄다.
아이들이 긴장했다.
윤시하가 그냥 말했다.
"거기서 비키면 더 좁아지는데."
1학년 둘이 윤시하를 봤다. 강수현을 봤다. 강수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옆으로 한 발짝 비켜서서 1학년 아이들이 먼저 내려가도록 공간을 만들었다.
1학년들이 빠르게 내려갔다.
흐름이 다시 풀렸다.
강수현이 내려가면서 윤시하 쪽을 한 번 봤다. 무표정이었다. 시선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박지훈이 뒤에서 낮게 말했다.
"야, 너 방금 강수현한테 간접적으로 말한 거 알아?"
"아니야."
"1학년한테 한 말이 강수현한테도 들렸거든. 거기서 비키면 더 좁아진다고."
윤시하는 계단을 내려가면서 생각했다. 그 말이 강수현한테 한 것은 아니었다. 1학년 아이들이 괜히 긴장해서 더 어색하게 만들고 있어서 한 말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맞는 말이 됐지만.
교문을 나왔다.
오늘 날씨가 조금 흐렸다. 구름이 꼈지만 비가 올 것 같진 않았다.
뒤에서 이수빈 목소리가 들렸다.
"야, 하늘아. 저 애 좀 특이하지 않아?"
"왜."
"오늘 수학 시간에 강수현이 케이블 뽑아줬잖아. 윤시하 때문은 아닌데 자기 때문처럼 된 거잖아."
"그게 왜."
"하늘이 네가 불편한 거 아니야? 강수현이 그 애한테는 이상하게 신경을 쓰는 것 같아서."
김하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 거 아닌데."
"진짜로?"
"응."
짧고 조용했다. 대화가 거기서 끊기는 것 같았다. 이수빈이 더 말하지 않았다.
윤시하는 걸으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박지훈이 옆에서 윤시하를 살짝 봤다.
"들렸지?"
"들렸어."
"어떻게 생각해."
윤시하는 잠깐 생각했다.
"나 때문에 싸울 필요까진 없잖아."
박지훈이 그 말을 듣고 잠깐 아무 말도 안 하다가 멈췄다.
"야."
"응."
"너 지금 인기 많은 게 아니라 위험한 거야."
윤시하가 봤다.
박지훈이 진지하지도 않고 웃는 것도 아닌, 딱 중간 어딘가의 표정으로 말했다.
"둘 다 너한테 신경 쓰이기 시작한 거야. 강수현도 그렇고 하늘이도 그렇고. 그게 좋은 신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는데, 확실한 건."
"확실한 건."
"지금부터 학교에서 네 이름이 같이 불릴 거야. 둘이랑."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흐린 하늘 아래 연서동 오후가 펼쳐져 있었다. 달빛 편의점 간판이 오늘은 구름 탓에 더 밝게 보였다. 언덕 왼쪽 담장 너머 연서공원에서 비둘기 소리가 들렸다. 뭔가를 쪼는 소리 같았다.
윤시하는 오늘 편의점에 들르지 않기로 했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조금 더 걸어가고 싶었다. 언덕 끝까지 내려가서 학원가 골목을 지나 집으로 가는 길. 그 길을 오늘은 천천히 걷고 싶었다.
언덕 아래 학원가에서 치즈 냄새가 올라왔다. 피자 집인지 분식집인지. 어느 집이든 저녁 준비를 시작한 것 같았다.
박지훈 말이 맞는 것 같았다.
틀렸으면 하는 건 아니었다. 그냥, 맞는 것 같았다.
강수현이 오늘 콘센트 자리를 비켜줬다. 비켜준 게 아닐 수도 있었다. 배터리가 충분해서 뽑은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타이밍이 딱 그 순간이었다. 김하늘이 케이블을 들고 서 있던 그 순간.
의도한 거냐 아니냐는 모르는 거였다.
윤시하는 그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오늘 있었던 일들이 그랬다. 콘센트 자리 하나를 두고 세 사람 사이에서 아무 말 없이 작은 일들이 일어났고, 아무도 직접적으로 뭘 한 것도 아닌데 교실 안에서 그게 눈에 들어왔고, 이수빈이 그걸 봤고, 소문이 됐다.
학교가 그런 곳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도 뭔가가 되는 곳.
핸드폰이 울렸다. 반 카톡방이었다. 이수빈이 올린 사진 한 장. 오늘 교실 뒤 콘센트에 나란히 꽂혀 있던 케이블 두 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