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판을 짜는 자(板을 짜는 者)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비가 왔다.
이틀 동안 세가에 비가 내렸다. 마당의 흙이 진흙이 되었고, 지붕에서 낙수가 쏟아졌다. 달리기를 멈춘 건 아니었다. 비 속에서 뛰었다. 발이 미끄러지고, 옷이 젖고, 7세의 체온이 내려가는 걸 느끼면서도 뛰었다. 아버지가 멀리서 그걸 봤다. 멈추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비가 그쳤다.
마당의 흙은 뒤집혀 있었고, 발자국은 씻겨 나갔다. 장부의 찢긴 페이지, 흙 위의 네 발가락, 경첩의 닳은 자국――비가 지우지 못한 것은, 내 머릿속에만 남아 있었다.
형들을 떠올렸다.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따지는 건, 이 판에선 제일 늦은 일이다. 중요한 건 방향이다.
그때, 서재에서 호출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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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형제들 없이 나 혼자였다. 서재의 문이 닫혀 있었다. 운이 밖에서 지키고 있었다. 밀담의 배치다.
아버지가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탁자 위에 보고서가 펼쳐져 있었다.
“네가 본 걸 말해라.”
“……빈 시간입니다.”
“빈 시간?”
“경비가 비는 때가 있어요. 매일 같은 때요.”
아버지의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손가락이 탁자 위에서 한 번 구부러졌다가 펴졌다. 확인의 동작이다.
“그래서 네 결론은.”
“습격자는 도둑이 아닙니다.”
한 박자.
“우리를 재는 자입니다.”
서재가 조용해졌다.
아버지가 나를 봤다. 오래. 깊이.
“……너는, 일곱 살이 아니다.”
대답하지 않았다. 아버지도 답을 기대하지 않았다. 대신, 탁자 위의 보고서를 한 장 넘겼다.
“둘째가 올린 보고다. 서고 뒤 작은 문이 최근에 열린 흔적이 있다고.”
둘째가 보고했다. 내가 유도한 대로.
“그 문에 대해 네가 먼저 알았지.”
“……예.”
“왜 나에게 먼저 말하지 않았나.”
“제가 말하면… 아버지가 물으셔야 해요. 어떻게 알았냐고.”
아버지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알면 안 되는 걸 안 거냐.”
“아는 방식이 문제입니다.”
한 박자. 목소리가 낮아졌다가, 다시 어려졌다.
“7세가 그런 걸 봤다고 하면… 아버지도 곤란하실까 봐요.”
서재가 다시 조용해졌다.
아버지가 탁자 위에 팔꿈치를 올렸다. 턱을 괴었다. 위엄과 권위를 내려놓은 자세. 이건 가주가 아니라 아버지의 자세였다.
“막내야.”
“예.”
“네 눈으로 본 것을 쓸 줄 아는구나.”
침묵이 내려앉았다. 무언가를 더 물으려는 듯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더 볼 것이 있으면, 보아라. 다만――혼자 움직이지는 마라.”
허가이면서 보호였다. 묻지 않는 것이 신뢰다. 기다리는 것이 신뢰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목소리가 떨렸다. 7세의 떨림이 아니었다.
━━━
서재를 나왔다.
복도를 걸으며, 보고서 마지막 장에 적혀 있던 한 줄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독자적 정보망이 올린 보고.
‘사파 변방에서 세를 불리는 군벌이 있다. 상단 셋을 흡수하고, 소문파(小門派) 다섯을 복속시켰다. 이름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나, 흑점과의 거래 흔적이 포착됨.’
상단을 삼키고 소문파를 복속시키는 패턴.
이건 도둑의 패턴이 아니다. 정복자의 패턴이다.
속에서 뭔가가 반응했다. 전생의 감각이 아니었다. 이 세계에서 새로 쌓이기 시작한 감각. 무림이라는 판 위에서, 거대한 수(手)가 놓이기 시작하고 있다는 직감.
발걸음이 멈추었다. 복도의 끝에서 마당이 보였다. 비가 그친 뒤의 세가. 기와에서 물이 떨어지고, 연무장에서 큰형의 검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복도의 끝에서, 둘째가 서고 창문 너머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반대편 연무장에서는 셋째의 검이 공기를 갈랐다. 어딘가에서 큰형의 곧은 발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형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나는 문을 향하던 시선을 거뒀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마당을 가로질렀다.
지금은――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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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침상에 누워 천룡결 첫 장을 다시 펼쳤다.
‘한 호흡에 한 세계를 담아라.’
눈을 감았다. 숨이 들어오고, 나갔다.
전생의 피 냄새가 가슴을 누르려는 순간――다른 온기가 밑에서 받쳤다.
큰형의 검 소리. 둘째의 종이 냄새. 셋째의 거친 숨. 그리고… 아버지 손의 온도.
숨을 내쉬는 찰나.
손끝에서 발끝까지 얇은 물줄기 하나가, 또렷하게 지나갔다.
이번엔…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누군가도 그걸 느꼈다.
담장 너머에서, 숨이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