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텅 빈 금고
집사가 사라졌다. 금고 열쇠와 함께.
남은 건 이중 장부 한 권과, 수입과 지출이 맞지 않는 숫자들의 잔해.
노인―관리인 토마스―의 증언은 짧았다. 집사 하인리히는 에스텔라가 체포된 직후 영지를 떠났다. 야반도주라기엔 너무 조용했고, 해고라기엔 누구의 명령도 없었다.
'증거 인멸 후 도주. 감사 시작 전에 빠지는 건 횡령범의 기본이지.'
새벽이었다. 집무실 바닥에 양초 세 개를 세워두고, 장부를 펼쳤다. 카일은 문 앞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잠을 자라고 했더니 「임무 중입니다」 한마디로 끝.
재무팀 시절의 습관이 되살아났다. 핵심만 추린다.
결정적 숫자 하나.
영주 생활비가 전체 지출의 60%를 차지하고 있었다. 보석, 드레스, 연회. 에스텔라의 기억이 일부를 확인해줬다. 이 여자가 사치를 한 건 맞다.
하지만 비공식 메모와 대조하니 이야기가 달라졌다. 영주 생활비로 기록된 금액 중 상당 부분이 에스텔라가 쓰지 않은 돈이었다. 집사가 영주의 사치를 방패 삼아 차액을 빼돌린 것이다.
빼돌린 금액을 역산했다. 3년간 금화 4,800 아우레우스.
집사 월급이 금화 5인 세상에서 그 960배. 개인이 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보내고 있었다는 뜻.
「토마스.」
관리인 노인이 문 앞에서 몸을 움츠렸다.
「겁먹지 마세요. 사람을 잃을 형편이 못 됩니다.」
「집사가 떠나기 전에,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한 적이 있습니까?」
「……창고입니다, 아가씨. 떠나시기 전날 밤, 지하 창고에서 무언가를 옮기셨습니다. 수레 두 대 분량.」
수레 두 대.
'바로 간다.'
「그 창고, 지금 갈 수 있습니까?」
「열쇠가…… 집사님이 가져가셨습니다.」
카일이 벽에서 등을 떼며 말했다.
「문을 부수면 됩니다.」
*
본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에스텔라의 기억에도 없는 곳이었다. 자기 집 지하실에 뭐가 있는지도 몰랐던 거야.
카일이 검 손잡이로 자물쇠를 한 번에 부쉈다. 녹슨 철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양초를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
먼지와 곰팡이 냄새. 벽을 따라 빈 선반이 줄지어 있었다. 와인 저장고였던 모양인데 한 병도 없다.
그런데.
창고 안쪽 바닥에 끌린 자국이 있었다. 무거운 것을 끌어서 옮긴 흔적. 먼지 사이로 선명한 직선 두 줄. 그 자국이 끝나는 지점에―
벽이 있었다.
「기사단장님. 이 벽 좀 봐주세요.」
카일이 다가와 벽을 살폈다. 군인의 눈이 나보다 먼저 이상을 잡아냈다.
「벽돌 색이 다릅니다. 나중에 쌓은 벽입니다.」
「부술 수 있습니까?」
카일의 표정이 '또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부수겠습니다.」
검을 뽑지 않았다. 맨주먹으로 벽돌을 쳤다. 두 번. 세 번. 벽돌이 우수수 무너졌다.
무너진 벽 뒤로 작은 공간이 드러났다. 양초를 들이밀었다.
빈 상자들.
나무 상자 열두 개. 전부 열려 있고, 전부 비어 있었다.
하지만 상자 안쪽에 흔적이 남아 있었다. 벨벳 깔개의 눌린 자국. 동그란 형태가 촘촘하게 반복되는 패턴.
「마력석이었습니다.」
카일이 상자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표준 마력석 운송 상자입니다. 군 보급에서 쓰는 규격. 상자 하나에 마력석 스무 개.」
열두 상자. 스무 개씩. 마력석 240개.
시세를 에스텔라의 기억에서 끌어냈다. 중간값으로 금화 7,200 아우레우스 이상. 장부에서 역산한 횡령액보다 많다. 장부에도 없는, 완전히 밖의 자산.
그때 카일이 상자를 뒤집었다.
바닥에 각인이 있었다.
카일의 손이 멈췄다.
그리고 상자를 바닥에 내던졌다. 나무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창고를 울렸다.
「군 보급품 관리 번호입니다.」
낮은 목소리였다. 평소의 무뚝뚝함이 아니었다. 뭔가를 억누르는 톤.
「……겨울 원정에서 동사자가 나왔습니다. 방한 물자가 부족해서.」
카일의 주먹이 떨리고 있었다.
「그 물자가 여기 있었다는 겁니까.」
처음이었다. 이 무뚝뚝한 군인의 목소리에 감정이 실린 것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카일의 분노가 정당했으니까.
그런데 그 순간, 카일의 손등이 보였다.
맨주먹으로 벽돌을 부순 손이었다. 피가 나고 있었다. 손등 전체에 벽돌 가루와 핏물이 섞여 있었는데, 이 사람은 그걸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내가 먼저 알아챘다.
「기사단장님, 손.」
카일이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피가 나는 걸 이제야 인식한 듯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군복 자락에 손을 닦았다.
「……상처는 아닙니다.」
상처는 아닙니다. 벽돌을 맨주먹으로 부수고 피가 나는데 상처가 아니라니. 이 사람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 건지.
나도 모르게 소매를 뜯어 그의 손에 감았다. 카일이 움찔했다. 손이 아파서가 아니라, 누군가 자기 상처를 신경 쓴다는 사실에 놀란 것 같았다.
