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달빛 편의점, 세 사람
3월 12일 목요일, 점심시간.
급식실로 내려가는 복도에서 소리가 먼저 멈췄다.
강수현이 2학년 복도 끝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교복 단추 하나가 풀려 있었다. 가방은 한쪽 어깨에만 걸쳐 있었다. 딱히 빠르게 걷는 것도 아니었는데 앞에 있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양옆으로 비켜났다. 복도 가운데 통로가 스스로 열리는 것 같았다. 강수현은 그 가운데를 그냥 걸었다. 눈을 내리깔고, 별 관심 없는 표정으로. 운동화 밑창이 리놀륨 바닥을 밟는 소리만 들렸다. 다른 소리들은 전부 잠깐 자리를 비켜준 것처럼.
윤시하는 그 장면을 두 번째 목격했다.
복도가 열리고, 강수현이 지나가고, 다시 닫히는 것.
"저거 매일이야."
박지훈이 옆에서 중얼거렸다.
"급식 줄도 맨 앞으로 가요?"
"자리 잡는 거까진 아닌데. 뭐, 줄 서는 거 자체를 안 하는 편이지. 늦게 오거나 일찍 오거나."
강수현이 복도 끝 계단 쪽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이 다시 자기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음이 돌아왔다.
윤시하는 급식실로 내려갔다.
오늘 메뉴는 제육볶음이었다. 고추장 냄새가 문을 열기 전부터 새어 나왔다. 쟁반을 들고 줄에 섰다. 앞에 박지훈, 뒤에 이름 모르는 남자애. 국을 받으면서 힐끗 옆을 봤다. 강수현이 저쪽 구석 자리에 혼자 앉아 있었다. 밥을 먹고 있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그냥 먹고 있었다.
급식판이 찰그락거렸다. 숟가락이 식판 모서리에 닿는 소리들. 누군가 의자를 끌어당기는 소리. 급식실 특유의 밥과 국 냄새가 섞여서 공기 전체가 두꺼웠다.
혼자 먹는 것에 아무 감흥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김하늘은 이수빈이랑 다른 반 친구들이랑 섞여서 대각선 쪽 테이블에 앉았다. 네다섯 명이 한꺼번에 웃는 소리가 났다. 김하늘이 한 말에 다들 반응하는 식이었다. 자연스럽게 무리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윤시하는 박지훈 옆에 앉았다.
"걔네 저기 맨날 저래?"
"김하늘이? 응. 뭐 쟤가 있으면 자연히 그렇게 돼. 재밌거든, 하늘이가. 말도 잘하고."
"강수현은 맨날 혼자야?"
"혼자 먹고 싶어서 혼자 먹는 거야. 같이 먹자는 애들도 가끔 있는데 거절하거든." 박지훈이 제육볶음을 한 젓가락 들면서 말했다. "그리고 솔직히 강수현이랑 밥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돼. 뭔가 긴장돼서."
윤시하는 국을 마셨다.
김치찌개였다. 뜨겁고 짭쪼름했다.
"너는 안 긴장해?"
박지훈이 물었다.
"강수현한테?"
"응."
"처음엔 좀."
"지금은?"
윤시하가 제육볶음을 한 입 먹으면서 생각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은 그렇게 긴장되지 않았다. 첫날 복도에서의 그 눈이 생각났다. 무섭다고 하기엔 뭔가 달랐다. 표정이 없는 거랑 차가운 거랑 다른 것처럼.
"잘 모르겠어."
"그게 제일 이상한 반응이다." 박지훈이 밥을 먹으면서 중얼거렸다. "보통은 무섭거나 아니면 없는 척 무시하거나 둘 중 하나거든."
점심을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강수현이 먼저 나가고 있었다. 쟁반을 반납하면서 나가는 사람들 틈에서 강수현은 딱히 서두르지 않았다. 그냥 그 흐름 안에 있었다.
입구 쪽에서 잠깐 멈췄다.
윤시하 쪽을 봤다. 아주 잠깐이었다. 1초도 안 됐다. 그리고 나갔다.
박지훈이 그걸 봤다.
"야."
"응."
"쟤 지금 너 봤어?"
"그랬나."
"그랬어. 분명히." 박지훈이 잠깐 뭔가를 생각하는 표정을 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모르겠다. 그냥 지나간 걸 수도 있어."
오후 수업이 끝났다.
하교 시간이 됐다. 목요일이었다. 학원이 없는 날이었다.
윤시하는 가방을 챙기면서 오늘 하교 후를 생각했다. 특별히 계획이 없었다. 집까지 걸어가거나, 아니면 언덕 중간 편의점에 들르거나. 생각해보니 달빛 편의점에 나흘 연속으로 들르고 있었다. 딱히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 동선 안에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들르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쩌다 보면 뭔가 사게 되고, 앉게 되고, 그냥 잠깐 있다가 나오게 됐다. 집과 학교 사이 어딘가에 잠깐 멈출 수 있는 중간 지점이 생긴 것 같았다.
복도로 나왔다.
계단 쪽에서 김하늘과 마주쳤다.
