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내 얘기면 내가 정리할게
3월 20일 금요일, 오전 8시 48분.
교실 분위기가 어제와 달랐다.
윤시하가 자리에 앉으면서 그걸 느꼈다. 딱히 소란스럽거나 시끄러운 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뭔가 조심하는 것 같은 분위기. 지나가다가 슬쩍 보는 눈들. 말을 하다가 멈추는 것 같은 타이밍들. 계속 지켜보고 있는 눈이 두 개, 세 개.
어제 있었던 일이 어딘가에서 돌고 있다는 걸 느끼는 데 30초도 안 걸렸다.
박지훈이 빠르게 옆에 붙었다.
"야, 알아?"
"대충."
"카톡방에 올라왔어." 목소리를 낮추면서. "어제 강수현이 너한테 우산 줬다고. 그리고 하늘이가 같이 쓰자고 했는데 네가 거절했다고."
윤시하는 가방을 정리하면서 교실 안을 한 번 훑었다.
이수빈이 교실 오른쪽 구석에서 다른 애 두 명이랑 뭔가를 보고 있었다. 핸드폰이었다. 김하늘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수현은 창가 자리에 이미 앉아서 앞을 보고 있었다. 어제와 같은 자리, 같은 자세였다.
"어느 정도 돌았어?"
"반 카톡방이랑 2학년 익명 게시판. 글은 없는데 카톡 스크린샷이."
"스크린샷."
"어제 처마에서 누가 찍은 것 같더라고. 강수현이 우산 던지는 장면은 없고, 네가 파란 우산 들고 서 있는 거랑 하늘이가 우산 기울이는 거 찍힌 거."
윤시하는 잠깐 생각했다.
사진이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텍스트 소문은 흐릿하게 퍼지는데, 사진이 붙으면 구체성이 생겼다. 누가 어디 서 있었는지, 우산이 어떤 색이었는지까지 들어오니까.
"하늘이는 알아?"
"모르는 척하고 있는 건지 진짜 모르는 건지." 박지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직 안 왔으니까."
교실 문이 열렸다.
김하늘이었다.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교실을 봤다. 윤시하 쪽을 봤다. 1초. 그리고 이수빈 쪽을 봤다. 0.5초. 이수빈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김하늘이 자기 자리로 걸어왔다.
"어제 잘 들어갔어?"
"응."
"비 많이 맞았어?"
"아니, 우산 있어서."
"다행이다." 가방을 내려놓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오늘 날씨 괜찮네."
평범한 아침 인사였다. 어제 교문 앞 장면에 대해 아무것도 없었다. 이수빈이 뭔가를 전달했을 텐데 그 내용이 뭔지, 김하늘이 그걸 어떻게 소화했는지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담임이 들어왔다.
"자, 오늘 금요일. 이번 주 마지막이야. 힘내자."
박수가 두 개 났다. 웃음이 몇 개 났다.
오전 수업이 시작됐다.
두 번째 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었다.
복도에서 윤시하가 물을 마시러 정수기 쪽으로 가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야, 전학생."
모르는 목소리였다.
돌아봤다. 옆 반인 것 같은 남자애 두 명이었다. 한 명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딱히 불량해 보이는 건 아닌데, 말 거는 방식이 친근한 쪽이 아니었다. 복도 쪽 창에 기대서 팔짱을 끼고 있는 게 여유를 부리는 자세였다.
"강수현이랑 친해? 우산 받은 거 맞아?"
"왜요."
"궁금해서. 걔 남한테 뭘 잘 안 주거든."
"그냥 우산이에요."
"그냥 우산 아닌 건 알지 않아?"
두 번째 남자애가 끼어들었다. 첫 번째보다 목소리가 조금 더 가벼운 쪽이었다. "하늘이한테도 같이 쓰기 거절한 거 맞아? 둘 다한테? 진짜로?"
주변 복도에서 지나가던 몇 명이 발을 조금 늦추는 게 느껴졌다. 들리는 것에 관심이 생긴 것 같았다.
윤시하는 정수기 버튼을 눌렀다. 물이 나왔다. 마시면서 두 사람을 봤다.
"그 이야기가 왜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한테 관심사예요."
"그야."
