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흑점의 냄새(黑點의 냄새)
열쇠는 아직 누군가의 손에 있다.
보름이 지났다.
세가의 일상이 ’평소’를 가장하고 있었다. 경비는 강화되었지만 소란은 가라앉았다. 문도들은 다시 수련에 복귀했고, 가신들의 얼굴에서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물 위가 잔잔하면, 물 아래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외부 추적대를 꾸리려 했다. 도주한 침입자 다섯의 행방을 쫓겠다는 것이다. 아침 식사 자리에서 맏형에게 지시하는 것을 들었다.
“큰아이, 정예 열을 골라 서쪽 관도부터 훑어라.”
맏형이 고개를 숙였다. “명에 따르겠습니다.”
나는 죽을 떠먹으며 입을 열지 않았다. 추적대가 나가면, 세가의 규모가 역으로 읽힌다. 알지만 말할 수 없다. 죽 한 숟갈을 더 떠넣었다.
지금은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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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서고로 가려는데, 서고 입구에 셋째의 문도가 서 있었다.
“삼공자 분부로, 오늘은 서고 정리 중이라 출입이 어렵습니다.”
둘째에게 확인하러 갔다.
“이형, 서고 정리라고… 무슨 정리예요?”
둘째의 눈이 좁아졌다.
“나도 지금 들었다.”
둘째의 목소리에 낮은 불쾌감이 묻어 있었다. 셋째가 서고 접근을 막은 것이다. 그것도 둘째의 관할인 서고를. 명분은 ’정리’지만, 실은 선을 그은 것이다. 이 서고는 나도 쓸 수 있다는 선언.
둘째가 일어섰다. “내가 가서 얘기하마.”
반 시진 뒤, 서고는 다시 열렸다. 둘째가 돌아왔을 때 표정은 평소와 같았지만, 걸음이 반 보 빨랐다.
셋째의 선 긋기가 시작되었다. 양동이를 옮긴 것, 서고 접근을 막은 것. 피를 보지 않고 통제한다. 그게 이 형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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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고에서 둘째와 기초편을 복습하고 있었다.
복습이 끝나갈 무렵, 둘째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막내야.”
톤이 달라졌다. 정보를 전달하는 톤.
“서고 비전이 흑점(黑點)으로 흘러갔다는 소문이 있다.”
흑점. 무림의 암시장이다. 도난품, 금제품, 사파의 밀거래가 이루어지는 곳.
“……어떤 소문이요?”
둘째의 눈이 살짝 커졌다. 하지만 이제 이 정도에 놀라지 않았다.
“서고 장서를 관리하던 노문도가 은퇴 전에 흘린 말이다. 확정은 아니다.”
“이형.”
“말해라.”
“밖으로 찾으러 가면… 위험하지 않아요? 나간 만큼, 밖에서도 우리를 알게 되니까요.”
둘째가 잠시 침묵했다.
“……그러면 네 생각은.”
“나가는 게 아니라, 들어오게 해야 합니다.”
한 박자 쉬고, 눈을 내렸다.
“흑점으로 비전이 흘러갔다면… 사려는 사람이 올 거잖아요. 기다리면, 판 사람도 보일 거예요.”
둘째가 서책을 덮었다.
“……넌 확실히 꿈을 길게 꾼 모양이다.”
웃었다. 하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이 형은 ‘꿈’ 핑계를 반도 믿지 않는다. 그래도 따지지 않는다. 지금은 유용한 판단이 진실보다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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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달리기 전, 서고 뒤 작은 문 앞의 흙을 고르게 펴두었다. 손이 아니라 발로 밟아서. 달리기하다 지나간 흔적처럼 보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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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뒤 아침.
달리기를 하며 작은 문 앞을 지났다.
흙이 다시 고르게 펴져 있었다.
아니――고르지 않았다. 내 달리기 발자국만 또렷하게 남겨져 있었다. 다른 흔적은 전부 지워졌는데, 내 것만 살렸다.
보고 있다는 뜻이다. 네가 뭘 하는지 안다는 뜻이다.
조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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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고로 갔다. 금서각의 빈자리――빠진 비전이 무엇이었는지, 장서 목록에는 기록이 남아 있을 것이다.
둘째에게 허락을 구하고 서가 하단의 관리 서랍을 열었다.
장부가 있었다. 서고 장서 총 목록. 금서각은 별도 관리이지만, 서고 관리 장부에 ’금서각 연계 목록’이라는 항목이 있었다.
펼쳤다.
목록은 스무 권 남짓을 나열하고 있었다. 천룡결 기초편, 중급편, 심화편. 검결(劍訣) 삼 단계. 보법(步法) 이 단계. 경신술(輕身術) 기초. 내공심법(內功心法) 세 권……
한 장을 넘겼다.
멈추었다.
장부의 한 페이지가 찢겨 있었다.
칼로 자른 것이 아니었다. 손으로 잡아 뜯은 것이다. 종이의 결이 불규칙하게 끊겨 있었다. 급했다는 뜻이다.
빈자리의 책이 아니라, ’빈자리를 기록한 기록’이 사라졌다.
나는 장부를 조용히 닫고, 서랍에 도로 넣었다.
서고를 나왔다. 하늘이 흐렸다. 비가 올 것 같았다.
발자국이 씻기고, 흙이 지워지고, 장부가 찢긴다. 증거가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 자연이 지우고, 사람이 지운다. 둘 다 내 편이 아니다.
시간이 별로 없었다.