"같이 가?"
"나 잠깐 편의점 들를 건데."
"나도 그쪽이야."
두 사람이 나란히 걸었다. 오늘따라 교문 밖이 시끄러웠다. 선생님 한 명이 복도 청소 구역 가지고 반 아이들이랑 실랑이하는 소리가 났다. 3월 둘째 주를 지나면서 학교 분위기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이었다. 첫 주의 긴장이 풀리면서 사람들이 각자의 속도로 돌아오는 것.
언덕을 내려가면서 김하늘이 말했다.
"어제 편의점에서 한 말, 아직도 생각나."
"어떤 거요."
"피곤해 보인다고 한 거. 그 말."
윤시하는 언덕 경사를 보면서 걸었다. 언덕 왼쪽으로 담장이 이어졌다. 담 너머로 연서공원 나무 끄트머리가 보였다. 아직 3월이라 잎이 없었다. 가지들이 하늘 쪽으로 뻗어 있었다.
대답이 필요한 말이 아닌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다.
"나쁜 뜻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어."
"그랬으면 좋겠어요."
"근데." 김하늘이 잠깐 멈췄다가 다시 걸으면서 말했다. "그거 좀 더 얘기해줘도 돼?"
"어떤 부분요."
"언제 피곤해 보였어."
윤시하가 생각했다. 급식실에서 이수빈이 반 소문을 늘어놓을 때 김하늘이 맞장구를 치면서 눈은 다른 데 있던 것. 그게 피곤해 보인다기보다, 정확히는 다른 걸 하면서 또 다른 걸 동시에 하는 것처럼 보였다.
"웃으면서 다른 걸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동시에."
김하늘이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피곤하지 않으면 이상한 거잖아요."
"그렇긴 한데." 김하늘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그걸 누가 봐주는 건 처음이라서."
달빛 편의점 간판이 보였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냉장고 소리가 났다. 오늘도 점원이 카운터 안에 있었다. 윤시하가 들어오자 한 번 봤다가 내려다봤다. 이제 얼굴을 아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이 각자 고를 것을 고르기 시작했다. 윤시하는 음료 코너, 김하늘은 과자 쪽으로 갔다.
그때 편의점 문이 다시 열렸다.
들어오는 사람을 봤다.
강수현이었다.
교복 상의를 벗고 체육복 반팔 차림이었다. 손에 동전 몇 개를 쥐고 있었다. 들어오다가 계산대 앞에 선 두 사람을 봤다. 윤시하를 봤다. 김하늘을 봤다.
멈추지 않았다.
그냥 음료 코너로 걸어갔다.
김하늘이 윤시하 쪽으로 시선을 보내면서 살짝 눈썹을 올렸다. 뭔가를 말하는 눈이었다. 윤시하는 못 본 척 음료를 하나 집었다.
세 사람이 계산대 앞에 섰다. 자연스럽게 윤시하가 먼저였고, 그 다음 김하늘, 그 다음 강수현이었다.
강수현이 쥔 동전이 계산대 위에 놓였다. 에너지 드링크 하나였다. 점원이 동전을 세면서 자연스럽게 잔돈을 돌려줬다.
세 사람이 동시에 계산을 끝내고 나서, 어색한 공기가 잠깐 생겼다.
김하늘이 먼저 말했다.
"뭐 사줄까, 강수현?"
강수현이 김하늘을 봤다. 대답하지 않았다.
"어, 아니면 나 뭐 사줄 수도 있는데."
강수현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표정도 바뀌지 않았다. 그 침묵이 거부라기보다 관심이 없는 쪽이었다.
김하늘이 가볍게 웃었다.
가게 안 작은 테이블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구석에, 하나는 창가에. 윤시하가 창가 쪽에 앉았다. 김하늘이 당연하다는 듯 맞은편에 앉았다.
강수현은 서 있었다.
편의점 안에서 서서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는 것이었다. 카운터 근처 벽에 기댄 채로. 가려는 것도 아니고 앉으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거기 있었다. 점원이 잠깐 그쪽을 봤다가 아무것도 아닌 듯 다시 계산대 앞을 정리했다.
냉장고가 윙윙거렸다. 창 너머로 언덕길을 오르는 교복 차림의 아이들이 몇 보였다. 오늘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하교 인파가 조금 더 느긋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김하늘이 과자 봉지를 열면서 윤시하한테 말했다. 어제 본 인스타 게시물 얘기였다. 연서동 근처에 새로 생긴 카페 얘기. 윤시하는 듣다가 음료를 마셨다.
강수현이 에너지 드링크를 반쯤 마신 채 테이블 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윤시하 앞에 뭔가를 툭 내려놨다.
삼각김밥이었다. 참치마요.
윤시하가 봤다.
강수현이 자기 에너지 드링크를 들면서 말했다.
"배고파 보여서."
그리고 잠깐 멈췄다.
"아니. 그냥 잘못 샀어."