"둘 다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 강수현은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이고, 하늘이는 잘 보여야 하는 사람이고." 첫 번째 남자애가 말했다. "그 두 명이 같은 날 같은 전학생한테 움직였으면 얘기가 될 수밖에 없지."
"그게 내 얘기면 내가 정리할게요."
두 남자애가 잠깐 멈췄다.
"괜히 둘 건들지 말고."
복도가 조용해지는 게 느껴졌다. 지나가다 멈춘 몇 명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윤시하는 그쪽을 따로 보지 않았다.
마지막 문장을 덧붙이면서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복도 저쪽에서 강수현이 걸어오고 있었다.
딱 그 타이밍이었다.
강수현이 걸어오면서 두 남자애를 봤다. 윤시하를 봤다. 상황을 읽는 데 1초도 안 걸리는 것 같았다. 두 남자애의 자세, 윤시하의 자리, 주변 아이들이 멈춰 서 있는 것.
두 남자애가 강수현을 보자 움찔했다. 한 명이 먼저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뗐다. 다른 한 명도 뒤따라갔다. 말이 없었다. 그냥 갔다.
강수현이 정수기 앞에서 멈췄다.
물을 마시려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그냥 거기 섰다.
"뭐라 했어."
질문인데 물음표가 없는 톤이었다.
"별 거 아니에요."
"들었는데."
윤시하가 강수현을 봤다. 강수현은 두 남자애가 사라진 복도 쪽을 보고 있었다. 표정은 없었다. 그런데 뭔가 꽉 쥔 것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손이 가방 끈을 잡고 있었다. 조금 강하게.
"그냥 소문 궁금해서 물어본 거였어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강수현이 윤시하를 봤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잖아."
"내가 정리했어요. 괜찮아요."
잠깐 침묵이 있었다.
강수현이 정수기 버튼을 눌렀다. 물을 마셨다. 컵을 내려놓으면서 짧게 말했다.
"다음엔 그냥 불러."
그게 전부였다.
자기 교실 쪽으로 걸어갔다. 말이 더 없었다.
주변에서 멈춰 있던 아이들이 조용히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윤시하는 그 뒷모습을 잠깐 봤다.
다음엔 그냥 불러.
부르면 와준다는 말인지, 아니면 자기가 처리해줄 테니까 나서지 말라는 말인지. 어느 쪽으로도 해석이 됐다. 어느 쪽이든 뭔가를 하겠다는 말이기는 했다.
교실로 돌아왔다.
박지훈이 윤시하 자리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봤어. 복도에서."
"응."
"강수현이 뭐라 했어?"
"별 거 아니에요."
"그 말이 왜 복도에서 계속 나와."
자리에 앉으면서 교실 오른쪽을 봤다. 이수빈이 김하늘한테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김하늘이 들으면서 앞 칠판을 보고 있었다. 표정이 없었다.
그쪽에서도 복도 장면을 누가 봤을 가능성이 있었다.
세 번째 교시 종이 울렸다.
수업이 다시 시작됐다.
점심시간이 됐다.
급식실에서 밥을 받으면서 김하늘과 자연스럽게 줄이 겹쳤다. 김하늘이 먼저 말했다.
"오늘 오전에 복도에서 뭐 있었어?"
"이수빈한테 들었어요?"
"응." 쟁반을 들면서. "걱정돼서."
윤시하는 국을 받으면서 잠깐 생각했다.
"걱정할 정도는 아니에요."
"강수현이 나왔다는 것까지 들었어."
"내가 먼저 정리했어요. 강수현은 그냥 지나가다 본 거고."
김하늘이 걸으면서 윤시하를 봤다. 그 눈이 뭔가를 계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진짜로 궁금한 것 같기도 했다.
"강수현이 그냥 지나가다 보고 멈추는 건 아무한테나 안 해."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서요."
"네 입장에서?"
"응."
김하늘이 잠깐 더 보다가 자리를 찾아가면서 말했다.
"그래, 맞아."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긴 하지."
자리가 나뉘면서 대화가 끊겼다.
윤시하는 박지훈 옆에 앉아서 밥을 먹었다. 오늘 급식은 된장찌개랑 불고기였다. 된장 냄새가 진하게 올라왔다.
"야."
박지훈이 불고기를 집으면서 말했다.
"오늘 네가 복도에서 한 말 벌써 퍼졌어."
"뭐가."