「……뭘 하십니까.」
「지혈이요. 이 영지에서 쓸 수 있는 전력은 기사단장님 하나뿐인데, 손이 곪으면 곤란합니다.」
사실이었다.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그런데 카일이 나를 보는 눈이 달라져 있었다. 경계도, 불편함도 아닌. 뭐라고 해야 하나. 마치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처음 본 사람의 얼굴.
「당신은……」
카일이 말을 멈췄다.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그리고 시선을 돌렸다.
「……감사합니다.」
세 글자가 아니었다. 네 글자였다. 이 사람에게는 글자 하나가 더 나온 것도 변화였다.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왜? 합리적 판단이었잖아.
'……아, 이건 아닌데.'
서둘러 손을 뗐다. 카일도 고개를 돌렸다. 지하 창고의 어둠 속에서, 두 사람 다 정면을 피했다.
*
집무실로 돌아와 정보를 교차시켰다.
장부상 마력석 준비금의 수입은 있으나 지출이 없다. 지하에 장부 밖 마력석 240개가 있었고, 집사가 이를 반출하고 도주했다. 상자는 군 물자 규격.
「기사단장님. 마력석 240개를 혼자서 처분할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마력석은 제국의 전략 물자입니다. 50개 이상은 반드시 상단 또는 황실 인가가 필요합니다.」
집사 혼자서는 이 마력석을 처분할 수 없다. 반드시 큰 손이 뒤에 있어야 한다.
'……대공 레오폴트.'
카르테시아 영지를 노리는 남자. 에스텔라를 사형대에 세운 남자. 대공이 집사를 매수하여 자산을 미리 빼돌리고, 껍데기만 남은 영지를 삼키려 했다면. 모든 퍼즐이 맞아떨어진다.
이건 파산이 아니라 기획된 파산이다.
……이 몸의 전 주인에게 묘한 동정심이 들었다. 어리석긴 했지만, 이용당한 거야.
「이 내용을 모르간 경에게 보고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안 됩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빈 상자와 이중 장부만으로는 '집사의 단독 범행'으로 묻힐 수 있어요. 배후를 증명하려면 돈의 흐름을 따라가야 합니다.」
카일이 나를 보았다.
「당신은…… 이런 일을 전에도 한 적이 있습니까.」
「……꿈에서 배웠습니다.」
「꿈에서요.」
「네. 아주 길고, 아주 현실적인 꿈이었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숫자만 다루는 사람이었어요.」
거짓말은 아니잖아.
카일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
창밖으로 여명이 번지고 있었다.
밤새 장부를 뒤진 결과를 정리했다. 도둑이 들어온 집에서 제일 먼저 할 일은 자물쇠를 바꾸는 거다. 돈을 거두는 사람, 기록하는 사람, 보관하는 사람을 전부 분리해야 한다. 한 사람이 전부를 하면 하인리히가 반복된다.
「토마스. 현재 영지에 남아 있는 인원이 몇 명입니까?」
토마스가 손가락을 꼽았다. 한참을 꼽았다. 두 손을 다 쓰지 않았다.
「……일곱 명입니다, 아가씨. 저 포함해서.」
일곱 명. 영지 전체를 운영할 사람이 일곱.
그때, 본관 밖에서 소란이 들렸다.
카일이 먼저 움직였다. 검에 손을 얹고 복도로 나갔다. 나도 뒤따랐다.
본관 정문 앞에 마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아침 안개 속에서 마차의 문장이 보였다.
사자 두 마리가 왕관을 받치고 있는 문양. 대공 레오폴트의 가문 문장.
마차에서 내린 건 대공 본인이 아니었다. 양복 차림의 마른 남자. 서류 가방을 들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서류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한 종류뿐이다.
법률 대리인.
남자가 공손하게, 그러나 차갑게 고개를 숙였다.
「에스텔라 폰 카르테시아 백작. 대공 레오폴트 각하의 명으로 참상하였습니다.」
남자가 서류 가방에서 양피지 한 장을 꺼냈다.
「채무 이행 최고장입니다. 30일 이내에 체납 채무 금화 1,200 아우레우스를 상환하지 않을 경우, 영지 내 담보 토지의 소유권을 이전합니다.」
나는 양피지를 훑었다. 그리고 마지막 조항에서 눈이 멈췄다.
'상환 불이행 시, 대공가는 제국법 제52조에 의거하여 영지 내 거주민에 대한 강제 이주 및 잔여 자산 징발을 집행할 권리를 보유한다. 집행 예정일―30일 후, 적월 14일.'
강제 이주.
일곱 명뿐인 하인들. 풀뿌리를 먹는 아이와 영지를 떠나는 노인들. 남아 있는 사람들마저 쫓겨난다는 뜻이다.
30일. 모르간이 준 90일의 3분의 1.
대공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지 재건은커녕, 빚 방어전부터 시작해야 한다.
에스텔라의 잔재가 다시 끓어올랐다. 이번에는 억누르지 않았다.
나는 양피지를 받아들며 미소를 지었다. 에스텔라의 미소. 사교계의 꽃이 불쾌한 상대에게 보내던, 차갑고 아름다운 그 표정.
법률 대리인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감사합니다. 잘 읽어보겠습니다.」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하지만 에스텔라의 미소를 본 남자가 반 발짝 물러섰다. 이 악녀의 얼굴에는, 웃을 때 더 무서워지는 기능이 탑재되어 있었다.
마차가 떠난 뒤, 양피지를 다시 펼쳤다.
'대공, 당신이 이 영지를 무너뜨린 장본인이라면.'
지하 창고의 빈 상자들. 군 보급품 관리 번호. 4,800 아우레우스의 행방. 마력석 240개의 흔적.
그리고 30일.
적월 14일.
'가장 좋은 반격은 감사 보고서로 하는 거야.'
시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