말이 이상했다. 배고파 보여서 샀다고 했다가 잘못 샀다고 했으니까. 두 개가 동시에 맞을 수는 없었다. 강수현은 그걸 의식하는 것 같지 않은 표정으로 에너지 드링크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살짝 고개를 다른 데 돌리면서. 귀 언저리가 조금 붉어진 것 같기도 했다. 편의점 조명 탓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윤시하가 삼각김밥을 집었다.
"고마워."
강수현이 대답하지 않았다.
김하늘이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과자를 집으려다 멈춘 채로. 잠깐 강수현을 봤다가, 윤시하를 봤다가, 다시 과자로 시선을 내렸다.
"나도 뭐 사줄까?"
목소리가 아까보다 한 톤 더 밝았다.
강수현이 김하늘을 봤다. 무표정이었다.
"됐어."
세 글자였다.
김하늘이 다시 웃었다. 이번엔 조금 다른 웃음이었다. 아까 편의점 들어오기 전 언덕에서 본 웃음에 가까웠다. 연습한 웃음이 아닌, 뭔가가 재밌는 쪽의 웃음.
"됐어는 거절이야, 아니면 됐다고?"
강수현이 대답하지 않았다.
김하늘이 잠깐 더 기다렸다가 웃음을 거뒀다.
편의점 안이 조금 묘했다. 윤시하 기준으로 오른쪽엔 김하늘이 앉아 있고, 테이블 모서리 옆엔 강수현이 서 있었다. 세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는 건 처음이었다. 처음이 달빛 편의점이었다.
점원이 카운터에서 일어나 창고 쪽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박스 하나를 끌고 나왔다. 음료 보충인 것 같았다. 세 사람 옆을 지나치면서 한 번 봤다. 테이블 위에 삼각김밥 포장지, 과자 봉지 반쪽, 음료 두 개. 강수현이 벽에 기댄 것. 보고 다시 창고 쪽으로 갔다. 나중에 나오면서 아까 멈췄다가 중얼거렸다.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였다.
"오늘부터 바빠지겠네."
강수현이 에너지 드링크 캔을 다 비우면서 쓰레기통에 넣었다.
"간다."
그게 다였다.
문이 열리고 닫혔다. 강수현이 나갔다.
편의점이 다시 냉장고 소리로 채워졌다.
김하늘이 과자를 먹으면서 창밖을 봤다. 강수현이 언덕을 올라가고 있었다. 등이 보였다.
"저 애 신기하지 않아?"
"어떤 게요."
"모르는 사이한테 삼각김밥을 주잖아. 그러면서 잘못 샀다고 하고."
"모르는 사이는 아니잖아요. 복도에서 부딪혔으니까."
"그게 아는 사이야?" 김하늘이 윤시하를 봤다. 눈이 조금 달랐다. "일반적으로는."
"일반적이진 않은 것 같아요, 저도."
삼각김밥 포장지를 뜯었다. 참치마요 냄새가 올라왔다. 한 입 베어 물면서 창밖을 봤다. 강수현은 이미 언덕 위로 사라지고 없었다.
김하늘이 과자 봉지를 접으면서 말했다.
"나도 뭐 사줘도 됐는데."
"지금요?"
"아니, 강수현한테. 아까. 둘이 있는 거 아니었으니까."
윤시하가 봤다. 김하늘은 테이블 위 과자 봉지를 만지작거리면서 창밖을 보고 있었다. 강수현이 이미 없는 창밖을.
"다음에 기회 있을 거예요."
"그렇겠지." 김하늘이 일어서면서 웃었다. "오늘부터 이 편의점이 좀 달라질 것 같은 느낌이야."
점원이 창고에서 나오면서 중얼거렸다. 아까 강수현이 나가고 나서 카운터 안에 혼자 앉았을 때도 중얼거렸던 것 같은데, 이번에도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였다.
"오늘부터 바빠지겠네."
김하늘이 과자 봉지를 챙기면서 나갔다.
윤시하는 삼각김밥을 다 먹고 자리에 잠깐 더 앉아 있었다.
윤시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쓰레기를 버리고 편의점을 나왔다. 바깥 공기가 들어왔다. 3월 중순의 저녁 바람이었다. 낮보다 차갑고 밤보다는 아직 따뜻한.
편의점 문이 닫히면서 냉장고 소리가 끊겼다. 대신 언덕 아래 학원가에서 올라오는 소리들이 들어왔다.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 분식집 간판이 찰칵 켜지는 소리, 누군가 전화 통화를 하며 걸어가는 발소리.
세 사람이 처음으로 같은 공간에 있었다.
일부러 그렇게 된 것도 아니었다. 강수현이 들어온 건 타이밍이었고, 김하늘이 같이 온 건 방향이 같아서였다. 그런데 그 타이밍과 방향이 겹쳐서, 달빛 편의점 안에 세 사람이 동시에 있는 일이 생겼다.
삼각김밥 하나가 테이블에 놓였다가 없어졌고, 에너지 드링크 캔이 쓰레기통에 들어갔고, 과자 봉지가 하나 비워졌다.
그게 전부였다.
그게 전부인데 뭔가 있었다.
윤시하는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연서동 저녁이 조금씩 불을 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