"'내 얘기면 내가 정리할게. 괜히 둘 건들지 마.' 이거."
"다 들은 사람이 있었어?"
"복도가 좁아. 거기서 그 말 하면 다 들리지." 박지훈이 밥을 먹으면서 말했다. "근데 반응이 괜찮아. 무섭다는 반응이 아니라, 신기하다는 반응."
"신기해."
"강수현이 왔는데 안 무서워했고, 거기서 걔 편을 들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두 남자애 편을 들지도 않았으니까. 그냥 자기 얘기는 자기가 정리한다고 했잖아. 그게."
박지훈이 숟가락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재밌는 포지션이야, 네가."
점심을 다 먹고 교실로 돌아오는 길에, 계단에서 강수현과 다시 마주쳤다.
강수현이 먼저 봤다.
윤시하가 봤다.
둘이 같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강수현이 한 칸 앞이었다. 스쳐 지나치는 거리였다. 강수현이 계속 올라갔다. 지나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계단 중간에서 잠깐 멈췄다.
뒤돌아보지 않은 채로.
한 박자가 있었다.
발이 멈춰 있는 동안, 복도에서 누군가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소리들이 계속 있었는데 그 한 박자 동안만 강수현이 거기 있었다.
그리고 다시 올라갔다.
윤시하는 그 등을 봤다.
멈춘 게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냥 발이 멈춘 거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후 수업이 두 교시 더 있었다.
네 번째 교시는 사회였다. 선생님이 자료를 나눠주면서 조용히 읽으라고 했다. 교실이 잠잠해지면서 종이 넘기는 소리만 났다. 윤시하는 자료를 읽으면서 오전 일을 다시 생각했다.
복도에서 두 남자애한테 한 말이 어느 정도 퍼졌다고 박지훈이 말했다. 신기하다는 반응이 있다고도 했다. 강수현이 나타났는데 무서워하지 않고, 누구 편도 들지 않고, 내 얘기는 내가 정리한다고 했다는 것.
그게 어떻게 보일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윤시하는 자료를 계속 읽었다.
종례 종이 울렸다.
이번 주가 끝났다. 3월 셋째 주, 금요일.
가방을 싸면서 박지훈이 말했다.
"이번 주에 어제 오늘 합쳐서 너 이야기가 반에서 두 번 돌았어. 첫 주에 전학 오면 한 번 정도가 보통인데."
"알아."
"다음 주에 또 뭔가 생길 것 같다는 느낌이야."
"왜 그런 느낌이야."
박지훈이 가방을 메면서 생각하는 표정을 했다.
"강수현이 계단에서 멈춘 거. 그게 뭔가 이상해." 목소리를 낮추면서. "걔가 원래 딱히 관심 없는 사람한테는 그냥 지나쳐. 멈추는 거 자체가."
"그냥 발이 멈춘 거 아닐까."
"그럴 수도 있어. 근데 그걸 본 사람이 또 있어."
"이수빈이?"
"이수빈 포함해서 여러 명." 박지훈이 교실을 나가면서 말했다. "이수빈은 오늘 뭔가 계속 메모하는 것 같더라고. 핸드폰에."
윤시하는 언덕을 내려가는데 오늘은 맑았다. 어제 비가 온 뒤라 공기가 깨끗했다. 달빛 편의점 간판이 오후 햇살을 받고 있었다.
오늘은 들렀다.
생수 하나를 사면서 점원한테 말했다.
"어제 많이 바쁘셨어요?"
점원이 잠깐 봤다가 말했다.
"비 오면 다 들어오지."
"그렇죠."
생수를 받으면서 나왔다.
언덕 아래로 걸어가면서 생수 뚜껑을 열었다.
오늘 있었던 일들이 정리됐다. 소문이 생겼고, 복도에서 말을 정리했고, 강수현이 나타났고, 계단에서 멈췄고, 김하늘이 점심에 물어봤다.
아무것도 크게 한 건 없었다.
그런데 박지훈 말처럼, 뭔가 쌓이는 것 같았다. 작은 일들이 하나씩.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이 쌓이면 어느 순간 무게가 생기는 것처럼.
그게 좋은 건지 아닌 건지는 아직 몰랐다.
다음 주에 어떻게 될지도 몰랐다.
연서동 저녁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